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태환의 의학오디세이] 의료의 공공성과 시장성

2023. 1. 2.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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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환 의학박사·이비인후과 전문의

정치권의 볼썽사나운 포퓰리즘 국면과 끝날 듯 끝나지 않는 팬데믹을 거치며 방역, 안전, 돌봄 같은 의제가 부각되고 있다. 의료는 이런 가치를 포괄적으로 담아낸 보편적 복지 틀이다. 평소 의료의 주춧돌인 의료보험 제도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는 ‘찐 지지자’이며 해묵은 수가 논쟁을 뛰어넘는 ‘하이브리드 지지자’인 내가 새해에 작정한 볼멘소리 하나, 기본적으로 한국의 의료는 지나치게 시장화로 내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가 의료 공공성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의료 총량은 여전히 90%가 넘게 민간에 위탁된 형국이다.

주지의 사실, 우리의 민간 의료는 무척이나 공공성이 강하다. 국가 주도의 건강보험 제도 속에 의료기관은 특정 보험 가입자만 취사선택할 방도는 없다. 수가 역시 의료 서비스 공급자가 아닌 건강보험공단이 정하며, 지급 시에도 매우 엄격한 심사를 거친다. 공급과 가격이 통제되고 있다는 것은 여타의 공공물가와 같이 공공성이 강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국민 대부분이 우리 의료를 공공재로 인식하는 배경이다.

「 한국 의료체제의 시장화 빨라져
기본권보다 소비자 권리로 접근
공공성 민간의료 체질개선 절실
건보 효용과 보편의 간극 좁혀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의사라는 편견을 감내하고 주장을 더하자면 공공재인 의료를 국민의 기본권이 아닌 소비자의 권리로 보는 경향도 유감이다. 언론과 시민단체가 의료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에서도 이 같은 태도는 확연하다. 의료 서비스에 관련된 모든 논쟁은 소비자 주권의 시각으로 규정된다. 국민의 기본권이며 공공재인 의료정책을 시장경제의 패러다임인 소비자 시선에서 평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일인지 사실 선뜻 수긍이 가질 않는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수요가 있는 곳에 소비자의 권리가 있다는 근본적 이념을 과연 공공재인 의료 서비스에도 적용할 수 있을지 이쯤 되면 기묘해진다. 사회적 논란이 된 의료 민영화 논쟁의 핵심이며 소득에 따른 의료양극화의 배경이다. 여기서 잠깐, 개인적으로 의료민영화에 따른 영리병원은 시기상조라는 생각이다. 우린 아직 사회적 논의와 준비가 되지 않았으며 사회 양극화는 날로 심화하고 있다.

의료 서비스의 확장 방안으로 의사와 병상 수 확대를 제시하는 이들이 있다. 의료기관과 의사들의 숫자가 많아지면 경쟁의 원리에 의해 의료의 질이 좋아질 것이라는 다소 막연한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간과해서 안 될 것이 있다. 의료 역시 여타의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시장 원리를 따라야 한다면 공공재로서의 의료 서비스는 그 가치를 훼손될 게 자명하다.

2020년 전공의들의 파업을 비난한 근거는 그 어떤 경우에도 의사들의 파업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의사는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다는 공공성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이 경우에는 의료는 명확히 공공재로서 사회적 의미를 부여받는다. 아, 그렇다고 의사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아픈 환자를 두고 의사의 권익만을 앞세운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매우 부담스럽다. 그러나 의사 직업에 대한 인식의 잣대가 상황에 따라 다른 것에 대한 의구심이다.

의료 서비스에 대한 공공성과 기본권을 ‘전가의 보도’처럼 운운하는 것은 따지고 보면 선언적이며 이율배반적이다. 민간 의료기관이 지금처럼 많은 상황에서 우리의 의료 환경이 공공성으로 나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이다. 시장논리에 따른 경쟁으로 필요 불급한 진료는 늘어나며 그에 따른 의료비는 증가하기 마련이다. 우린 이미 문재인 케어의 과다 수요 폐해를 통해 그 결과를 목격했다.

지난 정부에서 그토록 주창했던 의료의 공공화는 우화 속, 정신 나간 거인 같았다. 자신이 어떤 힘을 지녔는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고 갈팡질팡했다. 건강보험 재정 곳간이 거덜 나고 있는데도 이를 돌아보고 따질 틈도 없이 보편성 확대라는 ‘자기최면’ 상태에 빠졌다. 보편적 의료라는 문재인 케어에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투입한 정부가 먼저 할 일은 공공의료를 담당하는 민간의료의 체질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구체적 방안부터 내놨어야 했다. 그게 먼저였다.

공공재로서 역할을 강요받으면서 시장에 내맡겨진 의료계의 문제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시급하다. 소신과 고집이 한끗 차이이듯 공공성과 자율성은 그리 멀리 있는 게 아닐 수 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의료보험 제도가 효용과 보편의 간극을 지금보다 조금 더 깐깐하고 고집스럽게 좁혀가길 바랄 뿐이다. 공공재가 아닌 소비자 주권의 인식으로 굴절된 문재인 케어를 손본다니 그나마 참 다행이다.

안태환 의학박사·이비인후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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