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을 흥분시키는 정치인들의 수법
[김준수 기자]
21세기로 접어든 지 20년이 넘게 지났지만 전 세계는 여전히 극우주의 확산에 시달리고 있다.
2022년 6월 프랑스에서는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이 총선에서 약진했고, 10월 이탈리아에서는 '여자 무솔리니'로 불리는 극우 성향 정치인 조르자 멜로니가 총리로 취임했다. 이외에도 여러 국가에서 극우 정당과 정치인이 최근 몇 년 사이 공직에 선출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민주적인 선거 절차가 자리잡았는데도, 여러 국가에서 분열의 언어를 내세운 지도자가 등장하는 셈이다.
지구촌 곳곳을 황폐하게 만든 세계대전으로부터 100여 년 흐른 오늘날, 마치 각국은 전체주의가 미친 후폭풍을 잊고 역사의 과오를 반복하려는 듯하다. 오히려 당시처럼 세계적 전염병의 확산, 경제 침체, 불안함이 열병처럼 퍼지는 상황 때문에 전체주의가 다시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극우 세력의 팽창을 그저 무력하게 지켜보기만 해야 할까?
▲ <우리와그들의정치 -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표지 사진 |
ⓒ 솔 출판사 |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저자인 제이슨 스탠리는 미국 예일대학 철학과 교수이다. 1939년 나치 독일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유대인 부모를 둔 그는 2018년(미국 기준) 출간한 책을 통해 파시즘의 작동 원리를 짚었다.
전문 지식의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파시스트 정치인들은 지적으로 세련된 논쟁을 필요 없는 것으로 만든다. (중략) 건강한 자유민주주의에서, 구별을 나타내기 위한 풍부하고 다양한 어휘를 가진 공공 언어는 필수적인 민주주의 기구이다. 그것 없이는 건강한 공적 담론이 불가능하다. 파시스트 정치는 정치 언어의 질을 떨어뜨리고 저급하게 만들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파시스트 정치는 현실을 가리고자 한다. - 본문 94쪽 중에서
트럼프 집권 시대의 미국, 최근 프랑스·헝가리·폴란드 등 극우 정치인들이 어떤 메시지를 내세웠는지 책에 여러 국가의 사례를 담았다. 그러면서 평등의 가치, 공공의 이익 등 헌법에서 수호하려는 가치를 비하하는 정치인을 거부하지 못할 때 사회에 어떤 악영향이 퍼지는지 보여준다. 신화적 과거를 되찾겠다는 말에 현실의 문제가 가려지고, 성평등을 비롯한 의제는 보수적 가치관에 비해 급진적이라며 평가절하되는 식이다.
파시스트 정치는 민족의 암울했던 과거의 순간들을 모두 부인한다. 2018년 초, 폴란드 의회는 나치 점령기 동안 폴란드가 자국 영토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해, 심지어 기록이 분명한 집단 학살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는 일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중략) 한 나라의 과거 지우기를 법제화하려는 이와 같은 시도는 파시스트 정권의 특징이다. - 본문 42쪽 중에서
음모론과 혐오 정치가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이유
파시스트 정치 전술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이러한 감정을 이용하여 억울한 피해자가 되었다는 느낌을 다수 국민들 사이에서 만들어내고, 그 감정을 아무런 책임이 없는 집단에게로 향하게 한다. 그러고는 그 집단을 처벌하면 피해자의 느낌이 덜어질 것이라고 약속한다. - 본문 160쪽 중에서
책에서는 파시스트 정치인이 '우리'를 하나의 대상으로 규정하면서, 그와 대비되는 다른 집단인 '그들'을 자격 없고 게으른 사람들로 묘사해 증오를 부추기는 속임수를 쓴다며 이에 관해 자세히 묘사했다. 이른바 '갈라치기' 정치의 다양한 버전을 종합적으로 모아놓은 셈이다.
예를 들면 다른 인종의 평등을 보장하는 일을 마치 우리 민족을 차별하는 것처럼 왜곡한다거나, 가부장적 사회를 올바른 것으로 여기면서 페미니즘을 공격하는 식이다. 또한 장애인·성소수자를 동등한 시민의 자격이 없는 대상으로 대하거나, "사업과 전 국민의 생활에서 효율성을 저해한다"며 노동조합을 매도하는 방식도 더해진다.
현재 한국 사회에도 필요한 것
본문에는 1960년대 닉슨 대통령 시절 미국 정부가 국가적 관심을 '법질서 확립'으로 돌리면서 수감자를 늘리고, 그 사이 빈곤 퇴치 프로그램과 일자리 계획을 중단시킨 사례도 나온다. 최근 한국에서 복지 예산이 대거 삭감되는 동안 '범죄와의 전쟁'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 법무부가 떠오르는 건 우연일까.
여러 국가가 특정 집단을 배제하던 논리를 보면, 이동권 보장을 외치는 장애인을 '민폐 집단'처럼 묘사한 보수언론과 정당, 안전할 권리를 요구하며 파업한 노조에 '불법'이라며 비난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도 겹쳐 보인다. 후보 시절 청년 남성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한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도 그러했듯이 말이다.
저자는 "'우리'와 '그들' 사이의 인종, 종교 또는 민족적 갈등에 기반한 국가는 오랫동안 안정을 유지할 수가 없다"라고 지적한다. 또한 "아이들이 혐오를 배울 수 있다"라며 파시즘에 기반한 사회가 "좋은 정치 공동체가 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우리와 그들의 정치 -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파시즘에 맞설 마법 같은 해결책은 소개되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겠지만, 저자에 따르면 결국 해법은 한 가지다. 인기를 얻기 위해 달콤한 말로 혐오를 선동하고, 공공의 이익을 훼손하며, 거짓 정보로 그 사실을 가리는 정치인을 경계하며 조심해야 한다.
그러자면 '나 또는 내 소속 집단을 정당화하는 말'이 거짓과 혐오가 섞인 정보인지 유권자들이 나서 의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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