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김명시 장군의 '불편했던' 학교길 벽화 설명판 수정

윤성효 2022. 12. 31.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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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열린사회희망연대에 따르면, 창원시가 최근에 '학교길 벽화'의 설명판에 대한 수정 작업을 완료했다.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고문은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계열이 있었고, 학자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며 "설명판에 '공산당'이라는 표현을 해놓으니 일부에서는 '공산주의자한테 왜 훈장을 주느냐'는 소리까지 나왔던 것이고, 벽화 훼손까지 벌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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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그 후] '공산당' 표현 없애고 생가 터 내용과 거의 같아 ... "그나마 다행" 반응

[윤성효 기자]

창원마산 오동동문화거리에 조성되어 있는 독립운동가 김명시(金命時, 1907~1949) 장군의 벽화(학교 길)를 소개한 설명판이 수정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관련 기사 : "틀림없는 독립운동가 김명시 장군, 왜 잊혀졌는가").

31일 열린사회희망연대에 따르면, 창원시가 최근에 '학교길 벽화'의 설명판에 대한 수정 작업을 완료했다. 이전에는 김명시 장군을 소개하면서 '공산당' 관련 표현을 지나치게 해 "공산주의자한테 왜 훈장을 주느냐"는 소리가 나오도록 하는 빌미를 주기도 했다.

실제 지난 8월 '학교길 벽화'가 훼손되기도 했다. 이후 창원시는 벽화 그림에 대한 보완 작업을 했고, 최근에 '안내글'을 수정한 것이다.

벽화 설명판에 대해서는 <오마이뉴스>가 지난 10월 28일 기사 "틀림없는 독립운동가 김명시 장군, 왜 잊혀졌는가"를 통해 문제제기하기도 했다.

마산 출신인 김명시 장군은 어머니(김인석), 오빠(김형선), 동생(김형윤)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고, 신의주 형무소에서 7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해방 직후 서울에서 활동하다 해방공간에서 극렬한 이념 갈등 속에 부평경찰서에서 사망했다.

윤석열정부는 올해 광복절 때 김명시 선생한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이는 열린사회희망연대가 국가보훈처에 재심신청을 해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창원시는 2020년 10월 도시재생·여성친화사업으로 이곳에 '학교길 벽화'를 조성했다. 김명시 선생이 집에서 학교 가는 길을 벽화로 재현해 놓았던 것이다.

이전 설명판에는 '공산당'이라는 표현이 있었고, "'조선의 잔다르크로 칭송받았다는 일설이 전해지고 있다"라고 되어 있었다. 이전 설명판은 아래와 같다.

"... 1927년 중국 상해에서 중국공산당 상해한인지부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1932년 1월까지 중국공산당 본부에서 활동하였다. 동년 3월 서울로 돌아와 '코뮤니스트' 등 선전물을 인쇄, 배포하다 체포되어 6년의 옥고를 치렀다. 해방 이후 극렬한 이념 갈등으로 공산당 활동이 불법화 된 뒤 경찰에 체포되어, 1949년 10월, 부평경찰서에서 생을 마감했다.

... 김명시 장군의 행적에 대해서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일제강점기에 출옥 후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팔로군에 종군하였고, 조선의용군에 합류하여 항일무장투쟁의 최전선에서 '백마탄 여장군' '조선의 잔다르크로 칭송받았다는 일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수정된 설명판은 '공산당'이라는 표현이 없고, '중국 상해 활동' 등이라고 되어 있으며, "'조선의 잔다르크'로 칭송을 받았다"라고 되어 있다. 이는 열린사회희망연대가 제시해 창원시가 세운 김명시 장군의 생가 안내판 내용과 거의 같다. 수정 설명판은 아래와 같다.

"김명시는 1907년 마산부 만정 189번지(현 오동동 문화광장 무대 자리)에서 태어나 마산공립보통학교(현 성호초)를 졸업하고 1925년 18세에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났다. 1927년부터 1932년 1월까지 중국 상해에서 활동하였고 서울로 돌아와 '코뮤니스트' 등 선전물을 인쇄, 배포하고 노동운동을 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신의주형무소에서 7년간 옥고를 치렀다.

... 김명시 장군은 일제강점기에 출옥 후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팔로군에 종군하였고, 조선의용군에 합류하여 항일무장투쟁의 최전성에서 '백마탄 여장군' '조선의 잔다르크'로 칭송을 받았다."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고문은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계열이 있었고, 학자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며 "설명판에 '공산당'이라는 표현을 해놓으니 일부에서는 '공산주의자한테 왜 훈장을 주느냐'는 소리까지 나왔던 것이고, 벽화 훼손까지 벌어졌다"고 했다.

김 고문은 "'학교길 벽화'의 전체 그림과 함께 설명판 내용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고, 우선 설명판의 내용이 수정되어 그나마 다행이다"며 "우리 지역에서 배출한 독립운동가, 그것도 여성항일투쟁에 앞장섰던 인물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해를 제대로 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창원마산 오동동 문화거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김명시 장군의 '학교길 벽화'를 안내한 설명판 내용이 수정되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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