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도가 백패킹 성지? 당신이 못본 '찐 현실' 보여드립니다
[시셰퍼드코리아 기자]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나"라고들 말하지만, 아니다. 치우는 사람은 따로 없었다. 변기 뚜껑, 슬리퍼, 낚시 가방, 페트병… 해안가를 따라 보이는 하얀 띠를 멀리서 보고는 눈을 의심했다.
저게 다 쓰레기라고? 파도가 토해놓은 생활 쓰레기는 파도에, 바람에, 햇빛에 풍화되어 색이 말갛게 바랐다. 쓰레기로 잠식된 해변 한 구석에는 한 노인이 돗자리를 펴두고 곡식을 고르고 있었다. 마치 이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이 말이다. 쓰레기는 마치 단독주택 정원의 잔디처럼, 아파트 주차장의 차들처럼, 언제나 그곳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곳에 있을 것만 같은 주거형태의 일부로 보이기도 했다.
▲ 무의도 해변에 거주하는 할아버지가 곡식을 고르고 있다. |
ⓒ 시셰퍼드코리아 |
무의도는 산과 바다가 어우러져 풍경이 아름다운 인천의 작은 섬이다. 3년 전만 해도 배를 타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들어갈 수 있는 섬이었지만, 2019년 4월 '무의대교'가 개통된 이후 배를 타지 않고도 편하게 섬을 찾을 수 있게 되며 관광객이 더 늘었다. 개통 직후에는 관광객이 무려 9배 늘어 4300대의 차량이 몰렸다.
사람의 발걸음을 따라 쓰레기도 무섭게 흔적을 남기기 시작했다. 무의도를 찾는 관광객이 하루 평균 3000~5000명에 달하며 주말에만 10여톤의 쓰레기가 쏟아져 나왔다. 생활폐기물을 처리하는 트럭이 지나간 후에도, 각종 쓰레기가 뒤엉켜 있던 장소에는 악취가 흔적으로 남았다. 2018년부터 무의도의 하나개해수욕장은 정식 해수욕장으로 지정됐지만 분리배출대는 넘쳐나는 쓰레기를 감당하지 못했다. 쓰레기는 임시 주차공간 한켠을 넘어 바닷가까지 너울거리기 시작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국내 여행 수요가 높아지자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국내 차박 여행지로 주목받기 시작하며 무의도 쓰레기 배출량이 한 해만에 50% 가량 늘어난 것이다. 450여 가구가 사는 작은 섬 마을에는 이제 350여 톤의 쓰레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도로도, 주차장도, 상수시설도, 쓰레기 처리도 부족하기만 한 무의도에는 그렇게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했다. 지역 쓰레기를 직접 치우던 주민들이 구청에 지원을 요청했을 때도 '9월에나 수거하겠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2021년 10월, 결국 해양환경단체가 나섰다. 시셰퍼드코리아 활동가와 시민 20여 명은 패기롭게 100L짜리 마대 50여 개'만' 가지고 무의도로 향했다. 무의도 섬의 남쪽 해변. 쓰레기가 잔뜩 쌓인 해변까지 걸어 들어가는 데만 약 20분, 무거운 쓰레기를 몇 번이고 고쳐 잡으며 뭍으로 나오는 시간까지 하면 넉넉히 왕복 1시간이 걸렸다.
너무 거대해 자연의 흔적처럼 보이기도 하는 쓰레기. 주워도 주워도 끝이 없었다. 결국 시셰퍼드코리아 활동가들과 시민들은 쓰레기가 바다에 쓸려가지 않도록 마대를 육지 안쪽 깊숙이 넣어두고 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중구청에 해당 마대를 수거해달라고 요청하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그 후로 약 1년이 넘는 시간, 지자체가 '길이 험해 들어갈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 어업쓰레기 |
ⓒ 시셰퍼드코리아 |
▲ 여행쓰레기 |
ⓒ 시셰퍼드코리아 |
▲ 국적을 알 수 없는 쓰레기 |
ⓒ 시셰퍼드코리아 |
지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우리나라 해역에는 매해 외국의 해양 쓰레기 2000여 개가 흘러 들어왔다. 물이 국적에 상관없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쓰레기도 바닷물을 타고 흐르고 흐른다. 해양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변 나라뿐 아니라 국제적인 제도와 협력이 필요한 이유다.
