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과세 해제에 해외현금 124조, 국내 유입 길 열렸다
유보금 국내 송금, 이중과세 등 문제
올해부터 세법 개정되면서 비과세
고금리 고통 받는 기업들 일단 숨통
해마다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던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 쌓아 놓은 돈이 새해부터 국내로 흘러들어올 전망이다. 한국 기업 해외 법인이 국내로 송금하지 않고 해외에 쌓아둔 유보금이 124조원이 넘는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을 이용해 우리 기업의 해외 자회사 해외유보금인 ‘재투자수익수입’을 계산해 본 결과, 통계를 내기 시작한 1980년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해외 유보금은 988억6600만달러(약 124조8677억원)에 이른다. 재투자수익수입은 한국 기업이 지분 10% 이상을 보유한 해외직접투자기업이 현지 경영을 통해 거둔 이익을 국내로 배당하거나 투자하지 않고 쌓아둔 돈을 말한다.
◆기업들 수십兆 벌어도 이중과세 문제로 국내 송금 안해=재계 관계자들은 대기업 돈 절반이 해외에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재투자수익수입은 우리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가 늘어난 2010년 이후 계속 증가했다. 2021년 104억3000만달러(약 124조 8677억원)를 기록해 역대 최대 규모를 보였다. 지난해에도 해외유보금이 사상 최대 규모로 증가했을 가능성이 크다. 3분기 기준 해외유보금은 86억5740만달러(약 10조9342억원)였다.
작년 우리 기업들은 돈줄이 말랐다며 고통을 호소했다. 오를 대로 오른 금리 탓이다. 회사채 시장은 물론 기업공개(IPO), 유상증자 등 국내 자본 시장에서의 자금을 확보하기 힘들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해외에 있는 돈을 가져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 관계자들은 안 ‘안 가져온 것이 아니라 못 가져왔다’고 말한다.
세금 문제, 해외 국가의 외환통제로 돈이 묶여 있었다는 설명이다. 해외 자사사 돈을 가져오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 배당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자회사에 있는 국가에도 세금을 내고 한국에서도 세금을 내는 2중 과세 문제가 있었다.
예를 들어 해외 자회사가 현지에서 100억을 벌어들이고 현지 법인세로 20억원을 냈지만 국내 배당 절차에 따라 또다시 국내 법인세율 10~25%인 8억~20억원을 내는 것이다. 현행법으로는 해외 배당금에 대해서는 일부 세액 공제를 하고 있다. 세액공제액은 해외 자회사 배당금을 해외 자회사가 현지에서 벌어들인 소득에서 현지 법인세를 뺀 값으로 나눠 나온 금액에 현지 법인세를 곱해서 산출한다. 하지만 결국 기업이 한국과 해외에서 모두 법인세를 내는데 국내에서 법인세를 공제받을 때 돌려받는 돈에는 한도를 두기 때문에 이중과세 문제가 생긴다.
◆고금리 시대, 해외 유보금 국내 복귀 '물꼬' 튼 세법 개정=하지만 해외 자회사가 국내로 보내는 배당에 비과세하는 법인세법 개정안이 작년말 국회를 통과했다. 국내 기업이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외국 자회사에서 받는 배당소득의 95%를 비과세(익금불산입)하도록 한 것이다. 이정희 중앙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는 "그간 해외 자회사가 한국으로 보내는 배당금에 매기는 이중과세가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고금리 시대에 기업들의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있어 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 들인 돈을 더 많이 한국에 보낼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작년 달러당 환율이 1400원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지금은 1200원대 후반이지만 아직 심리적으로 달러 가격이 높다고 느끼는 상황이기 때문에 달러를 원화로 바꾸기를 원하는 기업이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해외에 있는 돈은 내 돈이라도 마음대로 우리나라로 가져오기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상당수 국가가 대규모 외화 송금을 법·제도적으로 까다롭게 만들어 놓았다. 중국 같은 경우, 현지 수익을 본국으로 송금하는 ‘과실송금’을 허용하지만 까다로운 서류 절차를 통해 실질적으로는 제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국내로 송금이 필요해 중국 법인 유보금을 송금하려 했지만 서류 절차가 오래 걸리고 까다로워 제때 송금이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기업 청산 절차가 까다로워져 지방정부로부터 ‘2면 3감(2년 세금 면제·3년 소득세 50% 면제)’과 같은 세제 혜택을 받은 경우, 기업을 청산하려면 감면 받은 세금을 다시 내야 한다는 법제도도 생겼다.
9차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겪은 아르헨티나는 외국 돈 해외 반출을 사실상 막아 놓았다. 1억달러 이하 투자 기업은 중앙은행으로부터 외화 반출 허가를 받을 수 없다. 해외로 비교적 자유롭게 돈을 보낼 자격을 얻으려면 투자액이 10억달러를 넘어야 한다. 10억 달러 이상한 투자한 기업은 수출액의 60% 규모 외화를 해외로 반출할 수 있다. 한 국내 기업 아르헨티나 지사장은 "현지 법인들이 수익을 내더라도 본국으로 송금 허가를 내주지 않아 현지 화폐를 보유하거나 부동산, 금융 등 다른 자산에 투자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고용이나 성장의 원천인 기업에 대해 국내에서는 과도한 세금과 규제를 통해 옥좨 왔다. 때문에 세계화 이후 기업들이 국내로 자금을 가져오지 않았던 것"이라며 "리쇼어링(제조업 본국 회귀) 등 탈세계화 흐름과 유동성 위기 국면에서 이제 세계화의 과실을 한국으로 가져오는 방법론을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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