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방송 뷰] 장르물과 ‘학폭’의 연이은 만남…쾌감 줄인 ‘더 글로리’에 묻어난 고민

장수정 2023. 1. 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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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 복수 쾌감보다는 학폭 현실 드러내는데 방점
글로벌 순위 5위 기록하며 호평 중

‘돼지의 왕’, ‘약한 영웅’, ‘3인칭 복수’, ‘더 글로리’ 등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복수를 감행하는 과정을 담는 작품들이 꾸준히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10대 주인공 드라마 또는 사회고발적 성격을 띠는 작품에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등 이제는 학폭의 심각성에 제작진도, 시청자도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학폭 피해가 복수극 또는 액션물의 동력이 되곤 하는데, 이 과정에서 자칫 장르적 쾌감을 유발하는 소재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이어지기도 한다. 이 가운데 ‘더 글로리’가 장르적 재미와 메시지 사이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보여주면서 ‘좋은 예’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달 30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가 공개 직후 국내 넷플릭스 시리즈 순위 1위에 등극하며 흥행 청신호를 켰다. 또한 지난 1일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기준 ‘오늘의 TOP10 TV 시리즈 부문’에서 전 세계 5위에 이름을 올리면서 글로벌 흥행에 대한 기대감도 고조시키고 있다.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동은(송혜교 분)이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로, 김은숙 작가와 송혜교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특히 그간 로맨스 드라마에서 강점을 보여 온 김 작가와 송혜교가 복수극이라는 장르물에 함께 도전하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었다.


결과적으론 김 작가도, 송혜교도 변신에 ‘성공했다’는 평을 끌어내고 있다. 김 작가 특유의 오글거리지만, 달달한 대사들은 촌철살인으로 바뀌어 학폭의 적나라한 현실을 짚어냈으며, 송혜교 또한 동은의 메말랐지만, 강단 있는 내면을 섬세한 연기로 표현해내며 호평을 받고 있다.


다만 8부작으로 구성된 파트1에서는 동은이 가해자들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가며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한편, 학폭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짚어내는데도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선생님과 경찰 등 어른들의 묵인하에 피해자들이 속출하는 학교 현실부터 가해자들 사이에서도 느껴지는 권력의 차이까지. 다양한 캐릭터들의 관계망을 촘촘하게 그려나가면서 ‘더 글로리’의 현실이 곧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라는 사실을 이해시킨다. 동은은 물론, 누구라도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음을, 그리고 그들을 향해 언제든 다양한 폭력이 향할 수 있음을 공들여 설명하기도 한다.


동은이 행하는 사적 복수를 향한 고민도 묻어난다. 동은이 이 복수를 위해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지, 그럼에도 왜 복수를 감행해야 하는지까지 빠뜨리지 않고 설명하면서 사적 복수의 쾌감을 마냥 강조하는 것을 지양한다. 김 작가가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으로 시청자들을 만나는 이유에 대해 “욕설도 등장하고 내용도 적나라하지만, 사법체계 안에서의 복수가 아니라 사적 복수를 선택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짚은 것처럼, ‘더 글로리’는 복수극의 카타르시스를 강조하며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하기보단, 메시지에 깊이를 더하는데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다.


학교폭력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웨이브 ‘약한 영웅 class1’을 비롯해 티빙 ‘돼지의 왕’, 디즈니플러스 ‘3인칭 복수’ 등 학교폭력을 메인 소재로 삼는 작품들이 늘고 있다. 특히 해당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가 이미 형성된 만큼 학교폭력 피해를 치열한 복수극 또는 액션물의 동력으로 삼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다만, 이것이 학교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긍정적 기능 외에, 자칫 장르적 쾌감을 강조하다 작품의 메시지가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안게 됐다.


물론 ‘돼지의 왕’, ‘약한 영웅’ 등 최근의 작품들 모두 학교폭력 피해를 적나라하게 묘사하면서 동시에 구조적 문제까지도 함께 짚어내려는 노력을 보여주고는 있다. 그럼에도 ‘돼지의 왕’은 스릴러적 매력을, ‘약한 영웅’은 액션의 시원함에 방점을 찍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 이 과정에서 장르가 소재 또는 메시지를 앞도하는 상황이 연출될 때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파트1에서 복수의 시원함 대신 서사의 섬세함을 택한 ‘더 글로리’의 선택이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물론 오는 3월 공개될 파트2가 남긴 했으나, 학교폭력 소재를 장르의 틀 안에 녹여내려는 시도들이 이어지는 현재. ‘더 글로리’에 묻어난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이 콘텐츠들이 어느 방향으로 향해야 할지 보여주는 긍정적인 예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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