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시대의 초상… 이태원 청춘들의 무표정, 앵글에 담다
사진작가 오형근(59)은 30대 시절인 1990년대에 찍기 시작한 아줌마 연작 사진으로 유명해졌다. 번들거리는 진한 화장, 문신한 게 너무 티 나는 짙은 눈썹, 부를 과시하고 싶어 하는 금장 선글라스, 결과적으로 목의 주름을 도드라지게 할 뿐인 진주 목걸이 등 한국 중년 여성의 전형성을 보여주는 얼굴 사진을 찍었다. 이어 여고생, 군인 등으로 소재를 달리하면서 특정 유형의 인물군을 통해 ‘한국의 문화적 징후를 포착’해 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2012년 군인을 찍은 ‘중간인’ 연작을 마지막으로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어떤 전시를 하지 않았다. 이후 작가는 어떤 대상에 관심을 가지며 전진해왔을까.
오형근이 이런 질문에 답하듯 개인전 ‘오형근: 왼쪽 얼굴’을 한다. 국내에서 10년 만에 하는 개인전이다. 전시는 2014년 이후 진행한 작업을 결산하는 보고서 성격이 짙다. 1층에 작가의 브랜드가 된 ‘아줌마’ 연작 몇 점을 전시해 오형근표 초상 사진의 초기시절을 잠깐 맛보게 한 뒤 중간 시절을 건너뛰고 바로 3층에서 본론으로 들어간다.
3층에서 만나는 것은 이태원에서 만난 청춘들의 얼굴이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다. 표정은 무표정하지만 슬픔과 불안, 그리고 숨기지 못하는 욕망이 눈빛 안에서 서성대고 있다. 최근에 대참사가 일어난 청춘의 해방구 이태원이 작품의 무대가 된 것은 문화적 혼혈 지구인 이태원에서 작가가 성장기를 보냈고, 작가 작업실도 그곳에 있어서다.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에 주역으로 등장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배우 김민하가 이 드라마를 하기 전에 찍힌 사진도 전시장에 나왔다. 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에서 그녀는 욕망과 불안이 뒤섞인 눈빛을 한 채 무표정하게 측면으로 앉아 카메라를 대한다. “시선이 깊은 거야, 신파에 강한 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카메라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는 김민하의 얼굴도 이번 전시 제목처럼 ‘왼쪽 얼굴’로 잡혔다.
전시장에 나온 인물을 모두 왼쪽 얼굴로 찍은 것은 아니다. 정면 사진도 있고, 신체의 일부분만 찍은 사진도 있다. 그러니 왼쪽은 은유이기도 하다. 작가는 “찍은 사진을 살펴봤더니 유난히 왼쪽 얼굴이 많더라”면서 “오른쪽을 바른쪽이라고 하지 않냐. 왼쪽은 열등한 것, 낮은 것으로 보는 사회적 통념에 반기를 드는 마음으로 ‘왼쪽’이라는 용어를 썼다. 왼쪽 얼굴은 말하자면 외진 얼굴, 경계 진 얼굴”이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미국 유학을 가 처음 학부에서 상업사진을 전공했다. 오하이오대 예술대학원에서 순수예술 사진을 공부했다. 1993년 귀국해서 처음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던 그가 아줌마를 소재로 초상 사진을 찍게 된 것은 어머니를 객관적으로 주목하면서부터다. 학교 행사에 오는 날이면 그날따라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하고, 안하던 보석 반지를 하고, 화장도 어색할 만큼 진하게 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어느 날 낯설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렇게 아줌마 연작을 시작했다.
“한국은 아저씨들의 나라입니다. 그런 가부장적 나라에서 아줌마들이 느끼는 고립감, 중심에 서지 못하는 불만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줌마 연작은 화난 인상이 많습니다.”
그의 사진은 ‘일상에서는 존재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아줌마라는 젠더를 표상한다. 아줌마를 찍으면서 초상 사진의 묘미를 알게 된 작가는 한국 사회에서 유형화 될 수 있는 작업을 통해 인물 보고서를 내자는 포부를 가지게 됐다. 1990년대 국내외에서 유행한 유형학 사진의 흐름도 탔다.
그리하여 소녀, 군인 등을 한국 사회학의 보고서처럼 찍었다. 아줌마(1997∼99)에 이은 교복 입은 여고생(2001∼2004), 화장하는 소녀(2006∼2008), 군인(2012∼2014) 연작은 그렇게 해서 나왔다.
그런데 어느 날 작가 특유의 예민한 촉수로 나이와 직업, 젠더와 상관없이 우리 사회에 특정 유형을 넘어 공통적으로 흐르는 사회적 정서가 있음을 포착했다. 그것은 불안의 정서다. 그는 불안의 정서 최전선에 서 있는 청춘들을 담기 시작했다. 이른바 ‘불안 초상’이라고 명명한 이 연작은 거슬러 올라가면 화장을 해서라도 연예인이 된 기분에 근접하고 싶어 하는 소녀들의 사진을 찍을 때부터 감지한 것이기도 하다. 어쨌든 2014년부터 본격화한 불안 초상 연작을 이번 전시를 통해 결산했다. .
초상화는 보통 인물의 성격이나 직업을 드러내는 기물 등 보조적 장치를 배치한다. 인물 사진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스튜디오에서 찍는 오형근의 이번 불안 초상 연작에는 그런 배경이 없다. 대신 그는 배경 색지를 통해 그가 렌즈 너머로 포착한 인물의 성격을 담아내고자 한다. 작가가 택한 인물들은 대부분 거리에서 캐스팅한 지라 거리에서 찍을 수 있지만 일부러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는다.
작가는 인물 사진을 찍으면서도 건축 용어인 ‘파사드’(건축물의 정면)라는 단어를 썼다. 그는 “좋은 사진은 인물의 내면을 보여줘야 한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겨우 모델과 만나서 반나절 시간을 보내는데 어떻게 내면을 끌어낼 수 있겠냐. 내면을 찍는다는 것은 환상이다. 오히려 인물의 전면을 극명하게 찍으면 그게 내면이 된다. 초상 사진에서는 주인공이 보여주고 싶은 얼굴이 파사드다. 나는 건축가들이 말하는 파사드 같은 얼굴, ‘내미는 얼굴’을 찍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청춘들의 정서의 두 가지 핵심, 불안한 마음,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동시에 본다. 불안해서 인정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 더 불안해지는 청춘의 도돌이표를 지금 서울 종로구 율곡로길 아트선재센터에서 하는 개인전에 가면 볼 수 있다. 1월 29일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