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강'부터 '확전 각오'까지... 한반도의 잘못 끼운 첫 단추

변진흥 2022. 12. 31.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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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연구원의 한반도워치] 소가 외양간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게 평화 관리지만...

[변진흥]

 지난 12월 26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북한 무인기 영공 침범과 관련된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북한 무인기의 우리나라 영공 침범 등으로 인해 한반도 위기 지수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전문가들도 관심을 두고 올해부터 고조되는 한반도 긴장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특히 북한 핵능력 고도화를 우려해온 해외전문가들은 과거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었던 다양한 기회와 합의를 무시하거나, 합의를 이루고도 결과적으로 이를 차버린 미국에 그 탓이 있음도 지적한다.

지난 11월 11일 존스 홉킨스 대학교 조엘 위트 교수는 그가 운영하는 스팀슨센터 '38노스 프로그램'에 저명한 핵과학자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와 1994년 북미합의의 주역이었던 로버트 갈루치 미 국무부 당시 대북 특사 등을 초대했다.

해커 박사는 구소련 붕괴 후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버림받은 김일성이 생존을 위해 핵무기 개발과 함께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는 '2중 전략'을 구사했다는 점 그리고 이 '투 트랙 전략'은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까지 3대에 걸쳐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부시와 오바마 그리고 트럼프까지 미국 행정부는 언제나 북핵 문제 해결의 전환점을 만들지 못 했고, 그때마다 오히려 북한의 핵 능력은 규모와 정교함을 확장시켜 나가는 역효과를 가져왔다고 진단했다.

부시 행정부는 '기념비적인 북미합의'를 '악의 축 타도'란 망치로 부쉈고, 오바마는 정권 초기에 김정일이 위성을 발사하자 거래를 포기했으며, 트럼프는 결정적인 하노이회담에서 박차고 나왔다는 것이다. 결국 부시가 잘못 끼운 첫 단추의 결과는 오바마와 트럼프로 이어졌고, 이 실패를 덮기 위해 출현한 '비핵화 신화'는 이후 미국뿐 아니라 남북관계에 이르는 관계망 전체를 '비핵화의 인질'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음을 뜻한다.

잘못 꿴 첫 단추... 그 후폭풍

최근 국내 상황으로 눈을 돌려봐도 마찬가지다. 이미 국내 언론은 지난 3월부터 한반도 평화시계가 2017년 7~9월의 위태롭던 '한반도 위기' 때로 회귀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 출발점은 윤석열 정부의 출범 직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석열 후보 당선 보름 뒤인 3월 24일 북한은 평양 순안 일대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당시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는 즉각 '북의 모라토리엄 파기'로 규정했다. 북한이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직전에 국제사회에 스스로 약속했던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유예(2018.4.20. 노동당 중앙위 7기3차 전원회의)' 조치를 깨고 나온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이는 윤석열 후보가 대선 과정에서 공표한 '한미동맹에 기반한 북핵 대처 확장억제 강화' 공약에 북한이 미리 경고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정권 교체로 인해 4.27판문점선언과 6.12북미공동성명을 두 기둥으로 했던 '2018 한반도 잠정 평화체제'가 붕괴될 위기에 처했음을 경고하면서 새 정부가 '강대강'(强對强)을 고수할 건지 '선대선'(善對善)의 가능성을 열 건지 취임 전에 재고를 촉구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선 비핵화를 말하며 단호하게 '강대강' 구도를 답으로 내놨다. 취임 직후 한미정상회담에선 미국의 대북 확장억제(북핵 억지력으로 핵우산을 제공하는 핵전략) 공약 실행력 제고를 위한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회(EDSCG) 조기 재가동 합의, 한미연합훈련 확대와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등을 공식화했다. 한미 당국은 실무선에서 '제3차 고위급 확장억제전략협의회' 개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북한도 답을 보냈다. 9월 8일에 개최된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핵무력정책 법령 채택을 선포하고, '강대강' 전략에 입각한 핵무력 사용을 천명했다. 북한은 이를 전후해 5월에 4회, 6월 2회, 7월 2회, 8월 1회, 9월 3회 그리고 10월에는 무려 11회에 걸쳐 ICBM・SLBM・IRBM 등과 장거리 순항미사일, 초대형 방사포 발사를 비롯 군용기 편대 비행과 공대지 사격훈련까지 위기 수준을 끌어올렸다. 10월 31일부터 한미연합공중훈련인 비질런트 스톰'(Vigilant Storm)이 예정대로 전개되자 11월 2일에 3회, 3일에 3회, 5일 1회, 9일 1회, 17일에 1회, 그리고 18일에는 화성 17형으로 추정되는 ICBM과 함께 중거리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한반도는 강대강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남한과 북한은 논평 등으로 거친 언사를 주고받다가 급기야 2017년 6월 이후 5년 만에 '북한의 무인기 도발'까지 벌어졌다. 남한의 대통령은 이 상황에 대응하면서 국방부장관에게 '확전각오' 지시까지 내렸다.

