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자본 시장 ‘구원 투수’ 서유석 신임 금융투자협회장
서유석 전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61)가 제6대 금융투자협회장으로 선출됐다.
1차 투표에서 65%대 압도적 득표를 얻었다. 당초 박빙의 승부로 2차 투표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상위 득표자 2명을 대상으로 결선 투표를 진행한다. 1차에서 큰 표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는 점은 서유석 회장에 대한 지지가 그만큼 광범위했다는 점을 말해준다.
전폭적인 지지에도 서 회장이 마냥 웃을 처지는 아니다.
최근 자본 시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증권업계는 2022년 10월 레고랜드 회사채 사태에서 촉발된 부동산 PF 불안 요인이 남아 있다. 자금 경색이 심해지며 일부 중소형 증권사를 중심으로 매각설, 흑자 도산설까지 나온다. 설상가상 주식 시장이 급락하며 증권사 수익 구조가 나빠졌다.
운용사 위기감도 높다. 펀드 수탁액 감소 추세는 이어지고, 투자자 불신도 크다. 아울러 서 회장은 금융투자소득세 법안에 대해서도 업계 의견을 다시 모아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소외됐던 운용업 목소리 반영 기대
서 회장 취임은 우리나라 금융 투자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최초로 자산운용사 출신 후보가 당선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금융투자협회 회원사 385곳 중 자산운용사가 308개사, 증권사가 60개사다. 운용사는 회원사 숫자로는 크게 앞선다. 하지만 협회 내에서 증권사 대비 입지가 좁고 의견이 잘 반영되지 않는다는 불만이 있었다.
금투협회장 선거 투표권 30%는 회원사 1곳당 1표씩 부여한다. 나머지 70%에 대해서는 회원사 분담금에 따른 가중치가 반영된다. 증권사가 자산운용사나 선물회사보다 규모나 자금력에서 우월한 만큼, 증권사가 협회장 선거에서 입김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금융투자소득세 논란은 자산운용업계 불만에 더욱 불을 붙였다. 현행 금투세는 사모펀드 투자수익에 양도세(22%) 대신 배당소득세를 적용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최고 세율이 49.5%까지 적용돼 ‘세금 폭탄’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펀드업계에서는 배당소득세 적용 법안이 운용사를 고사(枯死)시킬 것이라며 들끓었다. 일단 금투세 2년 유예로 결론 났지만, 서 회장 앞에는 배당소득세 적용을 풀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놓였다.
서 회장이 “펀드에 대한 배당소득 처리 문제는 중요하다”며 “증권사 원천징수 과정에서 오는 부담도 큰 만큼, 업계와 협회와 당국이 모여 금융투자소득세를 정비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야 한다”고 밝힌 이유기도 하다.
업계는 서 회장이 각 사의 목소리를 조율하는 데 적임자라고 평가한다. 1983년 대한투자신탁(현 하나증권)으로 금융투자업에 입문한 그는 미래에셋증권을 거쳐 2016년부터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로 5년간 회사를 이끌었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경험을 두루 갖춰 금융투자업계 내 통합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 받았다.
서 회장 역시 화합에 힘쓰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선거 전부터 본인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균형’과 ‘소통’을 빼 들었다. 증권사와 운용사 경험을 두루 갖춘 만큼 소통의 리더로 우뚝 서겠다는 각오다.
당선 직후 그는 “금투협은 증권, 자산운용, 부동산신탁, 선물회사가 공동으로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조직”이라며 “내가 발로 더 뛰더라도 대형 증권사, 중소형 증권사, 자산운용은 물론, 신탁사와 선물사까지 각층의 의견을 하나라도 더 들어 소외감이 없도록 하고 업권 간 오해도 불식시키는 소통에 힘쓸 것”이라고 답했다.
미래에셋·ETF 확장
금투세 정비·퇴직연금 등 과제도 여럿
서 회장은 CEO로서 경영 능력도 입증했다. 그의 대표적인 성과는 상장지수펀드(ETF) 확대와 글로벌 진출이다.
서 회장이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로 재직하던 시절 펀드 자산 규모는 크게 늘어났다. 2020년 공모 주식형 펀드에서 돈이 빠져나갈 때 타깃데이트펀드(TDF) 등을 앞세워 자금을 끌어모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 펀드의 해외 진출도 그의 공으로 꼽힌다.
재직 시절, 미래에셋 영토를 미국, 캐나다, 홍콩 등 10개국으로 넓혔다. 2021년 8월 말 기준 전체 ETF 순자산 규모는 86조원에 달하며 국내 ETF 시장(64조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아울러 OCIO(외부위탁운용관리)와 해외 대체 투자 분야에서도 성과가 컸다. OCIO란 사내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외부 전문 기관에 아웃소싱(Outsourcing)하는 운용 체계를 뜻한다. 저금리·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며 OCIO 시장을 찾는 법인·대학·기금 등이 늘어났다. 업계 추정 OCIO 시장 규모는 100조원에 달한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그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매경이코노미 100대 CEO에 선정되기도 했다.
서 회장은 향후 시장 안정화에 힘쓰는 한편, 당국에 실질적인 정책 제언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증권사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한국은행과 한국증권금융을 통한 차입자 비공개 방식 무담보 단기차입’이라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유동성 위기의 빠른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정부 당국과 유관 기관과의 긴밀한 공조 체계도 약속했다.
그는 “내년에는 부동산발(發) 자금 경색이 금융투자업계로 전이할 수 있다”며 “그런 과정에서 증권사가 일시적 유동성 부족으로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자본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것도 서 회장의 과제다.
한국거래소의 67년 독점 체제를 깰 대체거래소(ATS) 설립도 속도를 내야 한다.
대체거래소는 한국거래소가 하던 주식 거래 기능을 맡는 것이다. 대체거래소는 증권형토큰(STO)과 대체불가능토큰(NFT) 거래까지 염두에 두고 있어 특히 관심이 쏠린다. 현재는 자본시장법에 따라 대체거래소 거래 대상이 상장 주식과 DR로 한정돼 있었다. 증권형토큰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토큰 형태로, 증권사들이 신규 먹거리로 보고 관련 사업 준비에 공들이는 중이다.
금융투자협회를 중심으로 증권사 19개사, 증권 유관 기관이 참여하는 ATS 준비법인 ‘넥스트레이드’는 2022년 11월 창립총회를 열고 김학수 전 금융결제원장을 초대 대표이사로 선임하기도 했다. 그는 공약으로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 도입을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 통과도 내세웠다. BDC는 자산의 일정 비율 이상을 벤처·혁신 기업 등에 투자하는 펀드다. 환매금지형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벤처·혁신 기업이 장기적·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안착 역시 핵심 과제다.
퇴직연금 확정기여(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IRP) 가입자라면 자신의 퇴직연금 계좌가 있는 은행·보험·증권사에서 디폴트옵션 상품을 선택해야 한다. 한번 디폴트옵션 상품을 선택하면, 이후 다시 운용 지시를 내리지 않아도 선택한 상품에 퇴직연금의 100%가 자동으로 투자·운용된다. 적극적인 투자를 도모하는 동시에 증권·운용사에는 새로운 먹거리가 될 수 있다.
서 회장은 “정부의 공적연금 개혁과 발맞춰 개인연금과 퇴직연금 시장을 크게 성장시키고 싶다”고 밝혔다. 국민 노후가 중요한데, 공적연금이 다 커버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당국을 설득해 사적연금에 인센티브를 많이 주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91호 (2022.01.04~2023.01.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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