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혼' 속 세상 움직인 여성 무사들,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김종성 2023. 1. 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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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사극으로 역사읽기] tvN 드라마 <환혼: 빛과 그림자>

[김종성 기자]

 tvN 드라마 <환혼: 빛과 그림자>의 한 장면
ⓒ tvN
 
tvN 판타지 사극 <환혼: 빛과 그림자>에는 세상을 움직이는 여성 무사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술법과 어우러진 환상적인 무술로 가상의 왕조인 대호국을 이끌어간다.

그중에서 낙수의 위상이 단연 독보적이다. 배우 정소민과 고윤정이 함께 연기하는 낙수의 무예는 일반 백성들뿐 아니라 술법 무사들에게도 공포의 대상이다. 또 진씨 가문의 수장인 진호경(박은혜 분) 역시 정상급의 무예 실력을 갖고 있다. 그의 둘째딸인 진초연(아린 분)도 만만치 않다.

술법까지는 아니지만 무술을 바탕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여성들이 있었다. 독립운동가 겸 한국학 학자인 안확이 일제강점기 때 저술한 <조선무사영웅전> 속의 부낭(夫娘)도 그런 인물이다.

각 지방별로 편찬된 군지(郡誌)나 읍지(邑誌) 등을 토대로 옛날 무사들을 소개한 이 책은 "부낭은 평안도 자성(慈城) 여자"라고 소개한다. 평안북도 오른쪽인 자강도의 동북부 출신이었던 것이다.

이곳에는 조선왕조의 소수민족인 여진족이 많이 살았다. 부낭도 여진족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은 그의 집안이 농경이 아닌 수렵과 목축을 영위했다는 점이다. 또 부낭이 어려서부터 동네 아이들을 통솔한 점을 고려하면, 객지 출신 집안의 아이가 동네 아이들을 거느리기는 쉽지 않으므로 부낭의 가족들이 객지 출신이었을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집안이 수렵과 목축에 종사했기 때문에, 부낭은 자연스럽게 기마와 궁술에 능했다. <조선무사영웅전>은 "이로 인하여 낭이 스스로 기사(騎射)에 선(善)한지라"라고 말한다. 부낭은 무예뿐 아니라 통솔에도 능했다. 아이들을 모아 놓고 군사놀이 하는 일을 즐겨했다. 아이들을 호령하고 대오를 편제하는 일을 잘했다고 한다.

부낭의 뛰어난 군사지식과 무술
 
 tvN 드라마 <환혼: 빛과 그림자>의 한 장면
ⓒ tvN
 
그의 군사 지식과 무술이 빛을 발한 것은 광해군 실각 이듬해인 1624년에 벌어진 이괄의 난 때였다. 이괄은 광해군을 몰아내는 인조 쿠데타(인조반정)를 성사시키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지만, 그 직후의 권력투쟁에 밀려 평안도 병마절도사(병사)로 가게 됐다. 그런 뒤 이괄이 평안도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 부낭이 두각을 나타내게 됐다.

평안도 및 황해도 일부를 점령한 이괄의 반란군이 한양에 임박하자, 인조 임금은 명나라에 파병을 요청한 뒤 도성을 떠나 공주로 피신했다. 그런 다음, 이괄이 한양에 입성해 선조의 아들인 흥안군 이제를 왕으로 추대했다.

1년 전에 광해군을 몰아내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던 이괄이다. 그런 이괄이 이번에는 인조를 도성 밖으로 밀어내고 새로운 왕을 추대했다. 국가 전복에 능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런 이괄을 무너트리는 데 기여한 장본인이 부낭이다. 부낭은 평안도 안주목사 정충신이 경기도와 한양에서 이괄 군대를 격파하고 1등 공신이 될 때의 조력자였다고 <조선무사영웅전>은 말한다.

그런데 애초에 부낭에게는 참전 기회가 없었다. 평안병사 이괄에게 징발된 사람은 그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받은 '소집영장'을 가로채 남장 차림으로 말을 타고 평안병사의 군영에 들어갔던 것이다.

