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 배우'와 함께 한 '특급 유망주'의 첫 주연작
[양형석 기자]
대한민국에는 훌륭한 배우들이 많이 있지만 21세기 최고의 배우를 꼽으라면 많은 관객들이 송강호의 이름을 1순위로 떠올릴 것이다.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반칙왕>과 <공동경비구역JSA>에 출연하며 확실한 주연배우로 자리매김한 송강호는 올해 <브로커>를 통해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인생에 정점을 찍었다. 특히 송강호는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 같은 세계적인 감독들이 믿고 캐스팅하는 배우로도 유명하다.
'흥행'이라는 측면에서 봐도 송강호는 여러 배우들 사이에서도 돋보이는 성과를 올렸다. 대한민국 배우들 중 최초로 주연작으로만 누적관객 1억 명을 돌파했고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도 네 편(<괴물> <변호인> <택시운전사> <기생충>)이나 된다. 실제로 송강호는 데뷔 후 지금까지 출연한 영화들의 평균 관객이 400만을 훌쩍 넘는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송강호만큼 연기력과 티켓파워를 겸비한 배우를 찾기는 쉽지 않다.
▲ 이현승 감독이 <시월애> 이후 11년 만에 선보였던 <푸른 소금>은 흥행에서는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
ⓒ CJ ENM |
좋은 배우로 성장한 '서태지 소녀'
1990년 서울에서 태어난 신세경은 초등학교 2학년 시절이던 1998년 영화도, 드라마도, CF도 아닌 서태지의 첫 솔로앨범 < Take Five >의 포스터 모델로 데뷔했다. 당시 워낙 극비리에 진행된 프로젝트라 신세경 본인도 촬영하는 내내 감기약 광고인줄 알았다고 한다. 신세경은 이를 계기로 <딩동댕 유치원> 등 여러 어린이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그 중에는 '종이접기 아저씨'로 유명한 김영만과 함께 한 <김영만의 미술나라>도 있었다.
짧았던 방송활동 이후 한 동안 매체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신세경은 2004년 영화 <어린 신부>에서 문근영의 절친, 드라마 <토지>에서 김현주의 아역을 맡으며 연기활동을 시작하는 듯 했다. 하지만 신세경은 <토지> 이후 2006년 영화 <신데렐라>를 제외하면 다시 활동이 뜸해졌다. 따라서 신세경의 커리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드라마 <선덕여왕>과 영화 <오감도>,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킥>에 출연했던 2009년으로 보는 편이 적절하다.
<지붕킥>을 통해 최고의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신세경은 차기작으로 최고의 배우 송강호와 연기호흡을 맞춘 영화 <푸른 소금>을 선택했다. 신세경은 <푸른 소금>에서 사격 유망주 출신의 킬러 조세빈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지만 <푸른 소금>은 전국 77만 관객에 그치며 관객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신세경은 영화 < R2B: 리턴 투 베이스 >와 드라마 <패션왕> 등에서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를 올리며 성장통을 겪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던 신세경은 2014년 400만 관객을 동원한 <타짜: 신의 손>에서 여주인공 허미나 역을 맡아 재기에 성공했고 2015년에는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를 통해 밝고 사랑스런 캐릭터를 연기했다. 그리고 같은 해 자신이 출연했던 <뿌리깊은 나무>의 프리퀄 드라마인 <육룡이 나르샤>에서 분이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2017년에는 <하백의 신부 2017>을 통해 케이블 드라마에 진출했다.
2017년 연말 김래원과 함께 드라마 <흑기사>에 출연한 신세경은 2019년 드라마 <신입사관 구해령>에서 처음으로 단독주인공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영화 통번역가 오미주를 연기하며 임시완과 멜로연기를 선보였던 <런온>도 시청률과 별개로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조금 느리지만 단단한 연기자로 자리 잡고 있는 신세경은 2023년 방송 예정인 <아스달 연대기2>에 출연할 예정이다.
▲ <푸른 소금>은 신세경의 다양한 매력을 볼 수 있다는 확실한 장점 하나는 분명한 작품이었다. |
ⓒ CJ ENM |
<푸른 소금>은 2000년 이정재,전지현 주연의 <시월애> 이후 단편영화와 옴니버스 영화를 주로 만들었던 이현승 감독이 11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었다. <푸른 소금>은 이현승 감독이 연출은 물론 각본과 제작에도 참여했고 최고의 흥행배우 송강호와 떠오르는 기대주 신세경을 캐스팅하며 많은 공을 들인 작품이다. 하지만 8월말에 개봉한 <푸른 소금>은 <최종병기 활>과 <가문의 영광4-가문의 수난> 등에 밀려 흥행에서는 재미를 보지 못했다.
