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러버리는 '용감한' 기자 아닌, 소심한 기자 필요" [이영광의 거침없이 묻는 인터뷰]
[이영광 기자]
▲ <삼성동 하우스> 출간한 김경래 작가 |
ⓒ 김경래 제공 |
2016년 여름,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건희 동영상'이 지난 연말 소설로 가공되어 출간되었다. 책 제목이 <삼성동 하우스>다. 이 소설은 굴지의 대기업 JS의 이정성 회장의 성매매 동영상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을 흥미진진하게 그렸다.
<삼성동 하우스>를 쓴 작가는 '이건희 동영상'을 취재한 김경래 전 뉴스타파 기자다. 김 작가는 지난해 8월 뉴스타파 퇴사 후 출판사까지 차려 소설을 출간했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할 수도 있었을 텐데, 김 기자는 왜 20년 넘게 해온 기자 일을 그만둔 것일까. 지난해 12월 30일 김 작가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 <삼성동 하우스> 책 표지 |
ⓒ 농담과진담 |
- 책 출간이 처음은 아니지만, 소설책이라 느낌이 다를 것 같아요.
"심인보 기자하고 함께 썼던 게 <죄수와 검사>라는 논픽션이었죠. 논픽션은 있는 세계를 전달하는 거라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소설은 없는 세계를 창조하는 거잖아요. 제가 창조한 세계는 온전하게 나만의 것이죠. 그래서 내 새끼 같은 느낌이 더 커요. 게다가 최근 22년 동안 했던 기자 생활을 접었고요, 또 큰 병은 아니지만 암에 걸려서 수술도 하고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거든요. 그 와중에 나온 거라, 이 책은 기자를 그만두고 또 병에 걸렸던 김경래를 증명하는 일이거든요."
- 기자가 말도 안 되는 걸 기사로 썼을 때 소설 쓴다고 비꼬잖아요. 근데 진짜 소설을 썼어요.
"제가 저자의 말에 '기자가 소설을 쓰면 망조다, 그래서 나는 기자를 그만뒀다'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썼죠. 기자는 사실을 다루는 직업이잖아요. 사실을 파악하고 사실과 사실을 연결하는 작업이 기자의 일인데 이 과정에서 적용이 되는 직업적인 방법론이 꽤 엄격합니다. 그런 엄격함이 양질의 기사 만드는 이유죠. 그래서 저는 그 엄격함에 대해서 자부심 갖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한 측면도 있었어요."
- 어떤 측면에서 답답하셨어요?
"농반진반인데, 저는 어릴 때부터 말 꾸며내는 걸 굉장히 잘했거든요. 근데 잘하는 걸 (기사에선) 못하죠. 그러니 저는 답답한 거예요. 아직은 소설을 한 번 써봤기 때문에 소설이 뭔지 아주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소설가가) 기본적으로는 꾸며내는 말을 다루는 직업이라고 보거든요. 저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말 꾸며내는 걸 굉장히 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굉장히 재미있어요. 그리고 사실에 대한 엄격함으로부터 해방되는 느낌이 있어요. 물론 소설가는 사실에 대한 엄격함이 아니라 자기가 창조한 세계의 질서에 대한 엄격함이 필요한 직업이라고 보거든요. 거기서 나오는 재미를 당분간 만끽하면서 글을 쓰고 싶어요."
- 기자 생활하며 소설 쓰는 기자도 많은데 퇴사 후 출판사까지 차려서 책 낸 거잖아요. 이유가 있을까요?
"일단은 제가 멀티테스킹이 잘 안 돼요. 라디오 진행을 2년만 하고 그만둔 건, 기자 생활과 라디오 진행 동시에 하면 둘 다 망하겠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어요. 지금도 기자와 소설가를 둘 다 양립할 수 있겠느냐 하면 저는 그 정도 능력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부업으로 소설가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기왕 시작한 거 승부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 승부라는 게 어떤 문학상을 받겠다는 게 아니에요. 제가 재미있는 세계 만들어낼 능력이 있는 것인가를 스스로 시험해보고 이겨보고 싶은 거죠. 그래서 한 5년 정도 열심히 한번 써보고 되면 가는 거고, 아니면 접을 겁니다. 제가 한 5년 썼는데 저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면 접고 다른 장사를 하든지 아니면 남의 책을 내든지 다른 길을 찾아아죠."
