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클라베 없는 초유의 ‘명예교황 장례’…프란치스코 교황이 5일 장례미사

이승호 2023. 1. 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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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지난 2005년 바티칸에서 교황으로 선출된 뒤 신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95세로 선종한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는 가톨릭 교회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사례를 여럿 만들게 됐다. 현직 교황의 장례 절차는 명문화돼 있지만, 전임 교황은 명확히 규정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현 교황이 전임 교황이자 ‘명예교황(Pope Emeritus)’의 장례 미사를 주례하기로 했는데, 이 역시 가톨릭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사상 초유의 명예교황 장례식


교황 그레고리오 12세의 초상화. 1415년 교황 자리에서 내려왔다. 2013년 베네딕토 16세가 자진해서 교황직에서 물러나기 전까지 가톨릭 교회 역사상 스스로 퇴임한 마지막 교황이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베네딕토 16세가 재임 중 퇴위한 첫 교황은 아니지만, 과거 사례를 참고하기는 어렵다. 전임 교황 신분으로 세상을 떠난 사례는 1415년 교황직에서 스스로 물러난 그레고리오 12세가 있다. BBC는 “그레고리오 12세의 퇴위는 이번 장례식에 참고할 대목이 없다”고 보도했다. 당시 그레고리오 12세의 사임은 아비뇽 유수를 계기로 두 명의 교황이 양립했던 ‘서방 교회의 대분열’을 종식하기 위한 결단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레고리오 12세는 교황 자리에서 내려온 이후 본명을 되찾고 바티칸을 떠났다. 반면 베네딕토 16세는 퇴임 후 명예교황 지위를 유지하며 바티칸 내 마터르 에클레시아에 수도원에서 연구 활동에 몰두해왔다. 장례의 격이 다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현직 교황 장례절차 준용할 듯


지난 2005년 4월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교황 요한바오로 2세에 대한 장례 미사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워싱턴포스트(WP)는 명예교황에 대한 장례식도 기본적으로는 현직 교황에 대한 통상적 절차를 따를 것으로 전망했다. 교황이 선종하면 장례 미사 전에 교황을 삼나무로 만든 관에 안치하고 성수로 축복한 후 얼굴 부분에 하얀 베일을 씌우고, 그 옆에는 교황 재임 당시 주조된 동전과 교황의 일생을 기록한 추도 연설문이 놓인다. 이런 절차를 베네딕토 16세도 따를 수 있다는 뜻이다.

교황청은 2일 오전부터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 베네딕토 16세의 시신을 안치하고 3일간 공개하기로 했다. 신자들이 명예 교황에게 작별 인사를 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현직 교황의 유례 없는 장례미사


지난 2017년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왼쪽)과 베네딕토 16세 명예교황이 만나 손을 맞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장례식은 5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장례 미사를 집전하면서 시작된다. 교황은 종신직이기 때문에 현직 교황이 전임 교황의 장례 미사를 주례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가톨릭 역사학자 존 맥그리비는 BBC에 “생존한 교황이 선종한 교황의 매장을 돕는 것은 여태 없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교황이 선종하고 나면 후임 교황을 뽑기 위해 추기경들이 모여 벌이는 비밀회의인 ‘콘클라베’도 이번에는 열리지 않는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교황청은 장례 미사를 베네딕토 16세의 생전 뜻에 따라 최대한 간소하게 진행한다고 밝혔다. 교황의 장례 미사에는 각국 정상들이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엔 이탈리아와 베네딕토 16세의 모국인 독일의 대표단만 참석할 예정이다.


매장지는 성 베드로 성당 지하묘지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전임 교황 대다수가 잠들어 있는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에 묻힐 전망이다. 교황은 사후 묻히고 싶은 곳을 직접 지정할 수 있는데, 전기 작가 피터 시왈드에 따르면 베네딕토 16세는 생전에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 묘지에 묻히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제외한 전임 교황 265명 중 148명이 이곳에 안치됐다. 나중에 다른 곳으로 옮겨진 교황을 제외하면 현재는 총 91명의 교황이 여기에 잠들어 있다.

“성인 추대 가능성에 장기기증 불허”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독일 레겐스부르크의 성 페터 대성당에서 한 가톨릭 신자가 이날 선종한 베네딕토 16세 명예 교황의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베네딕토 16세 교황에겐 장기 기증이 허용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2011년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비서가 쓴 편지에 따르면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은 장기 기증 카드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이는 무효가 됐다. WP는 “바티칸에서는 추후 교황이 성인으로 추대될 경우 교황이 기증한 장기가 다른 사람의 몸에 남아 ‘유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장기기증 불허 이유를 설명했다.

화장도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가톨릭에서는 교황의 시신을 화장하지 않아 왔다. 예수가 다시 돌아올 때 그를 믿었던 사람의 영혼은 육체와 재결합해 부활한다고 보기 때문에 시신을 화장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일반 가톨릭 신자의 화장도 1963년 이전까지는 공식적으로 금지됐다.

WP는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이 다른 교황과 마찬가지로 삼중으로 만든 관에 안치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삼중관의 가장 안쪽은 삼나무로 돼 있으며 가운데 납관에는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이름과 재위 기간, 개인 문장 등이 새겨진다. 가장 바깥쪽 관은 느릅나무나 호두나무로 만들어진다.


전 세계 지도자 애도 잇따라


베네딕토 16세 전 교황의 선종 소식이 알려지자 전 세계 정치 지도자들이 그를 추모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2011년 베네딕토 16세를 만났던 일화를 꺼내며 “그의 관대함과 환대, 의미 있는 대화를 항상 기억할 것이다. 자신의 원칙과 신앙심에 따라 평생 교회에 헌신한 훌륭한 신학자로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베네딕토 16세의 고국인 독일의 올라프 숄츠 총리는 트위터 글을 통해 “그는 독일뿐 아니라 세계 많은 사람에게 특별한 지도자였다”며 “세계는 가톨릭교회의 입지적 인물이자 영리한 신학자를 잃었다”고 추모했다.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도 추모 메시지가 전달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그는 탁월한 신학자이자 지식인, 보편적 가치 옹호자였다”고 추모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는 전통적 기독교 가치의 수호자였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더 형제애가 있는 세상을 위해 영혼과 지성을 다해 분투한 분”(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신앙과 이상의 거인”(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등 각국 지도자들의 애도 물결이 이어졌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커다란 슬픔 속에 선종 소식을 접했다. 그는 자신의 믿음에 원칙을 두고, 지칠 줄 모르고 평화를 추구했으며, 단호히 인권을 수호했다”고 추모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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