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인태 전략, 윤 정부의 중국견제 우회 '선언'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김종성 기자]
이제까지의 한국 안보는 사실상 대북 안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과도 정면으로 대립하는 동시에 일본의 움직임까지 염려해야 할 상황으로 나아가고 있다. 대통령실이 12월 27일 공개한 한국판 인도태평양전략은 그런 정세 변화를 반영한다.
한국은 1950년부터 3년간 중국과 전쟁을 했다. 하지만 그 뒤에는 관계가 소원했다. 미·일과 달리 한국은 대(對)중국 관계에서 한걸음 물러서 있었다. 데탕트라는 화해 기운이 일었을 때도 핑퐁외교(1971.4.10) 및 상하이공동성명(1972.2.28)으로 중국에 접근한 것은 미국이고, 이에 편승해 미국보다 먼저 중국과 수교(1972.9.29)한 쪽은 일본이다. 이 시기에 한국은 유신체제 선포(1972.10.17) 등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1992년 8월 24일 한중수교 이후의 한국은 중국과의 경제적 유대를 구축하는 한편, 군사·정치적으로는 거리두기를 지향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전쟁 3년을 제외하면 한국은 중국과 충돌할 일이 거의 없었다. 이것을 변화시키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정책이고, 이를 문서화한 것이 한국판 인도태평양전략 보고서다.
▲ 과기정통-개인정보위-원안위 업무보고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ㆍ개인정보보호위원회ㆍ원자력안전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2.12.28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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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보고서는 한국판 인태전략이 추구하는 3대 비전이 '자유·평화·번영'이라고 정리한다. 인도양에서 태평양까지를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번영된 지역으로 만든다는 목표로 "인태 지역에 대한 관여와 협력을 증대해 나갈 것"이라고 선언한다.
보고서는 그런 3대 비전을 성취할 3대 협력 원칙으로 '포용·신뢰·호혜'를 제시한다. 그런 원칙으로 지역 국가들을 대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뒤, '9대 중점 추진 과제'를 제시한다.
(1) 규범과 규칙에 기반한 질서 구축, (2) 법치주의 및 인권 증진, (3) 핵 확산 및 테러 억제, (4)전통적 분야와 비전통적 분야(사이버·보건 등)를 아우르는 포괄적 안보협력 확대, (5) 경제안보 네트워크 확충, (6) 첨단과학기술 협력 및 디지털 격차 해소, (7) 기후변화 및 에너지 안보 협력, (8) 개발 협력을 통한 적극적 기여 외교, (9)상호 이해와 교류 증진이 그것이다.
3대 비전, 3대 협력 원칙, 9대 중점 추진 과제의 저변을 흐르는 것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당연히' 대중국 견제다. 고 아베 신조 총리의 제안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호응으로 태생된 이 전략의 한국 버전이 그것을 담지 않을 수는 없다.
보고서는 3대 협력 원칙을 설명하는 제2장에서 중국과 관련된 문구를 제시한다. 중국과 대결할 뜻이 없음을 선언한다. "우리의 인태 비전은 특정 국가를 겨냥하거나 배제하지 않는 포용적인 구상이다"라며 "대한민국은 이러한 비전과 협력 원칙에 부합하는 모든 파트너 국가들과 협력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그런 뒤 "인태 지역의 번영과 평화를 달성하는 데 있어 주요 협력 국가인 중국과는 국제규범과 규칙에 입각하여 상호 존중과 호혜를 기반으로 공동 이익을 추구하면서 보다 건강하고 성숙한 한중관계를 구현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중국을 겨냥하거나 배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뼈'가 담겨 있다는 점에 유의하게 된다. 중국과의 관계를 '국제규범'뿐 아니라 '규칙'에 의해서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동어반복으로도 보일 수 있지만, 인태전략에서 말하는 규칙은 국제규범과 거리가 있다.
보고서 제2장은 "자유, 민주주의, 법치주의, 인권 등 보편적 가치에 기초한 규칙 기반 질서"라는 말로 규칙의 의미를 설명한다. 자유시장경제가 아니고 서구식 민주주의가 아니며 신장·위구르 인권 문제를 갖고 있는 중국을 배제하는 논리가 바로 이 '규칙 기반 질서'다. 이에 입각해 중국과 관계하겠다는 것은 미·일 편에 서서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우회적 선언이 된다.
