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전시]이크리스틴 '전진하는 원리'展·잉고 바움가르텐 개인전 '오후 4시' 外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잉고 바움가르텐 개인전 '오후 4시' = 프로젝트스페이스 미음은 잉고 바움가르텐의 개인전 '오후 4시'를 개최한다. 작가는 자신이 형상화하는 공간과 사물을 캔버스에 담는다. 그 사물 대부분은 건축물이다. 건물 전체가 나오는가 하면 건축 부분이 그림에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그림들에서 명암이나 선묘는 철저히 전통 회화 기법인 듯 하지만 도리어 어쩌면 거기서 멀어지고자 하는 효과로도 작동한다. 바움가르텐의 작품들은 익숙한 건축물들이 공연히 분리된 채 모종의 공간(도시)을 표류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문화주택에서 변천해 온 새마을주택 단독주택 건축 시기의 집과 고층건물의 부분, 또는 아파트들의 풍경은 무심히 고독하다.
작가는 독일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유학한 뒤 대만과 중국을 거쳐 한국에 정착했다. 그는 이런 이력만큼이나 다양한 형태로 쌓인 거주지에 대한 기억에 기반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작가가 내내 집요하게 천착하고 있는 것은 집의 사물성이다. 어디에도 삶이나 생활은 없다. 자연스러운 자연도 사실상 배격된다. 어떤 고발을 하고자 하는 의도 같은 것도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작가는 사물로서 집 자체를 기록한다. 이것이 궁극적인 그의 목적인 듯도 보인다.
산업사회 이후 인간 주거지의 사물성을 통찰하는 시각을 통해 작가는 자본사회에서 삶의 사물성을 그 동안 치열하게 기록해 왔다. 그의 작품들은 반듯하게 건조하고 정직하게 황량하다. 작가는 작품에서 좀처럼 감정을 노출하지 않는다. 풍요도 사치도 허영도 슬픔 같은 건 은닉되거나 작용하지 않는다. 이렇듯 바움가르텐의 작업은 빈틈없는 사물 회화를 통해 사물로 대상화하고 전락하고 만 인간 주거지에 대한 강렬한 보고서다. 전시는 2월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프로젝트스페이스 미음.
▲이크리스틴 '전진하는 원리'展 = 갤러리 도스는 조각가 이크리스틴의 기획전 '전진하는 원리'를 진행한다. 작가는 한국과 외국을 오가며 주류 문화와 소수 문화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정체성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삶의 경험은 예술작품 창작의 근원으로 수용되고, 일상적인 것들로 작품을 구현하고 이를 통해 서로 대립되는 관계와 불화 속 새롭게 생겨나는 조화로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기존 작업의 레몬, 소세지 등 동양에서 유래돼 서구에 자리 잡은 것들로 정체성의 변화와 혼란을 표현한다. 작업의 주된 재료는 점토이며 점토는 어떠한 형태로든 조형이 가능한 특성이 있기에 무한한 상상력을 가지고 몰입이 가능하다.
신작 ‘전진하는 원리’의 사물들은 기존 작업에서 나아가 오늘날의 정체성을 투영시킨 작품으로, 메인 작품인 거대한 시멘트 화분 속 빼곡히 꽂혀 회전하는 형태의 양귀비는 일상에서 반복되는 불화 속 조화를 상징한다. 각기 다른 색상의 양귀비를 하나씩 보면 서로 다른 종류 같지만 섞어놓고 보니 조화롭게 어우러져 보인다. 이는 작가 자신이 속한 세계가 수많은 다양한 것들과 섞여 만들어진 대립의 결과물임을 나타낸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다양한 이동의 경험을 작품에 투영하여 본질적인 것들에서 벗어나 여러 영역에 걸쳐 경계 흐리기를 시도한다. 이는 결국 성별, 국가, 문화 등을 구분 짓는 것에 의문을 갖고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작가는 예술이라는 형태를 빌어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위치를 확인하는 기회를 마련하여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자신을 개입시켜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한다. 이는 곧 작가의 유목적인 삶과 그에 따라 형성된 사상을 공유하며 다양성에 기반한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간을 선사한다. 작가는 "작품 속 사물들은 상반된 것들 간의 투쟁을 가장 일상적이지만 전부인 것으로 묘사하여 우리의 삶에 비유한다"며 "이는 이러한 투쟁이 언제나 세상에 존재하며 서로 대립하는 무엇인가가 존재할 때 만들어지는 새롭고 발전된 세계를 제시한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작가는 대립에서 오는 새로운 탄생을 상징하며 나아가는 세상 속 반복되는 이러한 과정의 역할에 주목한다. 전시는 4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 갤러리도스.