성사되지 않은 '이어 달리기'
 
 윤석열 신임 대통령이 5월 10일 취임식을 마친 뒤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만약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국내 정치와 상관없이 한반도 평화를 향한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히고 '선대선'을 향한 공동의 노력을 촉구했다면, 오늘처럼 급박해진 한반도 위기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윤 대통령은 지난 10월 14일 아침 출근길 도어 스태핑에서 북한의 방사포 사격을 9.19 군사합의 위반으로 규정했다. 이어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북 방사포 사격을 유엔 안보리 결의와 9.19 남북군사합의 위반이라고 강력 규탄했다.

소가 외양간을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 관리의 첫걸음임을 잊었던 걸까. 앞서 언급한 조엘 위트 교수는 2018년의 9.19 남북군사합의가 미국에서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정말로 '인상적인 합의'였다고 극찬했다. 이 합의는 남북간 우발적인 전쟁과 우발적인 전쟁 확대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고, 더 나아가 갈등의 확대를 방지하기 위한 '핫라인'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만약 윤 정부의 대북정책이 '잘못 끼운 첫 단추'를 반복하지 않고, 그야말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이어 달리기'를 시도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 분명하다. 북한도 보수정권이 집권했을 때 대북정책의 폭을 확장할 수 있다는 점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때 놓쳤던 역사의 전환점을 우리 모두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윤 정부가 새 꿈을 꿀 수 있었다면 그야말로 트럼프처럼 전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었으리라. 그런 기회를 놓치고 전임 정부만 탓하는 모습은 무척이나 처량하다.

위험천만한 '죽음의 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 24일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방문해 KF-21 시제기 3호기를 참관하며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위기가 깊을수록 평화는 절실하다. 위기는 갑자기 닥치는 것 같지만, 이미 예고된 것임을 성찰하고 더 늦기 전에 본래의 자리에서 뒤돌아보고 이를 헤쳐 나갈 지혜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안보다. 그리고 진정한 안보는 다시금 평화의 길을 찾아 나가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윤석열 정부는 힘을 바탕으로 한 국가안보만을 강조하고, 한반도 평화전략을 실종시키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최근의 상황을 보면서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도 새 정부에서는 군사안보전략만 보이고 한반도평화전략이 실종된 것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깊이 우려하고 있다.

안보의 대상인 북한은 '강대강'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선대선'의 공동안보와 평화의 길도 함께 언급하고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북한이 남쪽을 향해 시위하는 '강대강'의 주된 대상은 미국이다.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와 달리 미국의 확장억제전략에 편승해서 자신들을 압살하려 하는 것에 대한 단말마적 비명과도 같다. 이런 상황에서 계속 김정은을 '미친 골목'으로 몰아넣는 것은 진정한 안보가 아니다. 똑같이 '죽음의 춤(Dance of Death)'에 몰두한다면, 한반도 미래를 과연 어느 누가 책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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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변진흥 코리아연구원 원장입니다. 이 글은 필자가 한국종교인평화회의에서 월간으로 발간하는 <종교와 평화> 174호(2022.11.5.일자)에 게재된 칼럼의 내용을 재인용하면서 현재 상황에 맞게 다듬은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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