근 1년 간 무의도 찾아 '쓰줍(쓰레기 줍기)'.... 지자체는 뭐하나 봤더니
2021년 10월 이후로 약 한 달에 한 번씩, 시셰퍼드코리아는 디프다제주, 와이퍼스 등 환경단체와 여러 시민들과 함께 무의도를 찾았다. 파도를 타고 끊임 없이 몰려드는 쓰레기를 치우고 또 치웠다. 활동가들과 시민들은 무릎이나 발목 등 부상을 감수하며 쓰레기를 이고지고 날랐다.
지자체의 쓰레기 수거는 이뤄지지 않았다.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이라는 이유였다. 사람이 닿을 수 없는 그곳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만들어낸 쓰레기가 빠르게 자리 잡았다. 햇볕에 오래 삭아 살포시 붙잡기만 해도 잘게 부서져버리는 플라스틱 조각들은 굳게 묶인 지차제의 행보와 달리 빠른 속도로 흩어졌다.
시셰퍼드코리아 활동가이자 배우 임세미, 방송인 줄리안 등 다른 환경단체와 많은 시민들이 함께 방문하며 무의도 쓰레기 문제는 언론에도 종종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시셰퍼드코리아 활동가와 여러 환경단체, 시민들은 인천 중구청에 민원을 넣고 기자회견을 하며 문제 해결을 위한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접근하기 어렵다'던 중구청도 방법을 내놓았다. 지난 7월, 시셰퍼드코리아가 쓰레기를 모아둔 지 약 10개월이 되던 째 인천 중구청 담당자는 '선박 수거·용역 업체가 선정됐고, 이들이 시셰퍼드코리아에서 체크해 중구청에 공유한 미반출 지역을 중심으로 반출 작업을 시작한다'는 연락을 전해왔다. 배를 타고 들어와 쓰레기를 반출하기로 한 것이다. 2022년 12월 기준, 반출 작업은 마대가 쌓여있는 것으로 보고된 6곳 중 4곳이 진행됐다.
▲ ` 해양쓰레기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
ⓒ 시셰퍼드코리아 |
쓰레기를 만드는 건 인간이지만 인간이 사는 곳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청결하다. 아니, 인간이 사는 곳'만' 청결하다. 지구 생태계 곳곳에는 쓰레기가 닿지 않은 곳이 없다. 1997년, 드넓은 태평양 바다 한 가운데 둥둥 떠다니던 쓰레기가 섬처럼 모여 발견된 적 있다. 8만여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로 이뤄진 이 섬은 '태평양 쓰레기 섬'(Great Pacific Garbage Patch)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면적만 해도 우리나라보다 16배 큰 규모였다. 2022년 영국 템스 강변에서는 변기에 버린 물티슈와 기름 성분이 결합돼 생긴 '물티슈섬'도 발견됐다. 해양쓰레기 문제는 시민들이 곱게 모아 쌓아둔 쓰레기를 반출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애초에 해양쓰레기가 어디에서 어떻게 버려지고 유입되고 있는지 그 시작을 찾아 개선해야 한다.
인천 중구청은 무의도 쓰레기 반출을 위해 2023년도 해양쓰레기 관련 예산을 늘리고 장기간 용역을 계약하겠다고 밝혔다. 1년을 싸워 겨우 인천 중구청이 쓰레기를 회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인천 중구청이 쓰레기 반출을 결정한 것은, 오랜 줄다리기 끝에 이끌어낸 유의미한 변화였다. 그러나 반갑거나 기쁘기만 한 소식은 아니었다. 무의도, 아니 해양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발걸음은 이제부터 시작일 것이기 때문이다.
중구청의 쓰레기 반출사업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이루어질지 지켜봄과 동시에, 반출과는 별개로 인천시 해양환경과가 해당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고민과 시도를 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나아가 2021년 해양수산부가 제정·시행한 '해양폐기물 및 해양오염퇴적물 관리법'이 실제 쓰레기 수거 작업에 얼마나 유효하게 적용될지 적극적으로 지켜보고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버려질 대로 버려진 쓰레기를 모아 반출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때늦은, 가장 소극적인 대처에 불과할 수도 있다. 어느 나라 언어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운 외국어가 쓰인 음료병을 치우는 일, 성인 몇 명이 달라 붙어도 끌어낼 수 없는 어마어마한 덩치의 폐어망을 치우는 일은 비단 인천시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바다 곳곳에는 인간이 만들었지만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쓰레기 더미들이 가득하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는 이미 수많은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일회용품 사용 규제와 해양 폐기물 관리에 더욱 힘쓰지 않으면, 흘러 넘친 해양 쓰레기는 몇몇 운없는 바다 생명들과 인천 무의도 시민의 삶을 위협하는 정도에서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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