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개인적인 이야기로 가장 끈끈한 공동체 만듭니다 [월간 옥이네]

월간 옥이네 2023. 1. 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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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간 다양한 이웃 목소리 전해온 성서공동체FM... 개인들의 이야기들로 다져온 굳건한 연대

[월간 옥이네]

 대구 달서구 성서공동체FM 식구들
ⓒ 월간 옥이네
 
성서공동체FM(SCN, 주파수 89.1MHz)은 대구 달서구 성서지역 이주노동자와 주민들의 이야기를 조명해온 전국 최초의 공동체 라디오입니다. 출력은 3W, 가청 반경은 약 5km에 지나지 않지만, 2005년 8월 전국에서 가장 먼저 개국하며 지역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온 공동체 라디오 방송계의 맏언니지요.

올해로 17살이 된 성서공동체FM은 그간 이주민과 장애인, 노인과 청소년 등 동네 이웃의 작은 목소리가 뒤섞인 '만만한 라디오'를 자처해왔습니다. 공동체 속 숨 쉬는 온갖 생생한 이야기 앞에서 마이크는 언제나 그 기록을 멈추지 않았지요. 덕분에 성서공동체FM은 듣기만 하는 라디오가 아닌, 주민들이 주체가 돼 직접 말하고 만드는 따뜻하고 끈끈한 라디오가 될 수 있었습니다.

<월간 옥이네>는 성서공동체FM을 찾아 지난 이야기를 들어보고, 12월 21일 첫 돌을 맞이한 충북 옥천FM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함께 담아봤습니다.

[관련기사]
104.9, 여기선 어디서도 들을 수 없는 목소리가 나온다 http://omn.kr/224m6
한때 잘나가던 DJ, 그에게 다시 마이크 건넨 특별한 방송국 http://omn.kr/224mb

'소수자' 아닌 '이웃'이라 말하는, 공동체 라디오의 힘

"성서공동체FM 시작은 이주민과 관련이 깊죠. 저희 방송국은 이주민 노동자가 대부분인 공단 주변에 자리하고 있어요. 이는 성서지역 특징이기도 하죠. 성서공동체FM이 개국하던 2005년은 성서 이주노동자 지역노조가 만들어지던 시점이기도 했는데, 그에 맞춰 이주노동자 목소리가 담긴 방송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공동체 라디오라면 구성원의 기쁨과 슬픔, 문제를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요." (김상현 본부장)

이러한 취지로 시작된 만큼, 노동자들이 라디오 청취가 가능한 점심시간 낮 12시부터 1시까지 이주노동자 뉴스를 생방송으로 편성했다. 이주민 노동자 현안을 이야기하면서 몽골,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네팔 등 각 국가의 모국어 방송이 전파를 타자 지역 이주민들은 성서공동체FM을 창구로 점차 사회로 나오기 시작했다. 

"같은 지역에서 살아가고, 같은 공간에서 노동하지만, 선주민의 관계는 여전히 소원하죠. 근처 와룡시장에만 가봐도 일상적으로 이주민을 만날 수 있는데도요.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할 계기를 마련하는 게 우리 역할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주민 개개인의 삶을 담은 <라디오 사람책>(방송 2020년 5월~11월)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제작하기도 했죠. 이주민이 한국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면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길 바랐어요.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어느날 문득 '이분들은 대체 뭘 믿고 우리에게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해주실까'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간 저희 방송국이 이주민들과 쌓아온 신뢰를 되새기면서도 이들이 얼마나 함께 살아가고 싶은지 그 의지도 느끼게 됐죠." (김지나 PD)

이주민과 선주민의 담장을 허물기 위해서는 그간 중앙 미디어에서 그려온 이주민의 집단적 이미지가 아닌, 이들 개인의 이야기가 세상에 필요하다고 느꼈다. 한국 이주 후 공장에서 사고를 겪은 아노와르 씨가 식료품점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결혼이주여성 니감시리씨가 통역사라는 꿈을 위해 고투하는 이야기처럼 스스로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결국 선주민과 크게 다르지 않은 보통의 이야기이면서도 지역이라는 공동체를 함께 공유하며 살아가는 이웃임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이주민을 비롯해 장애인, 노동자, 청소년, 노인처럼 주류 언론, 중앙 매체에서 쉽게 타자화하거나 드러나지 않던 이들에게 마이크를 건네주는 것이 공동체 라디오의 역할이라 여겨요. 함께 이곳에서 살아가는 누구나 소수자가 아닌 이웃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김상현 본부장)
 
