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날두의 유럽 20년, 역사는 어떻게 기억할까
[이준목 기자]
▲ 호날두 |
ⓒ AFP / 연합뉴스 |
알 나스르 구단은 지난달 31일(한국시간) 공식 SNS을 통해 호날두와 계약 소식을 전하며 등번호 7번이 적힌 유니폼을 들어보이고 있는 호날두의 사진을 공개했다. 호날두 역시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알 나스르 구단 SNS에 실린 사진을 공개하며 이적 사실을 확인시켰다.
영국 가디언, 미국 CBS 스포츠 등 주요 외신들은 일제히 호날두의 이적을 비중있게 보도하며 계약기간은 2025년 여름까지이고 연봉은 7500만 달러(943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호날두가 '세계축구의 심장부' 유럽을 떠나 다른 무대에서 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호날두의 나이와 몸값을 감안할 때 사우디행은 사실상 호날두의 최전성기를 상징하는 유럽 무대의 커리어가 종막을 고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포르투갈 출신의 호날두는 자국리그의 스포르팅 리스본(2002~2003년)에서 데뷔하여 맨유1기(2003~2009년) 레알 마드리드(2009~2018년) 유벤투스(2018~2021년) 맨유 2기(2021~2022년) 등 커리어 내내 20년간 줄곧 유럽에서 활약해왔다.
호날두가 유럽에서 남긴 족적은 찬란하다.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에게 주어지는 발롱도르 5회 수상을 비롯하여 유럽 챔피언스리그 5회 우승, 유럽 3대 빅리그(잉글랜드, 이탈리아, 스페인) 제패,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에서 유로 2016 우승 등 빛나는 업적을 쌓았다. 프로통산 819골, A매치 통산 118골은 메시(프로 791골, A매치 98골)조차도 도달하지 못한 역대 최고 기록이다. 남다른 스타성을 바탕으로 한국축구의 간판 손흥민을 비롯한 많은 축구스타들이 호날두를 우상으로 거론할 만큼 '슈퍼스타들의 슈퍼스타'로 꼽히기도 했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이미 조국 포르투갈에서는 에우제비오, 루이스 피구등의 전설을 넘어 이미 자국 역사상 최고의 레전드로 자리매김했고, 더 나아가 시대를 지배한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 동시대에 활약하며 같은 리그에서도 오랫동안 경쟁했던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와는 2010년대 각종 대회 우승과 발롱도르를 양분하다시피하며 그야말로 '세기의 라이벌리'를 형성할 만큼 주목받았다.
심지어 최전성기의 호날두는 시대를 뛰어넘어 역대 최고의 선수(GOAT·The Greatest Of All Time)를 거론할 때 이름을 올릴수 있을 만한 위상을 구축했다. 마라도나(아르헨티나) 펠레-호나우두(브라질), 프란츠 베켄바우어(독일), 요한 크루이프(네덜란드) 지네딘 지단(프랑스) 등이 GOAT를 거론할 때 항상 우선순위로 거론되는 레전드들이다.
클럽무대에서는 이미 선배 레전드들에 전혀 뒤지지 않는 업적을 수립한 호날두와 메시가 그동안 딱 하나 부족했던 부분이 있다면, 바로 월드컵 타이틀이었다. 호날두는 월드컵 본선에 5번이나 출전했지만 끝내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고 결승무대조차 한 번도 밟지 못했다. 반면 메시는 두 번 결승에 올라 우승과 준우승을 각각 한 번 차지했고 골든볼(최우수선수)도 두 번이나 수상했다.
2022 카타르월드컵은 메시 vs. 호날두의 경쟁구도는 물론이고, GOAT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역사적 전환점이 됐다. 메시는 4전 5기 도전 끝에 조국 아르헨티나를 정상으로 이끌며 마침내 마라도나의 위업을 계승한 후계자로 등극했다. 지난 2021년에 코파아메리카(남미대륙선수권)을 거머쥐었던 메시는 이로서 클럽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아쉬웠던 국가대표팀에서도 이제 들 수 있는 모든 메이저대회 우승트로피를 쓸어담았다. 전세계 축구계는 월드컵 우승을 통하여 마지막 2%를 완성한 메시가 이견이 없는 역대 GOAT 1위로 등극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반면 똑같이 월드컵 '라스트 댄스'에 도전했던 호날두는 팀이 8강에서 모로코 돌풍에 밀려 탈락하면서 초라하게 퇴장해야했다. 개인 활약면에서도 골든볼을 수상하며 우승까지 팀을 하드캐리한 메시와 달리, 호날두는 기량이 급격히 하락한 모습만 드러내며 주전경쟁에서도 밀렸고 출전한 경기마다 부진한 활약으로 오히려 팀에 민폐만 끼쳤다. 호날두는 영국 매체들이 선정한 카타르월드컵 워스트11에 이름을 올리는 굴욕을 당했다. 모코로전 패배 이후 눈물까지 보였던 호날두는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하며 월드컵 퇴장을 공식화했다.
