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무’ 전수진 “더 많은 여성 프로게이머 나올 수 있게, 제가 잘해야죠” [나는 게이머입니다②]

문대찬 2023. 1. 1.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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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LoL e스포츠 최초의 여성 프로게이머 전수진 인터뷰
"최초라는 타이틀 부담..더 잘해야겠다는 욕심도"
지난 해 12월 30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리브 샌드박스 사옥에서 만난 전수진

지난해 12월 29일 e스포츠 업계가 술렁였다. 게임 ‘LoL’ 콘텐츠 크리에이터인 ‘순당무’ 전수진(21‧여)이 프로게이머로 데뷔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리브 샌드박스는 공식 SNS를 통해 전수진의 입단을 알리면서 “오랫동안 꿈꿔왔던 꿈에 도전하는 ‘당무’ 선수에게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전수진은 내년부터 리브 샌드박스 소속으로 뛰며 ‘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의 2군 격인 ‘챌린저스 리그’와 ‘아카데미 리그(3군)’를 오갈 예정이다.

이로써 전수진은 국내 LoL e스포츠 최초의 여성 프로게이머로 이름을 남기게 됐다. 앞서 김가을, 서지수(이상 스타크래프트), ‘게구리’ 김세연(오버워치) 등 여성 게이머가 다른 종목에서 활약했던 적은 있지만, 최고의 인기 e스포츠 종목인 LoL에선 좀처럼 여성 프로게이머가 배출되지 않았다.

전수진은 LoL에서 가장 높은 티어(Tier‧단계)인 ‘챌린저’를 달성한 실력자다. 챌린저는 게임 내 300여 명에 불과하다. LoL은 남성 게이머 비율이 월등히 많아, 여성 챌린저는 특히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전수진은 최근 진행한 프로 입단 테스트에서도 인상적인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리브 샌박 관계자는 “테스트 과정에서 선수의 좋은 모습이 보여 코치진도 높은 평가를 내렸다”고 귀띔했다.

30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리브 샌박 사옥에서 만난 전수진은 “사실 아직도 꿈같다. 현실감이 없다.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내가 프로구나’ 생각한다”며 웃었다. 그는 “원래 목표는 챌린저 달성하기였다. 챌린저를 찍고 나선 욕심을 더 내보고 싶었다. 프로라는 벽에 도전 해보고 싶었다”고 데뷔 계기를 밝혔다.

전수진은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게임을 시작했다. 현재까지도 LCK 등 e스포츠를 즐겨보는 어머니는 전수진의 든든한 조력자다. 입단이 결정됐을 때 “하고 싶은 것 다 해봐라”며 가장 먼저 신뢰를 보내준 사람도 어머니였다. 그는 “엄마의 응원 덕에 더 열심히 잘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고마워 했다.

LoL에 재능이 있다고 느낀 건 초등학생 때였다. 

전수진은 “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 내가 ‘골드’ 티어였을 때 큰오빠와의 내전에서 만난 맞상대가 ‘다이아 5’ 티어였다. 시즌 3 당시 ‘다이아 5’면 무척 잘하는 거다. 그런데 내가 솔로킬을 냈다.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물론 이건 장난이다”라며 웃었다. 

그는 “지금은 서포터 포지션이지만 미드라이너로 게임을 하기도 했다. 그 땐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높은 곳에서 프로게이머를 만나니까 꺾이더라.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면서도 “서포터로 챌린저를 찍으면서 어쩌면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전수진에겐 ‘LoL 최초의 여성 프로게이머’라는 관심이 아직은 조금 두렵고 낯설다. 

“인터넷을 안 봤다. 반응이 무서웠다. 그런데 엄마가 반응이 엄청 좋다고 하더라. 그래서 봤더니 응원 댓글들이 많더라. 이 분들에게 실망감 드리지 않게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다. 나를 시작으로 다른 여자 게이머들도 많이 나올 수 있도록 내가 잘하고, 또 노력해야 한다.”