- <삼성동 하우스>는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의혹을 모티브로 한 거죠. 어떤 이유에서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지난 2016년에 이건희 회장 성매매(의혹) 보도를 취재하면서도 '굉장히 드라마틱한 스토리'라고 생각했어요. 누가 이런 걸 소설이나 영화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제가 쓸 생각은 없었어요. 기자들은 한 사건이 끝나면 바로 다음 사건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 특별히 길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그래서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그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잖아요. 탄핵이 될 때 박근혜 대통령한테 뇌물을 제공한 삼성전자 이재용 당시 부회장도 감옥에 갔습니다. 그때 '아 삼성의 권력도 이렇게 해체가 되는구나. 이제 예전 같지 않구나'라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2021년 이재용 부회장이 가석방됐고, 이때 과정이 또 굉장히 코미디였죠. 언론들도 이 부회장 사면하라는 기사가 많았고, 또 여론조사 하면 사면해야 된다는 여론조사가 더 높았어요. 탄핵으로 만들어진 문 정부도 법무부 (심사)규정을 바꿔가면서까지 이 부회장을 석방시켜 논란이 됐던 거예요(관련 기사: 이재용 위해 가석방 심사 기준 낮췄다?... 대체로 사실 http://omn.kr/1ut1t ).
물론 비판 여론이 있었죠. 그러나 전체적으로 이 부회장에 여론이 우호적이기 때문에 문 정부도 그렇게 진행한 거예요. 그래서 그때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한국 사회에서 삼성이라는 포지션이 본질적으론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착각했다'라고 생각했고, 아무도 안 쓰니까 제가 쓰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는데... 과거에 소설을 써 본 경험이 있었던 건 아니지 않나요?
"이게 아까 말씀드렸듯이 기자는 이야기를 쓰는 직업이죠. 이건 (작가와) 본질적으로 같고요. 개인적 스토리이지만 어릴 때부터 옛날이야기를 되게 좋아했어요. 저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에 집이 잘 살았어요. 전래동화 전집이 10권짜리가 있어서 그걸 거의 외웠어요. 그리고 제가 1학년에 입학했을 때 담임선생님은 자기가 쉬고 싶으면 저를 교탁에 불러놓고 애들한테 옛날 얘기해주라고 했거든요. 저는 그 뒤로 소설가의 꿈을 꾸지는 않았고, 대학 때 대학 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응모해 본 적은 있는데 떨어졌어요. 다만 말씀드렸듯이 기자라는 직업이 이야기를 쓰는 직업이라면 저는 매일 (그 과정에서) 소설 쓰는 연습을 했던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 2021년 8월 13일 당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가석방 되어 출소 하고 있다. |
ⓒ 이희훈 |
"대학 다닐 때 마당극 연극 같은 데 꽤 관심이 있었고 연출도 해봤어요. 그때 했던 연습들이 굉장히 도움 많이 됐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캐릭터가 있으면 작품에 나오지는 않아도 그 캐릭터가 어떤 사람인지 분석하고 만들어내죠. 그걸 전사라고 하잖아요. 그런 연습들은 대학 때 꽤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 소설에 이동해 기자가 나오잖아요. 이동해는 이야기를 끌어가는 핵심 인물인데 이동해와 기자 김경래는 같은 인물인가요?
"저와는 많이 다르고요. 오히려 제가 생각했던 캐릭터는 심인보 기자였어요. 심 기자는 이건희 회장 사건 취재를 같이했던 기자이기도 하고요. 심 기자는 저에게 후배지만 굉장히 훌륭해서 존경해요. 그래서 저 캐릭터가 꼭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심 기자가 재미가 없어요. 그래서 심 기자의 기본적인 틀에다가 여러 가지를 많이 섞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 소설에 보면 태훈이라는 사람이 노트북 잃어버려서 중고로 샀는데 거기 동영상이 있어서 제보를 하는 거죠. 그게 사실 기반인가요 아니면 상상인가요?
