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쏘기에 진심인 2022년, 그래도 '이건' 못했습니다

김경준 2022. 12. 31.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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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꺾이지 않는 마음] 2023년에도 활 공부는 계속된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올해의 한 문장을 뽑자면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 아닐까요? "올해 당신의 '꺾이지 않는 마음'은 무엇이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시민기자들의 이야기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김경준 기자]

어릴 적 사극을 보며 활쏘기(국궁)에 대한 로망을 품었다. 대학생이 되어 처음 활을 잡았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5년 넘게 활을 내려놓았다. 그러다 작년(2021년) 12월에야 다시 활을 배우기 시작했다. 방황 끝에 다시 활을 잡으며 '이제는 활을 손에서 놓지 않겠다'고 다짐까지 했다. (관련 기사 : 송일국이 심어준 '로망', 드디어 이뤘습니다 http://omn.kr/1wj6l)

그렇게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올 한 해를 돌아보니 먹고 자고 공부하는 시간을 빼면 거의 활쏘기로 점철된 일상이었던 것 같다. 혹여라도 또다시 활 공부를 중도 포기할까 노심초사했던 게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제 활은 내게 있어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존재가 됐다.
 
 2022년 10월 29일 서울 황학정에서 열린 제10회 종로구청장기 활쏘기 대회에서 활을 쏘는 기자의 모습
ⓒ 김경준
달성하지 못한 목표 '초몰기'

활을 배우며 올해 새롭게 세운 목표가 있었다. 바로 올해 안에 '초몰기'를 하는 것이었다. 국궁(활쏘기)에서 '몰기'란 한 순(5발)을 쏴서 잇달아 관중하는 것을 말한다. 초몰기는 처음으로 몰기를 달성하는 것으로 이제 초보자 딱지를 떼고 어엿한 활꾼으로 거듭났음을 의미한다.

활터(사정)에 입정하게 되면 '신사'라는 칭호로 불리는데, 초몰기를 하는 순간부터 '접장'이 된다. 활터마다 조금씩 문화가 다르긴 하지만 대개 초몰기를 한 신사에게는 '몰기패'란 것을 만들어 수여하기도 한다.
 
 눈 덮인 무겁의 모습 (서울 공항정)
ⓒ 김경준
"아직도 초몰기를 못했다고?"

함께 활을 내는 접장님들께 고백하면 대개 이런 반응들이다. 사실 빠르면 일주일, 늦어도 반 년 안에는 보통 초몰기를 경험하기 때문에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몰기를 못했다고 하니 다들 의아해 하는 것이다. 그런 반응 앞에서 나는 더욱 민망하고 초라해지곤 한다.

그러다 보니 웃픈 에피소드도 있었다. 나보다 한참 뒤늦게 활을 배우기 시작한 신사 한 분이 "몰기가 쉬이 안 된다"고 한탄한 적이 있었다. 나름 먼저 활을 배우기 시작한 입장에서 "저도 4중까지는 해봤는데 몰기는 참 안 되더라고요. 어느 정도 운도 따라야 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저보다 먼저 몰기를 달성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라는 말로 위로해드렸다.

그러면서 "어려우니까 배우는 맛이 있는 것 아닐까요?"라고 한껏 여유로운 척 말했다. 그런데 결국 그 신사 분이 나보다 먼저 초몰기를 달성했고, 이제는 "언제 초몰기할 거냐"고 도리어 내게 묻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인간이란 참 모순적인 동물이다. 어려우니까 배울 맛이 있다고 말할 땐 언제고 자꾸 남들은 앞서 가는데 나는 뒤처지고 있으니 초조하고 답답하고 나중엔 짜증까지 나는 것이다.

너무나도 답답한 마음에 활 배운 지 20년이 넘었다는 접장님께 답답함을 토로했더니 이렇게 한 마디 하셨다.

"매일 나오는 사람하고 어쩌다 한 번 나오는 사람하고 실력이 같길 바라면 안 되지. 아직 젊으니까 평생 한다고 생각하고 느긋하게 마음 먹어요."

또 다른 분은 "운 좋게 초몰기 한 번 하고 계속 불 내느니 평균 시수가 안정적으로 나올 정도로 기초를 확실히 닦아놓는 게 더 중요하다"라고 격려해주셨다(불 낸다는 것은 과녁에 화살이 맞지 않는다는 뜻이고, 시수는 관중 횟수를 의미한다).

