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해도 너무한다" 꼴찌팀 감독의 이유있는 분노
[이준목 기자]
프로농구 서울 삼성 썬더스가 반년 만에 다시 슬픈 제 자리로 컴백했다. 삼성은 지난 1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SKT 에이닷 프로농구 서울 SK와의 시즌 4번째 맞대결이자 새해 첫날 경기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끝에 67-86로 완패를 당했다.
어느덧 5연패 수렁에 빠진 삼성은 10승 18패로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공동 8위 그룹과의 승차가 1.5경기로 벌어졌다.
지난 시즌 고작 9승 45패에 그치며 압도적인 최하위이자 구단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경신했던 삼성은, 이번 시즌 초반 은희석 감독과 이정현을 영입하며 진영을 새롭게 가다듬고 초반 돌풍을 일으켰다. 강팀들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2라운드 중반까지 5할 승률을 유지했다. 이정현이 해결사로 맹활약했고, 김시래, 마커스 데릭슨, 이호현, 이원석, 이동엽 등이 고르게 제 몫을 해내며 은희석 감독 특유의 끈끈한 농구가 녹아드는 듯 했다.
하지만 부상이 삼성의 발목을 잡았다. 주포인 데릭슨이 무릎 부상으로 이탈한 것을 비롯하여 김시래, 이원석, 이호현, 이동엽 등도 줄줄이 쓰러졌다. 36세가 된 노장 이정현은 상대의 집중견제와 체력적 부담 속에 힘이 떨어진 모습이다. 결국 삼성은 지난달 30일 수원 KT전 패배로 올시즌 첫 최하위까지 추락했고, SK와의 라이벌전마저도 무기력하게 내주며 지난 시즌의 악몽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사실 삼성은 이미 올시즌도 전력상 유력한 최하위 후보였다. 팀 평균 득점(74.0점), 3점슛성공률(32%), 어시스트(15.3개)는 꼴찌, 야투성공률(43.4%) 9위, 리바운드(33.4개) 8위에 그치며 대부분의 지표에서 하위권에 머물러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경기가 안 풀린다고 해서 쉽게 포기하는 듯한 프로 선수들의 나약한 모습에 있다. 거듭되는 졸전에 은희석 감독의 인내심도 한계에 이르고 있다. SK전에서도 삼성은 경기 초반 이정현의 활약으로 기세를 올리며 1쿼터를 앞서나간 채 마무리했다. 하지만 2쿼터부터는 집중견제를 받은 이정현의 공격력이 주춤했고, 삼성의 득점도 멈춰 섰다.
후반전 역시 똑같은 흐름이 이어졌고 삼성의 자멸속에 SK는 수월하게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S-더비'가 나름 KBL을 대표하는 라이벌전임에도 삼성은 지난 성탄절 원정경기 18점 차 패배에 이어 새해 홈 맞대결에서도 SK에 19점 차 대패를 당하며 실망스러운 모습으로 일관했다.
삼성 선수들의 무기력한 모습이 이어지자 작전타임이 거듭될수록 은희석 감독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는 장면이 농구팬들에게 화제가 됐다. 은 감독은 점수차가 벌어지던 4쿼터 작전타임 말미에 선수들의 소극적인 플레이를 지적하며 "파울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왜 이렇게 온순해!"라며 호통을 내질렀다.
그리고는 답답한 마음에 등을 돌려 "아이, 정말"이라고 깊은 혼잣말로 탄식을 내뱉었다. 이 장면에서 일각에서는 은희석 감독이 욕설을 한 게 아니냐는 오보가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의 경기력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은 감독은 결국 다시 작전타임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폭발한 은 감독은 선수들의 플레이를 하나하나 강하게 질타하면서 온갖 어록이 쏟아져나왔다. "바깥에서 공 돌리기 하다가 나중에 슛 쏠 사람 없으니까 다 저쪽으로 숨어있고, 이정현만 바라본다. '폭탄처리' 하라는 거냐? 진짜 해도해도 너무하네"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어 은 감독은 "그래, 시간에 쫓겨서 슛을 했다 치자. 리바운드는 안 들어가냐. 멀뚱히 서서 손만 들고 '저기요, 저 매치 좀 잡아줘요' 하는 거냐? 왜 안 하는 거냐. 너네 그래서 뺀 거야!"라며 등을 돌려서 교체되어 벤치에 있던 선수들까지 질타했다.
SK전이 끝난 뒤 인터뷰에서 은희석 감독의 경기 평가도 비슷했다. "경기를 잘 하다가도 특정 선수에게만 의존하면서 그 선수가 막히게 되면 나머지 선수들은 다 숨어버리는 일이 반복된다. 지금 연패에 빠지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고 우리의 고질적인 문제"라며 부진의 원인을 분석했다.
전통의 명문이던 삼성은 2010년대 이후 강팀의 반열에서 내려오며 오랜 침체기를 겪어야했다. 삼성의 부진이 길어지며 덩달아 이슈가 된 것이 바로 작전타임이었다. 안준호-김동광-김상준-이상민 등 삼성의 역대 감독들은 기본적인 플레이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선수들의 멘탈을 바꾸기 위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했다. 삼성의 작전타임 때마다 선수들의 안이한 플레이 때문에 고통받는 역대 감독의 표정과 강제 어록들은 '극한직업 삼성 감독 시리즈'로 불리며 누리꾼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학 사령탑 출신인 은희석 감독은 기본과 집중력을 누구보다 강조하는 지도자다. 은 감독은 프로 사령탑으로서는 올해 처음 데뷔했지만 벌써 "선수 레벨 안 올리고 싶어?" "양반처럼 수비해서 상대가 압박 당하냐", "지시사항을 따르겠다는 거야, 안 따르겠다는 거야" 등 숱한 어록을 만들어냈다. 일각에서는 성인 프로 선수들을 대학생 다루듯이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한편으로 그만큼 기본적인 자세를 반복해서 지적해야할 만큼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삼성의 팀 문화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은 감독은 SK전 마지막 작전타임 말미에 마치 이날 경기를 요약하는 듯한 중요한 일침을 날렸다. 은 감독은 패색이 짙어지자 자신감을 잃고 소극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들에게 "그래서 안 바뀌어지는 거다. 철저하게 타성에 젖어있는 거야"라고 호통을 내질렀다. 어쩌면 이는 장기간의 패배주의에 젖어있는 삼성 농구를 지켜봐야 했던 농구팬들의 심경을 대변하는 이야기였기에, 오히려 공감대를 자아냈다.
한 팀의 문화를 바꾸는 것은 감독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지난 10여 년간 삼성은 한 두 시즌을 제외하고는 늘 승리보다 패배가 더 익숙한 팀이 됐다. 경기 외적인 사건사고도 많았다. 선수들 스스로가 먼저 각성하고 프로다운 절실함이 무엇인지 더 고민하지 않는다면, 삼성은 올해도 꼴찌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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