▲단체전 'Rhythm in Color' = 헬렌앤제이 갤러리 서울은 단체전 'Rhythm in Color'을 통해 회화 작품이 가지는 시각적 경쾌함과 즐거움을 보여준다. 캔버스에 담고 있는 저마다의 감각은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감수성을 이끌어낸다. 전시에 참여하는 네 명의 작가 대니얼 밀리토니언(Daniel Militonian), 디에고 티리갈(Diego Tirigall), 추친 구티에레즈(Chuchin Gutierrez), 최형섭(Hyungsub CHOI)은 각각 태어난 나라에서 떠나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그들의 작품에는 본래 가지고 있던 문화적 배경에 더해 이주한 지역에서 마주한 감각과 동시대를 살아가며 느낀 감성이 더해져 더욱 풍부하고 재미있는 화면을 구성한다.
대니얼 밀리토니언은 Dunkees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러시아 출신의 예술가로 현재는 미국 LA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넓은 해변을 중심으로 생성된 베니스 비치(Venice Beach) 특유의 자유로운 분위기가 그의 작업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작업의 소재는 그가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즐거운 것들이다. 베니스 비치의 그라피티 아트나 히피문화, 티브이 애니메이션 등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모든 시각적 소재들을 변주해 본인만의 드로잉으로 풀어낸다.
디에고 티리갈은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스페인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의 화면은 소비사회에 대한 직관적 표현으로 가득 차있다. 인스턴트를 상징하는 통조림 캔은 정성이나 영양보다는 편의성만을 추구하는 현대사회를 상징한다. 작가는 소비주의의 편의성은 악마와의 계약처럼 달콤하지만 빈 깡통과 같다고 보았다. 머릿속에서 꼬리를 물고 연상되는 이미지와 단어들을 휘갈기는 과정 속에서 거침없는 붓질은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오간다.
추친 구티에레즈는 콜롬비아 출신으로 현재 칠레에서 활동하고 있다. 과감한 터치로 인물을 그리는데, 그의 그림은 그래픽적이면서도 자유롭고 과감한 터치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다시점(多視點)에 근간을 둔 얼굴의 형태는 입체주의를 연상시키면서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인디헤니즘(indigenism, 토착주의)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그의 인물은 이러한 복잡한 사회 현상과 문화적 구조를 담고 있으며, 그 속에서 주체로 자리 잡고 있는 인간을 역동적으로, 때로는 괴기스럽게 그려낸다.
최형섭은 대한민국 출신으로 현재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다. 선을 모티프로 작업을 하는데, 외국 생활에서 비롯된 기록하는 버릇이 곡선으로 함축되었다. 그는 감정(Sentiment), 단어(mot), 기록(Graphie)의 합성어인 ‘Sentimographie’라는 제목을 작품에 붙였다. 기록의 내용을 삭제함으로써 잠재성과 감성이 자리할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두었다. 작가는 선의 변주를 통해 내면의 다양한 감정과 파장을 담는다. 자칫 수행으로 연결될 수 있는 반복적 행위는 재료의 변화와 다채로운 색의 조화 속에서 즐거운 놀이로 표현한다. 전시는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팔판동 헬렌앤제이 갤러리.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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