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읽기] 손자와 비밀경찰서
홍콩 특파원으로 부임한 게 홍콩의 중국 반환 3년 전인 1994년이다. 당시 홍콩의 지인으로부터 재미있는 조언을 들었다. 은밀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장소를 이용하란 것이다. 그렇지 않은 장소에선 담뱃갑 속 은박지를 계속 만지작거리며 말을 하라고 했다. 왜? 클래식 음악이나 은박지 소리가 도청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홍콩은 스파이가 들끓는 곳이란 이야기다.
기원전 5세기에 쓰인 『손자병법』은 싸움에 이기기 위한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금까지 애용된다. 그 마지막 13편은 용간편(用間篇)으로 간첩 사용을 다룬다. 적을 이기려면 반드시 적의 상황부터 알아야 한다. 한데 이는 점괘를 통해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첩자가 필요한데 여기엔 다섯 종류가 있다.
첫 번째가 향간(鄕間)이다. 적국의 일반인을 포섭해 고정간첩으로 활용한다. 두 번째는 내간(內間). 적국의 관리를 포섭해 첩자로 이용한다. 세 번째는 반간(反間)이다. 적의 간첩을 매수해 이중간첩으로 역이용한다. 네 번째는 사간(死間). 그릇된 정보를 흘리면 아군에 침투한 간첩이 이를 적국에 알려 적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다섯 번째는 생간(生間). 적국의 동향을 정탐한 후 살아 돌아와 보고하게 한다.
싸움에 이기기 위해 이 다섯 가지의 간첩을 동시에 활용한다. 한데 손자가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반간이었다. 탕왕(湯王)이 하(夏)나라를 멸하고 은(殷)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건 하의 신하였던 이윤(伊尹)을 이용했기 때문이고, 무왕(武王)이 은나라를 멸하고 주(周)나라를 건국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은의 고관 여야(呂牙)를 활용했기 때문이란다.
중국이 한국에서도 비밀경찰서를 운영했고 그곳이 한강변 중식당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며 국내가 발칵 뒤집혔다. 중식당 대표는 억울함을 호소 중이다. 여기서 두 가지를 새겨야 한다. 하나는 중국이 『손자병법』의 나라란 점이다. 중국이 우리 정계와 학계 등 각계를 상대로 광범위한 포섭 활동을 벌였을 가능성은 지극히 크다. 우리의 각성이 절실하다. 지금이라도 중국의 침투 상황을 철저히 파악해 대응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다른 하나는 그렇다고 중국과의 정상적인 교류와 협력 관계마저 마녀사냥처럼 매도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필자는 가본 적 없지만, 문제의 한강변 중식당에서 밥 먹은 것만으로 의심받아서야 되나. 벼룩 잡다 초가삼간 태울 수 있다. 간자(間者)를 가려내 안보를 단단히 하는 것과 중국과의 우호 유지란 두 가지 일 모두가 중요한 새해를 맞게 됐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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