그래도 활쏘기는 즐거워

2022년이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올해 안에 초몰기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달성할 확률은 희박하다. 그래서일까. 어차피 올해는 글렀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마음을 비울 수 있게 됐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느리게 걷더라도 기초를 제대로 닦는다는 마음가짐으로 활 공부에 임하자는 생각이다.

비록 초몰기라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나 계속 활을 잡아도 되는 걸까' 회의를 느낀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지난 1년 동안 활과 함께 한 시간은 너무나도 행복했다. 내가 쏜 화살이 과녁을 때릴 때마다 느껴지는 짜릿함은 최고의 스트레스 해소제였다.
 
 밤에 야사(夜射)를 하는 모습 (서울 공항정)
ⓒ 김경준
특히나 활을 배운 뒤로 내 삶에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집돌이였던 내가 "방랑벽이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전국 방방곡곡 여행을 다니는 취미가 생긴 것이다.
그냥 여행을 다니는 게 아니라 활과 함께 하는 여행이다.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이 있었던 통영으로, 태조 이성계의 황산대첩이 있었던 남원으로 열심히 쏘다니며 그곳에 있는 활터에서 활쏘기를 즐겼다. 자연스레 그 지역에 깃든 선조들의 웅혼한 기상을 느끼며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었다.
 
 한산해전이 벌어진 한산도 앞바다에서
ⓒ 김경준
 
 1380년(우왕 6) 태조 이성계가 왜구를 무찌른 전북 남원의 '황산대첩' 현장에서 활을 들고 찍은 사진
ⓒ 김경준
그 모든 기록을 영상으로 기록하기 위해 '好武善弓(호무선궁)'이라는 이름의 유튜브 채널도 열었다. 이제 겨우 300명 정도 되는 작은 유튜브 채널이지만, 전국 방방곡곡에서 즐기는 활쏘기를 기록하는 의미도 있고 미약하게나마 조금씩 올라가는 구독자수도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올해 11월에는 서울 동작구의 한 도서관에서 내가 만든 활쏘기 영상들로 상영회를 개최하는 특별한 경험까지 했다.
 
 2022년 11월 23일부터 25일까지 서울 동작구 까망돌도서관에서 열린 <일상레시피 기록전>(주최:동작문화재단)에서 상영된 나의 활쏘기 영상들
ⓒ 김경준
무엇보다 활을 통해 새로운 인연들을 만났다. 무림에는 '이무회우(以武會友)'라는 말이 있다. '무예로써 벗을 사귄다'는 뜻이다. 활터에서 만난 인연들은 활쏘기라는 취미를 즐김에 있어 언제까지나 함께 하고픈 든든한 벗들이다.
특히 나는 서울·경기·제주 등 전국의 젊은 궁사들과 함께 '앞나고 뒤나고'라는 모임을 결성해 한 달에 한 번 전국 활터를 돌며 활도 내고 맛집도 찾아다니고 있다. 이 모임을 통해 만난 벗들은 활 공부에 있어서나,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나 내게 크고 작은 자극을 주고 있다.
 
 서울·경기·제주의 젊은 한량들로 구성된 '앞나고 뒤나고' 모임 멤버들이 난지국궁장에서 활쏘기를 즐기는 모습 (유튜브 '섬마을 활린이 소헌' 캡쳐)
ⓒ 소헌
반구저기하며 끝없이 정진하는 한 해가 되길

우리 활쏘기에는 '불원승자(不怨勝者)'와 '반구저기(反求諸己)'라는 격언이 있다. 전자는 나를 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말라는 뜻이요, 후자는 남을 탓하지 말고 내 자신을 돌아보며 문제의 원인을 찾으라는 뜻이다.

올 한 해 초몰기를 하지 못했다고 초조해하면서 나보다 앞서 가는 이들을 부러워도 하고 질투도 했다. 그러나 모든 원인은 결국 내 자신에게 있으니 누굴 원망하랴.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고치려는 반구저기의 노력이 남들보다 부족한 탓이리라.

그래서 이제부터는 자꾸만 남들과 나를 비교하려는 버릇을 좀 고쳐보려 한다. 어차피 내가 조선시대 무과시험에 급제하려고 남들과 경쟁하는 것도 아니잖은가. 그저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 생각하며 다가오는 2023년에도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활 공부에 정진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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