창 1자루 들고 입대하는 백성보다 말 1마리 끌고 입대하는 백성이 훨씬 나은 대우를 받았다. 부낭이 말을 갖고 왔을 뿐 아니라 무예까지 빼어나다는 점을 확인한 이괄은 그를 초장(哨長)으로 선발했다. 부대원 100명 정도를 지휘하는 초급 장교로 임명한 것이다.

그러나 부낭은 계급장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이상한 낌새를 채게 됐다. 이괄의 부대가 반란군이 되려 한다는 징후를 포착한 것이다. 그래서 탈영을 감행했다. 그가 밤중에 말을 달려 찾아간 곳은 평안도 안주목사 정충신의 관아였다.

부낭은 역모 사실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진압 방책까지 건의했다. 이괄이 필시 한양으로 진격할 것이니 그를 치려면 한양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책략을 따른 결과로 정충신이 이괄 부대를 격파하고 일등 공신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 안확의 설명이다.

전장에서 무공 세운 설죽화
 
 tvN 드라마 <환혼: 빛과 그림자>의 한 장면
ⓒ tvN
 
부낭의 비범성은 그 뒤에 더 크게 발휘된다. 정충신이 중용할 뜻을 내비치자 그는 부모 봉양이 더 중하다고 말한다. 그런 뒤 자신이 여자라고 고백한다. 정충신은 여러 달 함께하면서도 눈치채지 못한 자신의 두 눈을 한탄했다. 그런 다음, 부낭을 위해 잔치를 열고 전후 사정을 널리 알렸다.

부낭과 달리 설화 속의 인물이기는 하지만, 고려시대 설죽화도 전장에서 무공을 세운 여성이다. 일반 평민들의 이야기는 관찬 기록보다는 설화를 통해 전해지는 경우가 허다했으므로, 설죽화가 설화 인물이라 하여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설죽화도 부낭처럼 북위 38도선 이북 출신이다. 설화 인물이라는 점에 더해 이 역시 설죽화가 남한에서 덜 알려진 이유를 설명해준다.

북한에서 편찬된 <조선녀성일화집>을 근거로 설죽화 등의 여성 영웅들을 소개한 박대복 중앙대 교수의 논문 '고구려 우씨의 여성 영웅적 성격과 변이 양상 연구'(2013년 <어문논집> 제56집)에 정리된 바에 따르면, 설죽화는 거란족 요나라의 침략에 맞서 활약한 인물이다.

아버지를 대신해 입대한 부낭과 달리, 설죽화는 거란족과의 전쟁 중에 전사한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요나라의 1019년 침입 때 남장을 하고 강감찬 부대에 들어갔다. 많은 서적에는 요나라가 1018년에 침입했다고 적혀 있지만, 이 침입은 음력 12월 10일에 있었다. 양력으로 환산하면, 1019년 1월 18일이다. '1018년 12월 10일에 침입했다'는 것은 잘못된 서술이다.

설죽화의 사령관은 이 전쟁에서 귀주대첩이라는 역사적 성과를 거뒀다. 설죽화도 그 나름의 목표를 이뤘다. 아버지가 갖고 나간 말을 타고 있는 거란족 장수를 발견한 것이다. 그는 활을 쏘아 적장을 넘어트렸다. 아버지의 원수를 그렇게 갚은 것이다.

설죽화는 훗날에도 거란족과의 전투에 나섰다. 결국, 거란족 대여섯 명을 홀로 상대하다가 장렬히 전사했다. 사람들은 설죽화가 죽은 뒤에야 그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군대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든 야생 동물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든 '전투하는 여성'의 존재를 우리 역사에서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부낭이나 설죽화는 그 일례에 불과하다. <환혼>에서는 가상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여성 무사의 이미지를 만들어냈지만, 무사가 되어 스스로를 지키고 가족과 세상을 수호한 실제 여성들도 우리 역사에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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