▲ 인태전략 설명하는 박진 장관 박진 외교장관이 28일 외교부에서 열린 인도-태평양 전략 설명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인태전략 최종보고서를 발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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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경제 방면에서도 중국을 압박할 뜻을 천명했다. 제3장 '5. 경제안보 네트워크 확충'은 "개방적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대한민국은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출범에 참여하였으며 IPEF가 인태 지역의 실질적인 경제 협력체로 발전해 나가도록 주요국들과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윤석열 정부가 가입한 IPEF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21년 10월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 '중국은 무역관행이 불공정하며 인권과 민주주의 및 시장질서를 존중하지 않는다'며 창설을 제안한 '안보+경제' 동맹이다. 무역, 공급망 구축, 탈탄소 및 인프라, 탈세 및 부패 방지에서 중국을 고립시키는 새로운 무역질서 창출을 지향하는 기구다.
이런 IPEF를 인태 지역의 실질적 경제협력체로 발전시키겠다는 윤 정부의 구상은 중국 기업들이 인도양과 태평양을 무대로 활동하기 힘들도록 만들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이를 위해 주요국들과 긴밀히 협력하겠다는 것은 중국을 고립시키는 외교활동의 비중을 높이겠다는 천명이나 다름없다.
나토와 쿼드에 더해 IPEF로도 중국을 압박하면, 중국의 대응은 사드 보복조치 이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한 한·중 대결 양상이 종전의 남북대결보다 약하리라고 낙관하기는 힘들다. 북한에 더해 중국까지 한국 안보의 '고정 상수'가 되는 것이다.
보고서의 이상한 논리
한국판 인태전략 보고서는 중국에 대한 압박 강화와 동시에 일본과의 협력 심화를 천명한다. 이것이 3대 비전, 3대 협력 원칙, 9대 중점 추진 과제의 저변을 흐르는 또 하나의 내용이다.
이 전략의 핵심 요소인 한일협력 강화는 보고서 11쪽에 설명돼 있다. "가장 가까운 이웃 국가인 일본과는 공동의 이익과 가치에 부합하는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를 추구할 것이다"라고 선언한다.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는 수식어까지 붙이면서 일본과의 관계를 강조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보고서는 이상한 논리를 선보인다. 일본과의 관계가 여타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필수 기능을 한다는 논리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한는 역내 국가 간 협력과 연대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라고 말한다. 한국의 대외관계가 한일관계에 의해 좌우될 여지를 남기는 문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뒤 보고서는 곳곳에서 한·일 협력을 포함하는 한·미·일 협력을 강조한다. 보고서 19쪽은 이를 토대로 중대 현안들에 대처하겠다고 선언한다. "자유민주주의의와 인권을 공유하는 한·미·일 3자 협력"으로 북핵과 미사일, 공급망, 사이버 안보, 기후 변화, 보건위기 등을 해결하겠다고 말한다. 21쪽은 대북 견제를 명분으로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도 천명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굳건한 연합방위태세를 유지·강화하는 가운데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을 확대해 평화 수호 역량을 배가해 나갈 것이다."
한국판 인태전략 보고서는 자유·평화·번영을 위해 포용·신뢰·호혜 원칙으로 접근하겠다고 표방하지만, 내용을 읽어보면 포용·신뢰·호혜의 자리에 실상은 한·미·일 협력 혹은 한·일 협력이 들어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런 협력 구도가 한국판 인태전략의 핵심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이 인태전략하의 한·미·일 협력을 매개로 한국의 운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는 것이다.
1882년 임오군란 진압을 명분으로, 1894년 동학혁명 진압을 명분으로 군대를 파견하고, 1905년에 외교권을 빼앗고 1910년에 한국 전체를 강점해 1945년까지 착취했던 나라가 일본이다. 이런 나라가 불과 80년도 안 돼 한·일 혹은 한·미·일 협력 명분으로 한국의 운명에 깊숙이 들어오도록 만드는 것이 윤석열판 인태전략이다.
1953년 이래로 안보상 충돌할 일이 거의 없었던 중국을 대결의 상대방으로 만드는 동시에 일본을 한국의 운명 깊숙이 끌어들이는 한국판 인태전략이 채택됐다. 사실상 북한만 상대했던 한국의 안보환경이 전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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