“(대중들의 관심이) 걱정은 많이 된다. 그런데 한편으론 욕심이 생기더라.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이왕 데뷔하게 됐으니 좋은 기억으로 남기고 싶다. 나를 응원해주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응원해주는 가족을 위해서라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소수의 여성 게이머이지만, 전수진은 자신을 향한 큰 차별이나 편견 등은 없었다고 했다. 그는 “가끔 ‘혜지(여성 게이머를 비하하는 멸칭)’니 뭐니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타격은 전혀 없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말하면 모를까, 아무리 봐도 나보다 못하는 사람이 그러면 신경도 쓰이지 않는다. 그런 애들은 무시하는 편이다”라며 유쾌하게 답했다.

전수진은 자신 외에도 뛰어난 기량을 갖춘 아마추어 여성 게이머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올해 여성 게이머 대회인 ‘걸 게이머 아시아’에서 우승을 차지한 그는 소속팀 선수들인 ‘헤징(김혜진)’, ‘2수연’, ‘막내현진(심현진)’, ‘지수소녀(박지수)’의 이름을 거론하며 엄지를 추켜세웠다. 

전수진은 피지컬(손 빠르기나 순발력 등 컨트롤 실력)에 자신이 있다. 주 포지션은 서포터이지만, 정글이나 미드라이너도 소화할 수 있다. 그는 챔피언 ‘아리’를 이용해 미드라이너 포지션에서 ‘그랜드마스터(차상위 티어)’를 달성한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수진은 “피지컬은 조금 괜찮다고 생각한다. 미드라이너 말고도 원거리 딜러로도 ‘마스터’ 티어를 찍은 경험도 있다”고 덧붙였다. 

물론 전수진을 향한 우려의 시선도 있다. 그는 대개 ‘룰루’ 등 유틸형 서포터를 플레이 한다. 그러나 프로 단계에선 그랩류나 탱커 등 다룰 수 있는 챔피언 폭을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수진은 “내가 룰루만 했던 건 맞다. 재미없는 것들은 안 하려고 했다. 당시엔 프로게이머 생각도 없어서 챔피언 연습에도 관심이 없었다”면서도 “이제 프로가 됐으니까 달라져야 한다. 지금은 이것저것 다 보고 연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단 정말 기초로 돌아가서 라인전 상성과 구도부터 정립해야 될 것 같다. 완벽하게 잘 해내고 싶다. 기초 단계인 라인전부터 잘 해야 팀에서 활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처음부터 돌아가서 해보려고 한다”며 “솔로 랭크와 대회는 다르다. 이제는 정석대로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팀 게임에 대한 이해도 하나하나 넓혀가야 한다. 전수진은 스트리머로 활약할 당시에도 아마추어 팀을 꾸려 대회에 나가봤지만 프로 씬에서의 팀 게임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프로 대회가 조금 더 전문적이다. 스트리머들은 스킬 쿨 타임을 하나하나 체크하지 않는다. 대략 감으로 경기를 풀어나간다. 반면 프로팀은 확실한 근거를 갖고 움직인다. 상대가 궁극기가 빠졌으니 전령을 먹자던가, 하체가 약하니까 상체에서 싸우자 등의 콜이 많아서 정말 좋은 것 같다.”

전수진은 팀 동료들과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엔 긴장해서 말을 못 붙였다. 어린 동생들이다. 괜히 적극적으로 얘기했다가 나를 불편해하면 어떡하나 걱정도 했다. 지금은 친해져서 말을 편하게 하고 있다”며 “동생들이 먼저 다가왔다. 특히 나랑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원거리 딜러 포지션의 친구가 말을 정말 잘 걸어줬다. 덕분에 팀원들과 말도 많이 해봤다. 어떻게 하면 친해질 수 있을까도 그 친구에게 물어봤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전수진의 올해 목표는 두 가지다. 아카데미 리그를 벗어나 CL에 출전하는 것. 그리고 우승이다. 이밖에 스스로 설정한 개인 과제도 있다. 

“내 실력 증명하기다.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질 것 같다. ‘이 사람 잘할 수 있을까?’ 등등… 나를 안 좋게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질 수 있도록 증명해내고 싶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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