 방송 중인 성서공동체FM
ⓒ 월간 옥이네
 
 성서공동체FM 내부 모습
ⓒ 월간 옥이네
 
중증 장애인 엄마들이 모여 전쟁 같은 삶 속에서 기적처럼 길어 올린 목소리를 담은 <담장 허무는 엄마들>, 중증장애인 전규원씨가 휠체어를 타고 지역을 누비며 직접 만들고 진행하는 <전규원의 행복한 라디오>, 휠체어 장애인의 기차 여행과 장애인 이동권을 담은 <나 이런 사람이야> 등 그간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던 수많은 이웃이 성서공동체FM을 통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이 같은 프로그램은 비장애인과 선주민 위주로 형성돼 온 지역 사회를 돌아보게 하고, 이들 역시 함께 살아가는 우리 이웃임을 상기하게 하면서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한다. 공동체 라디오의 주인이 누구인지 실감케하면서 그게 누구의 것이든 사회에 던지는 목소리는 유의미하다는 사실을 몸소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활동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사회는 조금씩 변한다고 생각해요. 전규원씨의 라디오를 듣던 청취자가 어느 날 '이 공간에 규원씨가 들어올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면서, 또 어떻게 하면 이분들이 조금이나마 편히 이곳에 올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습도 조금씩 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죠." (김지나PD)

공동체의 시선으로 바라본 재난은 달라야 한다

"코로나19 특집 생방송을 진행하면서 공동체 라디오의 역할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됐던 것 같아요. 위기 상황 속에서 공동체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된 거죠. 이주민, 장애인, 노인이 마스크를 구하기 힘든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들과 연대하려는 주민들의 행동과 응원의 목소리가 실시간으로 전파를 탔어요. 실제로 주민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마스크와 먹거리가 필요한 이들에게 전달되기도 했고요. 방송을 만드는 매순간 이 위기 속에서 공동체에 정말 필요한 이야기는 뭘까 고민했죠." (김경민PD)

2020년 2월, 31번째 코로나19 확진자이자 대구 지역 첫 번째 확진자가 발생했다. 며칠 사이 확진자가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성서공동체FM 모든 방송 녹음이 중단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환기가 어려운 스튜디오 특성상 사람이 오고 가는 것에 위험을 느낀 것이다.

그 사이 대구는 감염병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됐고, 확진자를 그저 숫자로만 집계하고 보도하는 중앙 매체와 수많은 거짓 정보로 대구를 향한 혐오감은 치솟고 있었다. 중증장애인, 이주노동자, 노인, 쪽방촌 거주민 등 재난의 그림자가 더 깊게 드리워진 사람들이 생겨났고 사태는 장기화에 접어드는 시점이었다.

"재난으로 인한 혐오와 거짓이 난무하고 사태는 갈수록 심각해지는데,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우선 최소한의 인원으로 특별 방송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수십명의 방송 활동가가 마을 특파원이 돼 각 마을 상황을, 일터 상황을 전달하고 연결해주었어요. 예를 들어 어디 마트는 텅 비었고, 어디 도로에는 차가 한대도 없다는 이야기를 이어갔죠. 주변에 돌고 있는 거짓 정보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리면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도록 했어요. 도움이 필요한 분들과 도움을 원하는 분들을 연결하기도 했고요." (김경민PD)

이주민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번역해 알리거나 공적 마스크 판매 현황, 자영업자를 위한 식자재 소식도 전파를 탔다. 성서공동체FM은 위기 속에서 공동체의 시선으로 재난을 극복해나간 한 달여 간의 기록, 이를 통해 공동체 회복에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받아 2021년 12월 '행정안전부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코로나19 특별 생방송' 진행은 위기와 동시에 온기를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행정에서 해내지 못하는 역할을 곳곳에서 묵묵히 해나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처참한 재난 상황을 알리고 기록하면서도, 위기에서 더욱 빛났던 자발적인 연대,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느끼면서 이 재난을 다르게 바라보게 됐던 것 같아요. 비록 미비한 채널이지만, 공동체 라디오가 이 재난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를 고민한 시간이었죠." (김상현 본부장)
 
 성서공동체FM는 공동체 회복에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받아 2021년 12월 '행정안전부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 월간 옥이네
 
