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에 피로까지, 손흥민의 슬럼프? 해법이 필요해
[이준목 기자]
▲ 마스크 벗고 분전하는 손흥민 |
ⓒ EPA/연합뉴스 |
손흥민은 지난 2022년 축구 인생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아시아 선수 최초로 유럽 3대 빅리그인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올랐고, 카타르월드컵에서는 한국축구대표팀의 12년만의 원정 16강행을 이끌었다. 한국축구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선수'에도 또다시 선정됐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자타공인 '월드클래스'로 인정받았고, 더 나아가 한국축구 역사상 GOAT(역대 최고 선수)의 반열에까지 올랐다는 평가를 받은 한 해였다.
하지만 지난해 후반기인 2022-2023시즌 개막 이후의 행보를 놓고보면 명암이 극명하게 교차한다. 소속팀에서 골을 못넣는 경기가 대거 늘어났고, 이제껏 겪어본 일없는 큰 부상까지 당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월드컵에서는 마스크 투혼을 펼치며 많은 박수를 받았지만, 정작 소속팀에 돌아와서는 좀처럼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자연히 현지 언론들의 평가도 갈수록 차가워지고 있다.
손흥민의 토트넘은 지난 1일(이하 한국시간) 영국 런던에 위치한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2023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18라운드 아스톤 빌라와의 홈경기에서 0-2로 완패했다. 새해 첫 경기에서 무기력한 패배를 당한 토트넘은 9승 3무 5패, 승점 30점으로 5위로 내려앉았다. 한 경기 덜 치른 4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승점 32)와 격차가 승점 2로 벌어졌다.
토트넘은 월드컵 휴식기 이후 재개된 리그 2경기에서 1무 1패에 그치고 있다. 단지 무승보다 더 뼈아픈 것은 최악의 경기력이었다. 토트넘은 공수 모두 총체적인 난국을 드러내며 조직력이 무너졌고 실책까지 겹치며 후반에만 2실점을 내줬다. 최전방의 해리 케인에서 골키퍼 위고 요리스까지 주전 대부분이 극도로 부진했다. 어쩌면 진 게 당연한 경기였다.
손흥민 역시 부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안면보호 마스크를 쓰고 선발 출전했던 손흥민은 이날 경기 도중 팀과 본인 모두 답답한 경기력이 이어지자 불편함을 느낀 듯 전반 19분 만에 과감하게 마스크를 벗었다. 지난해 11월 안와골절 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른 뒤 아예 마스크없이 경기를 소화한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손흥민의 투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손흥민은 전·후반 통틀어 두 번의 슈팅을 날리는 데 그쳤고, 장기인 역습과 드리블 돌파는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동료들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 데다, 라인을 내리고 공간을 촘촘하게 막아선 빌라의 수비진이 수적 열세로 고전하는 장면이 이어졌다. 토트넘이 득점 없이 무기력한 패배를 당하면서 손흥민의 소속팀에서의 공식 경기 득점 가뭄도 어느새 8경기까지 늘어나게 됐다.
손흥민은 올 시즌 토트넘에서 각종 대회를 통틀어 현재까지 공식전 21경기에서 5골 2도움을 기록 중이다. 대회별로 프리미어리그에서는 15경기 3골 2도움, 챔피언스리그에서는 6경기 2골이었다.
손흥민의 이름값에 비하면 저조한 수치도 아쉽지만, 더 큰 문제는 실제로 골을 넣은 것이 단 2경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리그에서는 9월 레스터시티전 헤트트릭, 10월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프랑크푸르트전 멀티골로 '몰아치기'를 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경기에서는 득점이 없다.
개막 이후 8경기 연속 침묵하던 손흥민은 올시즌 처음으로 교체투입된 레스터시티전 헤트트릭으로 살아나듯 했으나, 프랑크푸르트전 이후로는 또다시 올시즌 최다 타이인 8경기 연속 침묵에 빠졌다. 더구나 가는 팀마다 부동의 주전이었던 손흥민이 선발출장했던 경기로만 국한하면, 개인 역대 최장경기 연속 무득점 기록이다. 초반만 해도 일시적인 부진 정도로 여겼지만, 이제는 명백히 '심각한 슬럼프'에 빠졌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
물론 손흥민의 부진이 단순히 개인의 탓만은 아니다. 토트넘은 현재 데얀 클루셉스키, 히샬리송이 부상으로 이탈하며 공격진의 무게가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부동의 파트너 해리 케인도 빌라전에서는 위험지역에서 공을 거의 만지지 못하며 고립되었고 손흥민과의 콤비플레이도 볼 수 없었다.
또한 시즌 내내 손흥민과 공존 문제가 끊임없이 거론되고있는 이반 페리시치는, 이날도 함께 출전했으나 동선이 겹치거나 패스타이밍을 자주 놓치는 모습을 거듭하며 한숨을 자아냈다. 수비 조직력의 달인이라는 콘테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음에도 토트넘은 7경기 연속 2실점, 10경기 선제 실점이라는 최악의 기록을 세우며 수비도 엉망이다.
하지만 주변 환경만을 탓하기에는 손흥민 개인의 폼도 예전 같지 않다. 영국 현지언론들은 손흥민의 경기력을 분석하며 대부분 열심히 뛴 것은 인정하지만 보여준 게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풋볼런던'은 '손흥민은 마스크를 벗어던졌지만 여전히 자신감이 부족해보였다'고 평가했고. '90MIN'은 '노력했지만, 시도한 것마다 번번이 실패했다'고 꼬집었다. 또한 '풋볼365'는 '공을 가지고 있어도 상대에게 위협을 주지 못한다. 볼터치-패스 모두 지난 몇 년간 볼 수 없었던 모습'이라며 손흥민의 문제점을 좀더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손흥민은 지난 몇 년간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강행군을 이어갔다. 여기에 부상이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월드컵 전 경기를 소화하고 쉴 틈 없이 다시 리그가 재개되어 숨돌릴 틈 없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일시적으로 '번아웃'이 왔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선수층이 얇은데다 갈길이 바쁜 토트넘으로서는 손흥민을 대체할 수 있는 옵션이 없다. 콘테 감독의 선수 조합과 전술적 뒷받침도 중요하지만, 골가뭄을 끊는 것은 손흥민 스스로의 극복과 각성이 필요하다.
손흥민은 5일 크리스털 팰리스와 19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다시 득점포와 승리에 도전한다. 토트넘 입단 이래 최악의 시기를 겪고 있는 손흥민이 이 슬럼프를 언제쯤 떨쳐내고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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