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시작하는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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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부모님 집에서 독립했다.
혼자 사는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회사 근처로 이사했을 때에는 회사에서 세 끼 식사를 해결했고, 환기가 잘되지 않는 원룸 오피스텔의 소박한 부엌에서는 도무지 요리를 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책과 연필, 노트북 사이를 오가며 글자를 쓰는 것이 전부였던 나의 뇌가 새로운 감각에 기뻐하고 있었다.
처음의 기쁨, 새로움, 생경함 같은 것들은 여전히 행위 그 자체 안에 깃들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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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부모님 집에서 독립했다. 혼자 사는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회사 근처로 이사했을 때에는 회사에서 세 끼 식사를 해결했고, 환기가 잘되지 않는 원룸 오피스텔의 소박한 부엌에서는 도무지 요리를 할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자취(自炊)’란 본래 ‘스스로 밥을 지어 먹음’이라는 뜻이기에 진정한 의미의 ‘자취’는 처음인 셈이다. 이번 집은 부엌이 어느 정도 갖춰져 있어 음식을 해먹기 나쁘지 않은 환경이었다. 이사 오자마자 파스타면과 채소, 두부 등 비건 식재료를 사뒀다. 며칠 전 된장찌개를 해먹었는데, 부끄럽게도 내 손으로 밥을 한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랜만에 요리가 정말 즐거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우선 식재료를 직접 만지는 일이 뇌에 신선한 자극이 됐다. 차가운 두부와 버섯을 써는 동안 늘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릴 뿐이었던 손의 촉각이 즐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입에 맞는 적당한 크기로 재료를 자르고, 그것을 배합해 원하는 맛을 구현하는 일 역시 신나는 일이었다. 책과 연필, 노트북 사이를 오가며 글자를 쓰는 것이 전부였던 나의 뇌가 새로운 감각에 기뻐하고 있었다. 물론 결과물은 그리 훌륭하지 않았다. 나는 워낙 손재주가 없는 편이다. 그러나 나의 서투름은 오히려 요리라는 행위를 더욱 즐겁게 만들었다. 더불어 어떤 일을 시작하는 것이 어떤 기쁨을 주는지 오랜만에 다시 생각하게 됐다.
시인이라 불리고 있지만 사실 슬럼프라고 해도 될 만큼 시를 쓰지 못하고 있다. 이래저래 바쁘기도 했지만 그래도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기분이었다. 이전만큼 시 쓰기가 즐겁지 않다는 점이 특히 아쉬웠다. 시 쓰기는 결코 억지로 하고 싶지 않았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요리를 새로 시작하며 기쁨이 회복되는 느낌은 어떤 용기가 됐다. 처음의 기쁨, 새로움, 생경함 같은 것들은 여전히 행위 그 자체 안에 깃들어 있을 것이다. 새해에는 그것을 다시 찾아내는 데 전념할 것이다.
김선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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