또한 호날두에게 이번 월드컵은 유럽에서 선수경력을 이어갈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 호날두는 지난 2021-22시즌 앞두고 친정팀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복귀했으나 팀이 부진한 성적으로 무관에 그치며 챔피언스리그 진출에도 실패하자 팀에 불만을 품고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호날두는 자신을 신임하던 솔샤르 감독이 경질된 이후 랄프 랑닉 임시 감독대행에 이어, 올시즌 새롭게 부임한 시작했지만 에릭 텐하흐 감독과 연이어 불화설에 휩싸였다. 거듭된 돌출행동과 이적 요청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호날두는 결국 한 인터뷰에서 맨유와 텐하흐 감독을 노골적으로 저격하는 발언이 알려지며 맨유 구단의 분노를 샀고 결국 계약을 해지하고 방출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호날두에게 자충수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자기애가 남달랐던 호날두는 여전히 자신이 최고의 선수라고 생각했고, 유럽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는 강팀으로 이적하고 싶다는 욕심에 무리수를 저질렀다. 그러나 정작 현실의 호날두는 맨유와 대표팀에서 모두 기량이 급격히 하락한 모습만 확인하며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다급해진 호날두는 친정팀 레알 마드리드를 비롯하여 유럽의 여러 빅클럽에 러브콜을 보냈지만, 노쇠한 데다 팀 케미스트리에 문제를 일으키는 호날두를 환영하는 구단은 없었다. 유럽에 남고 싶었던 호날두는 유일하게 러브콜을 보낸 알 나스르행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무적 선수가 되어 은퇴밖에 다른 선택지가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차라리 올해 챔피언스리그에는 출전하지 못했더라도 맨유에서 묵묵히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몸상태를 끌어올리는 데만 집중했다면, 호날두는 아마 최소한 지금도 유럽무대에서 뛰고 있었을 것이다. 라이벌 메시가 여전히 유럽 정상권 클럽인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에서 활약하며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발롱도르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호날두는 지난 1년간 부쩍 떨어진 기량도 기량이지만, 그 이상으로 너무 많은 '존중'을 상실했다는 평가다. 팬 무시와 폭행 사태, 노쇼 논란, 감독 및 구단과 연이은 갈등 등은 최전성기에 화려한 성과로 가려져왔던 호날두의 '인성 논란'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재평가를 받는 상황을 초래했다. 역대 레전드들도 사생활 문제 등으로 비판받은 사례는 이전에도 종종 있었지만, 호날두처럼 말년에 이미지가 이 정도로 최악까지 급격하게 추락한 경우도 보기 드물다.
한때 그를 '우리형'이라 부르며 열렬한 팬덤이 많았던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의 팬들과 축구계 동료들조차 호날두에게 실망하여 등을 돌렸다. 진정으로 위대한 축구선수라면 전성기의 실력과 업적만이 아니라, 프로다운 멘탈 관리와 아름다운 마무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반면교사라고도 할 수 있다.
호날두의 나이와 기량을 감안할 때 유럽에서의 커리어는 사실상 마감했다고 보는 분석이 유력하다. 알 나스르에서 부활한다고해도 축구변방으로 꼽히는 사우디 리그에서의 성과는 크게 주목을 받기 어렵다.
20년간 유럽에서 남긴 커리어를 바탕으로 호날두는 역사에 어느 정도의 선수로 기억될까. 말년이 좋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남긴 업적만으로도 호날두의 위상은 역대 최고선수를 논할 때 최소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는 충분하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평가다. 하지만 월드컵을 차지한 메시와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고, 그 아래로는 펠레-마라도나-베켄바워-크루이프-지단보다도 처지는 역대 6-7위 정도의 반열에 위치할 것이 유력하며 말년과 은퇴 이후로는 더 내려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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