"한 99%가 상상이라고 보면 됩니다. 왜냐면 저희한테 제보자가 있었잖아요. 그 제보자가 이 파일을 어떻게 얻었는지 저희도 아직 정확하게 몰라요. 다만 제가 상상한 거예요. '이 제보자는 이 파일을 어떻게 얻었을까'라고 상상 했을 뿐이죠."
- 소설을 보면 스토리가 쭉 이어지지 않고 다소 왔다 갔다하는데,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크게 두 가지 얘기라고 생각했어요. 하나는 범죄가 벌어진 이야기가 있죠. 또 다른 한 축은 기자가 이 동영상 제보받고 취재해서 보도하는 과정이잖아요. 두 개는 완전히 다른 얘기이기도 한데 또 연결되는 이야기예요. 두 개의 사건 시점도 다른 얘기긴 한데 저는 두 개를 쫙 다 붙여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게 읽는 사람에게 다소 혼란을 주더라도 그 정도 노력을 해야 읽는 사람들은 즐겁다고 생각하거든요. 성공적인지 아닌지는 독자분들이 판단하시겠죠."
- 소설에 보면 기자들 취재가 주 내용이던데 기자들도 생각해볼 지점이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수많은 드라마나 영화나 소설 통해서 기자라는 집단이 무엇을 하는지 보잖아요. 그런데 저는 지금까지 마음에 드는 게 별로 없었어요.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게 영화 <스포트라이트>였거든요. 그 영화에선 탐사보도 기자들이 어떻게 취재하는지 굉장히 잘 나와요. 저는 한국 탐사 기자들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 이건희 회장 동영상 파문 2016년 7월 22일, 이건희 삼성 회장의 과거 성매매 의혹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돼 파장이 일고 있다. 사진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 사옥. |
ⓒ 연합뉴스 |
- 그건 문제가 있지 않나요?
"그렇죠. (일부 대중은) 그런 용감한 기자들을 참 기자라고 환호하곤 하죠. 하지만 저는 이 '용감한' 기자들 때문에 언론이 위험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언론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사람들이라고 보거든요. 이 소설 속 기자들은 용감하지 않아요. 마지막까지 사실 확인을 하지 않으면 기사 쓰기 힘들어 하는 소심한 기자들이에요. 그런데 저는 그런 소심한 기자들이 결국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거든요. 결정적인 증거가 있어도 그 증거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기자들, 사명감보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기자들, 그런 프로페셔널리즘이 훨씬 더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용감한' 기자들이 필요한 시기가 있겠죠. 근데 지금은 용감한 기자들보다 소심한 기자들이 훨씬 더 중요한 시대라고 보거든요. 그런 기자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 차기작으로 정치권이나 검찰 이야기를 소재로 쓰려고 하시는 것 같던데 생각하신 게 있나요?
"제가 농담 삼아서 인터뷰할 때 <삼성동 하우스> 다음 책은 '서초동 하수구'라는 얘기를 했는데 아직은 진짜 농담입니다. 근데 언젠가는 진담이 될 겁니다. 왜냐하면 검찰 이야기는 꼭 쓰고 싶었어요. 심인보 기자와 함께 썼던 <죄수와 검사>의 소설 판이죠. 그런데 그게 검사가 죽어서 검사의 죽음의 이유를 밝히는 추리 소설이 될지, 아니면 좀비들이 중앙지검을 습격하는 좀비 소설이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검찰은 꼭 쓰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고, 정치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서초동과 여의도는 욕망이 넘쳐흐르는 동네잖아요. 극적인 스토리가 되게 많은 것 같아요. 저는 그 얘기를 쓰고 싶기는 한데 이게 많이 나온 얘기이기 때문에 뻔하지 않게 접근할 사건과 캐릭터를 찾아내는 게 중요할 것 같고요. 또 하나 생각하는 건 <삼성동 하우스> 주인공들을 이런 이야기에 다시 등장시킬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지금 머리를 굴려보고 있는데 본격적으로는 2023년 2~3월에 시작할 생각입니다."
-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해주세요.
"<삼성동 하우스>라고 해서 굉장히 무겁고 기사 같은 책이라고 선입견을 가지실 분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근데 저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소설을 쓴다면 장르 소설을 쓰고 싶었거든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 사람이지 무거운 얘기를 쓰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재미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책을 한번 접해보시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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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북의소리'에도 중복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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