볼링코치 엄마 따라 갔다가…볼링공 무거워 골프 택했죠

성호준 2023. 1. 3.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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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이 사막여우인 임희정은 극한의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사막여우처럼 강인하다. 프로 데뷔 이후 두 차례나 심각한 부상을 겪고도 통증을 견디며 출전해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김현동 기자

프로골퍼 임희정(23)은 올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5년째를 맞는다. 그는 신인이던 2019년 오른발목 인대가 찢어진 채로 한 시즌을 보냈다. 당시 열아홉 살 임희정은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국가대표 에이스였던 그의 성적이 저조하자 “아마추어에서는 잘했지만, 프로에서는 안 통한다”는 ‘임희정 거품론’도 나왔다. 그래도 임희정은 부상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하반기 들어서 몸이 좀 나은 뒤 그는 3승을 거뒀다. 당시 임희정은 “경기가 끝나고 나면 지독하게 아팠다. 사실 수술해야 할 상황이었고, 병가를 내는 게 맞았다. 그러나 신인이 첫해부터 아프다고 하면 핑계 댄다고 할까 봐 주위에 알리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상황이 생겼다. 시즌 초 교통사고가 났는데, 임희정은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다들 단순한 접촉사고 정도로 여겼다. 부진하던 임희정은 지난해 6월 한국여자오픈에서 최소타 기록으로 우승한 뒤에야 소셜미디어에 자동차 사고 사진을 올렸다. 사진을 보고 나서야 다들 큰 사고였다는 걸 알게 됐다. 운전자의 졸음운전으로 차가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들이받았다.

2023년 계묘년을 앞두고 임희정을 만나서 그간의 사정을 들어봤다. 임희정은 “큰 사고였지만, 자동차 후원사를 위해 사진을 올렸다. 내가 우승할 수 있을 정도로 차가 안전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임희정은 지난해 4월 타고 가던 승용차가 반파 되는 큰 사고를 겪고도 대회 출전을 멈추지 않았다. 두 달 뒤 한국여자오픈 우승 직후에야 사고 상황을 공개했다. [사진 임희정 인스타그램]

사고 당시 조수석에서 잠자고 있던 임희정은 유리창에 머리를 강하게 부딪혔다. 임희정은 “이후 목과 어깨, 허리가 아팠다. 목과 등이 뻣뻣해져 몸 체형도 변하고 척추측만도 생겼다. 목이 경직되니 스윙도 달라지더라”고 말했다. 골프선수로서는 매우 큰 부상이었다. 성적이 부진해지자 스트레스로 원형탈모증도 생겼다고 했다. 임희정은 “핑계 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몸 관리 못한 건 기본적으로 나의 책임이다. 또 성적이 잘 안 나와도 스스로 합리화할 것 같아서, 목표를 스스로 낮추는 것 같아서 알리지 않았다”고 했다.

임희정은 강원도 태백에서 볼링 코치를 하던 홀어머니 슬하에서 자랐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엄마가 일하는 볼링장과 같은 건물에 있는 실내 연습장에서 골프를 접했다. 그는 “볼링공은 너무 무거워 골프를 택했다”고 기억했다.

연습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인근 정선 하이원 골프장에서 처음으로 라운드를 했다. 다시 골프장에 가기까지는 4년이 걸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골프 대회에 출전했다. 임희정은 실제 연습라운드는 못하고 스크린 골프장에서 코스 공략을 준비했다. 임희정은 “뭐든 연습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어린 시절 유명 선수의 스윙 동영상을 찾아 수없이 돌려보면서 자신과 비교했다. 임희정은 “골프장에 못 가는 대신 스크린 골프장에서 하루에 1000개씩 샷 연습을 했다”고 말했다.

임희정

그에게도 좋은 선생님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1년에 딱 한 번, 태백에서 연중행사로 열리는 ‘지역 유망주 원포인트 레슨’ 행사였다. 그는 “평소에 궁금한 걸 적어놨다가 몰아서 물어봤다”고 말했다. 임희정은 다른 선수에 비해 늦게 골프 대회에 출전했다. 임희정은 “엄마가 ‘어린 나이에 대회에 나가서 성적이 부진하면 실망할 수 있으니 기다리자’고 하셨다. 이해는 하지만, 일찍 나갔으면 좋은 자극을 받고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쉽긴 했다”고 말했다. 산골 소녀는 중학교 2학년 때 국가대표 상비군이 됐고, 대표팀 에이스가 됐다.

그는 “프로가 된 후 어려운 시절을 잊었을 때도 있다. 그러나 자선봉사 등을 하면서 어렸을 때 내 마음가짐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내 목표는 세계랭킹 1위이다. 오랫동안 기부하고 봉사하는 선수로도 기억되고 싶다”고 밝혔다.

그의 별명은 ‘사막여우’다. 웃는 표정이 사막여우 비슷하다 해서 친구들이 지어줬다. 사막여우는 사막에서도 살아남는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경기할 때는 냉정하고 때론 단호하다. 임희정은 “몸이 좋지 않을 때도 샷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그는 몸에 해로울 수도 있는 탄산음료를 마시지 않는다. 튀김도 안 먹는다. 커피는 경기를 앞두고 몸이 피곤할 때 반 잔 정도만 마신다. 지난해 교통사고 여파로 몸이 약간 부은 듯했다. 인터뷰 사진을 찍을 때 누군가 “포토샵 작업을 잘해달라”고 했는데 임희정은 “그냥 자연스러운 모습이 좋은 것 아닌가요”라고 했다. 그게 임희정이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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