공동체 속 숨 쉬는 마이크

"2006년, 개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엄마들이 방송국을 찾아왔어요. 성서지역에 어린이를 위한, 그러니까 자신의 자녀들을 보낼만한 도서관이 없다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이분들의 방문을 시작으로 주민의 힘으로 성서를 바꿔보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인 <주민발언대>가 시작됐어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성서에 도서관을 만들자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죠." (김상현 본부장)

엄마들은 마이크를 쥐고 망설임 없이 현장 속으로 뛰어들었다. '우리 지역에 새로운 도서관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답을 듣기 위해 주민 앞에 마이크를 돌렸다. <주민발언대>는 매주 이 과정을 고스란히 방송했다.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는 도서관 건립을 공론화하기 위해 '도서관 건립촉구를 위한 1만 명 주민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프로그램은 이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주민들의 목소리를 한데 기록하고 모아냈다. 그 사이 마이크는 주민들의 파트너가 되어갔다. 그간 발언의 기회가 생소했던 성서지역 주민들에게 공동체 라디오는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도서관이 필요하다는 의견 전달부터 도서관 건립을 공론화하는 모든 과정이 공동체 라디오를 통해 기록되고 방송됐어요. 건립이 결정되면서 주민들이 스스로 요구하면 얻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됐던 것 같고요. 방송을 통해 좀 더 살기 좋은 공동체를 만들어가고자 했던 뜻을 실현해본 과정이었죠. 라디오는 거들뿐이었고요." (김상현 본부장)

내 아이를 보낼만한 도서관이 필요하다는 개인의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이 문제가 공동체의 목표로 확장되기까지 주민들은 서로를 향해 마이크를 건네고, 참여하는 주체로 성장해 나갔다.

"오픈 마이크를 통해 공약을 함께 톺아보거나, 필요한 정책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거든요. 이렇게 목소리를 내면서 미디어 접근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실제 대구 주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대구는 정치색이 좀 그렇잖아' 하는 인식이 고정관념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하기도 하죠. 그간 타자화되고 만들어져온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하면서 주체가 되는 경험을 해보는 거죠."(김지나 PD)

"이런 과정을 함께 경험하고, 공동체 라디오의 역할을 실감하면서 책임감을 느끼게 됐죠. 주민이 공공재인 주파수를 갖는 건 쉽지 않잖아요. 힘든 과정을 거쳐 시민에게 주파수가 주어졌는데, 이들의 목소리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도록 버티자. 주파수를 기반으로 한 지역 운동이면서 방송 매체를 통해 지역의 변화를 이끌어 내고 기록해보자는 다짐. 이런 게 공동체 라디오의 역할이면서도 저희가 버텨온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상현 본부장)

17살 성서공동체FM이 첫돌을 맞이한 옥천FM에게

"2021년 공동체 라디오 신규 허가자를 모집·선정하면서 20곳의 새로운 공동체 라디오가 새롭게 개국했지요. 충북 옥천FM도 그렇고요. 국가적인 재난 등을 겪으며 공동체 라디오의 역할에 어느 정도 공감했기 때문일 겁니다.

이런 가운데 공동체 라디오가 정권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 지속 가능한 매체가 될 수 있도록 전국 공동체 라디오의 의견을 취합하고, 함께 요구할만한 공동의 의제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공동체 라디오가 지역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의미화하고 연구하는 작업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옥천 주민들도 옥천FM을 지역에 꼭 필요한 자산으로 생각해주신다면, 앞으로 옥천FM이 여러 활동을 하는 데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상현 본부장)

"성서공동체FM이 활동을 이어오는 동안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주민들은 꾸준히 있었고 방송국 문을 두드려 주셨어요. 주민 참여가 방송국을 운영하는 큰 힘이 됐고요.

저 역시 30대이자 여성, 그리고 장애인이자 비정규직으로 여러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달팽이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스스로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과 내 이야기를 공유할 때 더 촘촘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느끼고 있는데요, 옥천 주민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더 활기찬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싶다면 공동체 라디오가 주변에 있음을 떠올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지나 PD)

"저는 공동체 라디오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입사해서 지금까지 4년 정도 일을 해왔는데요, 코로나19 특집 방송을 통해 다시금 공동체와 공동체 라디오에 대해 떠올려보는 시기를 가졌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이 일을 의미 있게 해나갈 수 있는 고민을 이어갈 예정이고요. 옥천FM도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 만큼 공동체의 의미를 떠올릴 수 있는 방송들을 많이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응원할게요." (김경민 PD)

월간옥이네 통권 66호(2022년 12월호)
글·사진 서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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