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전장연도 전장을 바꿀 때가 됐다
서울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은 새해 첫 월요일부터 긴장해야겠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2일 오전 8시 삼각지역에서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재개키로 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올해 예산안에 자신들이 요구했던 장애인 권리예산 1조3044억원 증액 중 0.8%인 106억원만 반영됐다는 이유에서다. 올해 정부 총지출액이 638조원임을 고려하면 정부도 여야도 인색한 게 아닌가 생각을 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예산안 검토보고서를 읽어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올해 예산안에는 발달장애인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주간활동과 청소년 발달장애인의 방과 후 돌봄 등 2가지 사업을 합쳐 총 2272억700만원이 편성됐다. 이 사업은 전장연이 요구한 장애인권리예산 중 하나다. 주관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장애인 활동지원사에 대한 인건비(활동지원 단가)를 지난해 시간당 1만4805원에서 올해 1만5570원으로 인상하고, 이용자 수는 1만명으로, 월 이용시간은 154시간(주간활동), 44시간(방과 후 돌봄)으로 각각 가정해 예산을 짰다.
그런데 예결위 보고서에 있는 지난해 1~8월 이 사업 이용 실태를 보면, 주간활동과 방과 후 돌봄의 이용실적은 91.7시간과 22시간으로 복지부가 올해 예산안에서 가정한 시간의 50~60% 수준에 그쳤다. 서비스 이용자 수도 8000명대 안팎이었다. 전체 이용실적 대비 시간당 실제 집행된 활동지원 단가는 1만3500원 안팎에 그쳤다. 1만4805원 나갈 거로 가정하고 지난해 예산을 짰는데 실제로는 1만3500원만 나갔다는 거다. 그런데도 복지부와 기획재정부는 올해 이 단가를 1만5570원으로 올리고, 이용자 수, 이용시간도 전부 늘려 예산을 잡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 단가를 1만7000원까지 늘리라는 게 전장연의 요구였다. 정부뿐 아니라 국회까지 전장연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없었던 건 이처럼 집행실적 부진 등 현실적 이유가 있던 거다. 대신 국회가 통과시킨 예산안 수정안을 보면 장애인단체 지원을 포함해 장애인 지원 예산 대부분이 정부안보다 증액됐다.
물론 이걸로 장애인 권리와 복지를 충분히 챙겼다고 할 수는 없다. 전장연은 장애인권리예산과 입법이 보장될 때까지 권리를 위한 투쟁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존중한다. 다만 그 방식이 지금처럼 반드시 출퇴근길 시민의 발을 볼모로 잡는 방식이어야 할지 전장연이 고민했으면 좋겠다.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는 정시성을 생명으로 하는 지하철에는 사실상 테러다. 출퇴근 시간 만원 지하철을 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타야 하니까 타는 거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19세기 독일 법학자 루돌프 폰의 책 ‘권리를 위한 투쟁’에 있는 “평화를 위한 수단은 투쟁이고, 그 평화는 강자에 대립하는 약자의 침묵이 아니다”는 문장을 강조했다. 약자인 장애인의 권리 투쟁을 강자인 비장애인이 이해해야 한다는 함의가 깔려 있는데, 출근길 지하철에 강자와 약자가 따로 있나. 전장연 요구에 대한 결정권이 있는 ‘진짜 강자’는 지하철 안 타고 관용차 타고 다닌다. 예산 결정권이 없는 일반 시민을 볼모로 전장연이 출퇴근길 투쟁을 한 건 일반 사람에게 장애인 권익에 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한 전략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관심보다는 분노를 유발하는 역효과가 더 크다. 오죽하면 다른 장애인 단체가 전장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악화할 것을 우려하고 나설 정도인가.
전체 역의 96%에 장애인 이동 설비가 갖춰진 서울 지하철이 장애인 복리 증진 메시지를 내기 적합한 장소인지도 의문이다. 역 밖으로 조금만 나가도 휠체어가 다니기 곤란할 정도로 좁아터진 인도가 도심에 수두룩하다. 장애인 복리 증진은 100m 달리기처럼 전력 질주로 단시간에 이뤄낼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장애인 고충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와 감수성이 증진돼야 하는 문제다. 출퇴근길 지하철 투쟁은 장애인에 대한 공감보다는 갈등과 혐오만 키울 뿐이다.
이종선 뉴미디어팀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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