<푸른 소금>은 전작에서 뛰어난 영상미를 선보였던 이현승 감독의 작품답게 런닝 타임 내내 멋지고 예쁜 화면들을 선보였다. 하지만 정작 영화는 멜로와 액션, 그리고 스릴러의 경계에서 길을 잃었고 관객들은 송강호와 신세경의 나이 차이(23살)에서 느껴지는 어색함에 적응할 새도 없이 런닝타임을 흘려 보냈다. 그렇게 은퇴한 조폭 두목과 그를 죽여야 하는 어린 여성 킬러의 사랑이야기는 관객들의 공감을 얻는데 실패했다.
송강호는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 청룡영화상,대종상 남우주연상 3회, 백상예술대상,대한민국 영화대상 남우주연상 2회 수상에 빛나는 최고의 배우답게 <푸른 소금>에서도 명불허전의 연기를 선보였다. 하지만 일반관객들에게 낯선 직업인 엘리트 조폭 두목 윤두헌은 '생활연기의 달인' 송강호에게 썩 어울리는 옷이 아니었다. 차라리 차승원 같은 훤칠한 배우가 연기했다면 윤두헌의 캐릭터가 더욱 돋보였을 것이다.
<푸른 소금>은 이처럼 여러 아쉬움이 남는 영화가 됐지만 신세경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선물 같은 작품이기도 하다. <지붕킥>에서 가난한 식모 역할을 맡으며 언제나 같은 의상을 입고 나오던 신세경이 <푸른 소금>에서는 멋지게 바이크를 타고 액션연기까지 선보이며 '멋쁨'을 마음껏 뽐냈기 때문이다. 일반 관객들 사이에서는 '송강호의 흑역사'로 기억되는 <푸른 소금>이 신세경의 팬들에게는 뜻밖의 '숨은 명작'으로 대접(?) 받는 이유다.
<푸른 소금>을 연출한 이현승 감독은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해 <그대 안의 블루>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시월애> 등을 연출하며 뛰어난 색감과 영상미로 이명세 감독과 함께 '충무로의 비주얼리스트'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제작에 뛰어들며 신작소식이 뜸해진 이현승 감독은 <푸른 소금> 이후 다시 9년 만에 2020년 <죽도 서핑 다이어리>를 선보였지만 전국관객 125명에 그치고 말았다.
▲ 여러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았던 천정명은 <푸른 소금>에서 송강호의 충직한 오른팔로 출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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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소금>은 내용으로 보나 정서로 보나 2010년대에 나온 영화라고 하기엔 좋게 말하면 고전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다소 촌스럽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아쉬움에도 <푸른 소금>이 자신 있게 강조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화려한 배우진이다. <푸른 소금>에는 주인공 송강호와 신세경 외에도 반가운 얼굴의 조연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해 좋은 연기를 통해 관객들의 아쉬움을 달랬다.
송강호의 오른팔 애꾸(물론 실제 외눈 캐릭터는 아니다) 역은 불과 1년 전 문근영 주연의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에서 남자주인공 홍기훈을 연기했던 천정명이 맡았다. <푸른 소금>의 장르가 조폭 누아르였다면 애꾸가 결정적인 순간에 윤두헌을 배신했겠지만 애꾸는 끝까지 윤두헌에게 충성을 다한다. 다만 윤두헌이 세빈(신세경 분)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보이자 애꾸는 윤두헌에게 "형님, 원조교제 하십니까?"라고 따끔한 일침을 놓는다.
2021년 <미나리>를 통해 아카데미 영화제를 비롯해 국내외 수 많은 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쓴 윤여정 배우는 <푸른 소금>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살인청부 회사 대표 강여사를 연기했다. 강여사는 실수로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부하를 직접 총으로 쏴 죽일 정도로 냉정하고 잔인한 성격을 가진 인물이다. 김민준은 강여사가 운영하는 살인청부 회사의 에이스 킬러 'K' 역을 맡아 윤두헌을 끈질기게 쫓았다.
이처럼 유명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푸른 소금>에서 오늘날 가장 대성(?)한 배우는 바로 세빈의 절친 은정을 연기했던 이솜이다. 은정은 영화 중반 윤두헌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처럼 나오지만 실은 과거 윤두헌이 속했던 조직에게 잡혀 마약제조에 이용 당하고 있었다. 모델 출신의 이솜은 <푸른 소금> 이후 연기자로 꾸준히 커리어를 쌓아 나갔고 2017년 독립영화 <소공녀>를 통해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과 들꽃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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