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3기 연 브라질 룰라, 극한분열 속 과거영광 재현 가능할까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77·룰라)가 한국 시간 2일 오전 3시(현지시간 1일 오후 3시) 39대 브라질 대통령에 취임한다. 룰라는 2003~06년, 2007~10년 두 차례 재임한 데 이어 브라질 역사상 유례없는 집권 3기를 이끌게 됐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은 “브라질 전역에 축구 황제 펠레의 죽음으로 애도 기간이 선포됐지만, 룰라의 취임을 앞둔 수도 브라질리아는 거대한 축제의 열기로 차 있다”고 전했다. 취임식엔 약 30만 명의 시민이 모일 것으로 예상된다. 드래그퀸(여장 쇼)이자 인기 모델인 파블로 비탈, 삼비 스타(삼바 댄서) 마르티노 다 빌라 등 브라질 최고의 연예인들은 룰라 시대의 개막을 축하하기 위해 브라질리아로 모였다.
룰라 취임식에는 65명의 외국 대표단이 참석한다. 유럽에선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 독일·포르투갈 대통령 등이 참석한다. 아르헨티나·칠레·콜롬비아·베네수엘라 등 대다수 중남미 국가 대통령도 행사장을 찾는다.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도 축하사절을 급파했다. 한국도 경축 특사단을 파견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조만간 브라질에 국빈 방문할 예정이다. 가디언은 “전임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취임식에 해외 특사 18명이 참석했던 것과 대조된다”고 전했다.
외신은 룰라의 취임으로 전임 보우소나루 집권기 정책을 대대적으로 뒤집고 제2 ‘핑크 타이들’(좌파 물결)가 조성된 중남미 정치 지형의 좌향좌를 가속화하는 등 브라질 안팎으로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의 외교 싱크탱크 외교협회(CFR)는 “룰라가 축제 분위기 속에 취임하지만, 대통령 취임 후 해결할 난제가 산적해 가시밭길을 걸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두달간 이어지는 대선 불복 시위
대내적으로는 극도로 분열된 민심 수습이 과제다. 지난해 10월 대선 결선 투표에서 룰라는 보우소나루에 2%포인트(약 200만 표)도 안 되는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보우소나루는 권력 이양은 승인했지만 대선 패배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보우소나루의 지지자들은 두 달 넘게 대선 불복 시위를 지속하고 있다. 브라질리아에서 폭동을 일으켜 차량에 불을 지르고 경찰 본부 습격을 시도했다. 룰라가 묵은 호텔 근처에 폭발물 의심 신고가 접수되기도 했다. 현재 브라질 법원은 대통령 취임식 전후 유혈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수도 브라질리아에 총기 휴대 금지령을 내린 상태다.
보우소나루는 임기를 이틀 남긴 지난달 30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그는 출국 전 지지자들을 향해 “우리는 전투에선 졌지만 전쟁에선 승리했다”고 주장했다. 그가 브라질을 떠남에 따라 전임 대통령이 후임의 취임식에 참석해 대통령 띠를 넘겨주는 관례 역시 깨지게 됐다.
현금성 복지 정책…경기침체에 발목
룰라 지지자들은 룰라가 과거 집권기 때와 같은 복지 정책을 부활시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과거 룰라는 빈곤층 생계비 지원 프로그램 등 복지에 예산을 쏟아부으며 2900만 명 이상의 빈곤층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렸다.
지난해 대선 때 룰라는 복지정책 복원을 약속했다. 지난달 21일 브라질 의회는 정부 지출선 상한선을 1450억 헤알(약 35조 원)로 늘리는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과거 룰라 정부의 핵심 성과였던 복지정책 ‘보우사 파밀리아’를 복원·확대하기 위해서다.
전문가들은 경제 성장 둔화, 빈곤층 증가, 인플레이션 등 경제문제가 산적한 가운데 복지 예산을 확대하는 룰라의 정책이 공공 재정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아르미니오 프라가 전 브라질 중앙은행 총재는 블룸버그통신에 “높은 인플레이션과 노동시장 긴축 상황에서 대규모 재정 확대는 브라질에 대한 투자자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마존 삼림 벌채 제로 수준” 공약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룰라 정부 탄생을 ‘기후변화의 분수령’이라고 표현했다. 전임 보우소나루 재임 4년 동안 삼림 벌채율은 73% 증가했다. 보우소나루는 기후변화를 부인하며 아마존 지역에 방대한 규모의 토지개발 정책을 주도해 왔다.
룰라는 지난 집권기에 아마존 삼림 벌채를 이전 대비 약 70% 줄인 바 있다. 이번 대선 기간에도 아마존의 삼림벌채 수준을 제로(0)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지난달 29일 ‘아마존 수비수’로 불리는 환경운동가 마리나 시우바를 환경부 장관에 앉히며 ‘불법 벌채 단속’을 우선시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탐사 전문 저널리스트인 헤리베르토 아라우조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아마존을 구하려는 룰라의 노력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아라우조는 “국제사회와 협업을 통해 국제 범죄 조직이 아마존 삼림 지역을 파괴해 생산하는 콩과 가죽의 해외 수출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경제 발전을 위해 아마존을 파괴하는 게 정당하다는 공공연한 인식과도 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남미 역내 결속 강화 예상
사상 최대 핑크 타이드를 완성한 중남미 지역에 ‘좌파 대부’ 룰라가 등장함으로써 좌파 정권들 간 연대가 강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룰라는 2008년 자신과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이 주도해 창설했지만 지금은 유명무실화된 우나수르(UNASUR·남미 국가 연합) 재건에도 적극 나설 전망이다. 우나수르는 유럽연합(EU)을 모델로 만든 남미 지역 국가들의 연합 기구다.
셀소 아모림 전 브라질 외무장관은 “앞으로 룰라의 외교정책은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만든 우나수르 등 역내 통합 기구를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11월 칠레·우루과이 대통령 등 7명의 고위급 정·재계 인사들이 “우나수르 재건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공동 성명도 발표했다.
하지만 칠레 일간 라 테르세라는 “과거 우나수르는 막대한 비용만 들이고 지역 통합이라는 목표엔 실패했다”면서 “이념에서 자유롭지 못한 관료 기구를 부활시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비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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