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브리핑] 2017 MBC 잔혹사 ①-점령군의 입성

황기현 2023. 1. 2.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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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민주노총 계열 MBC노동조합(제3노조), 연말 '2017 MBC 잔혹사' 발간…엄혹한 보복과정 담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내부균열' 본격화…회의 들어가는 취재부서장에게 '모욕의 길' 입장 종용
내부 분위기 장악 언론노조, 민주당 '방송장악' 로드맵 대로…방문진 이사진 및 김장겸 사장 축출
포항대지진 외면 등 공영방송 책무마저 외면…언론노조 전광석화 보도국 접수 "내 자리다, 나가라"
MBC노동조합(제3노조)가 2022년 연말에 펴낸 '2017 MBC 잔혹사'.ⓒ MBC노동조합(제3노조)

혹자는 이 재앙의 시작이 지난 2012년 김재철 전 MBC 사장의 민주노총 산하 언론노조에 대한 탄압에서부터 비롯됐고, 2017년의 잔혹사는 그 작은 복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어떤 이는 2012년에 비하면 2017년 언론노조의 보복은 도를 넘었으며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짓이었다고 성토했다. 아직도 진행 중인 지난 10년간의 시비(是非)에 관심있는 국민들은 이제 없다. 그저 오랜 세월 집단주술에 걸린 외눈박이 물고기들의 "공영방송, 공정방송" 헛구호에 지쳤고, 전횡의 단맛에 취한 점령군들의 "언론의 사명, 정의, 진실" 돌림노래가 내로남불의 다른 이름이었음을 알았을 뿐이다. 그렇게까지 뜨겁게 싸웠다며 보이는 모습이 겨우 이것이냐는 힐난만이 난무한다. 함께 울던 동료의 심장에 웃으며 아로새긴 '비파업자 표식'은 무덤에 가서도 스스로 박제돼 춤을 출 것이다. MBC 뉴스는 급기야 '특정 진영의 나팔수'가 됐고 국민들은 마침내 '위대한 MBC'를 잃어버렸다. -편집자主-


지난해 연말 비(非)민주노총 계열의 MBC노동조합(제3노조)은 '2017 MBC 잔혹사'를 펴냈다. 64페이지 분량의 책자에는 지난 2017년 언론노조 MBC본부가 정권 교체의 후광을 업고 김장겸 전 MBC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벌인 파업에서 승리한 후 자행했던 엄혹한 보복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17 MBC 잔혹사'에 따르면 MBC 내부 균열은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하면서부터 본격화됐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직후 일부 후배들이 갑자기 선배들의 '보도 행태'를 지적하고 나섰고, 발제 취지에 공감하지 못하는 후배들에게 취재·기사 작성을 맡길 수 없었던 반장들은 직접 기사를 쓰고 보도했다고 한다.


같은 해 5월 9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 언론노조의 활동은 더욱 노골적이 됐다. 기수별로 성명을 발표하며 김장겸 당시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불과 열흘 사이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보인 이들은 "스스로 떠나지 않으면 끌어 내리겠다"는 위협과 함께 '심판', '적폐 청산' 구호로 성명서를 채워갔다.


2017년 8월 10일에는 보도국 취재기자들이 제작 거부에 돌입했다. 취재기자들이 출입처가 아닌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보도국 수뇌부 및 회사 경영진에 대한 항명은 그 수위가 점점 높아졌으며 일부 기자들은 회사 로비 등에서 '피켓 시위'까지 벌였다.


회사 측은 근무 시간에는 시위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이들은 반차 휴가를 내고 피켓을 들었다. 업무 복귀를 지시하는 문자 메시지는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핵심 간부로 분류되는 취재센터장마저 파업 동참 의사를 밝히는 등 제작거부 사태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8월 17일 이후에는 보도국 밖 인원들까지 제작 거부에 참여했다.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채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려고 했던 직원들에게는 본사 로비·보도국장실·회의실 앞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던 언론노조원들의 피켓 시위가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파업 참여자들은 업무를 위해 회의실에 들어가는 동료에게 압박을 가했다고 한다. 일부 언론노조원들은 취재부서장이 회의실로 들어가는 통로를 몸으로 막고 자신들의 스크럼으로 만든 '모욕의 길'로 입장하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2017년 MBC 파업 당시 모습.ⓒ 뉴시스

거세지는 파업 사태에 본분과 신념을 지키던 기자들도 하나둘 무너져갔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으로 살아왔는데, 비파업자로 분류돼 한직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 채 살아갈 자신들의 모습에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라고 제3노조는 설명했다. 다만 끝까지 파업을 거부하고 남은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나 좀 살아보겠다고 함께한 동료를 배신하고, 더 나아가 자신을 부정할 수 없다"며 스스로 결기를 다졌다.


남은 이들은 적고, 떠난 이들은 많았다. 기자가 아닌 보도국 직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파업 중인 선배들의 권유(혹은 압박)를 받은 AD 5명이 9월 11일 동시에 일에서 손을 뗐다. 날씨·교통 정보를 전하던 라디오 리포터 12명도 제작 거부에 동참했다. 윗선부터 말단 조직까지 언론노조의 손에 완벽하게 장악당하는 순간이었다. 결국 MBC 보도국은 뉴스를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없게 됐다.


회사 내부 분위기를 틀어쥔 언론노조는 정권과 합심해 '경영진 무너뜨리기'에 돌입했다. 9월 7일 유의선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가 자진 사퇴했다. 유 이사의 사퇴 배경에는 이화여대 출신 제자들이 있었다. 유 이사는 사장 면접에서 '노조 배제'를 암시하는 질문을 했다는 혐의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유 이사가 사퇴한 다음 날, 조선일보는 민주당의 '방송장악' 문건을 보도했다. 민주당이 KBS, MBC 등 공영방송을 '언론 적폐'로 규정하고, 사장·방문진 이사진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를 추진하자는 내용이 담긴 문건이라고 조선일보는 전했다. 민주당은 "티타임에서 잠시 나온 말을 부풀려 보도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런데 이후 전개된 상황은 문건 속 로드맵과 매우 유사했다고 한다. 10월 18일 김원배 이사가 사퇴했고, 11월 2일에는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에 대한 해임결의안, 11월 13일에는 김 전 사장에 대한 해임안이 잇따라 가결됐다. 결국 언론노조가 사장을 끌어내리는 데 성공한 것이다.


2017년 MBC 파업 당시 모습.ⓒ 뉴시스

김 전 사장 해임 결의안 가결 이틀 후인 2017년 11월 15일에는 경북 포항에서 규모 5.4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수천 명의 국민이 이재민이 됐다. 그러나 제작 거부에 동참한 포항 MBC는 어떠한 취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전국부장이 "제보 영상만이라도 보내달라"고 읍소했으나 포항 취재 부장은 "안타깝지만 도움을 줄 수 없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기자 2명이 현장까지 내려가 기사를 보내왔으나 역부족이었다. 당시 MBC는 '공영방송의 책무를 저버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끝까지 보도국에 남아 일하던 기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12월 8일, 비파업자들에 대한 '처리'가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이날 오후 4시가 넘어설 무렵, 보도국 내부로 진입한 언론노조원들이 근무 중이던 기자들에게 "내 자리"라며 나갈 것을 요구했다. 비파업기자들은 그 길로 짐을 싸서 나와야 했다. 송고 기사는 폐기처분 됐다. 비파업기자들이 MBC 내부에서 '투명인간'이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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