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딸의 생모가 살아있었다

이설아 2022. 12. 31. 11:4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모두의 입양] 우리는 언제쯤 서로의 손을 잡을 수 있을까

아무도 배제되지 않고, 누구도 실패하지 않는 건강한 입양을 만들어 가기 위해 입양의 구석구석을 새롭게 조명합니다. <기자말>

[이설아 기자]

 큰딸과 생모 두 사람이 17년 만에 서로의 생사를 확인했다.
ⓒ 픽사베이
 
큰딸의 입양정보공개청구건이 완료되었으니 홈페이지를 통해 결과를 확인하라는 내용의 메일이 도착했다. 메일이 도착한지 벌써 며칠이 지났지만 서둘러 확인하고 싶지 않았던 건 별다른 성과없이 청구건이 종결될 것을 알고 있어서였다. 마치 불합격 사실을 알면서도 통보결과지를 열어 확인해야 하는 수험생의 마음이랄까. 아이에게 답변 메일이 왔다고 전하면서도 막상 홈페이지 내용을 같이 확인하자는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입양인이 자신의 입양정보 공개청구를 신청할 경우 '아동권리보장원 내 입양인지원센터'에서는 생부모의 의사확인(입양인에게 생모의 인적사항을 알려주는 것에 대한 동의)을 위한 작업을 시작한다. 당사자가 읽었을 때 입양 보낸 자녀의 소식임을 유추할 수 있는 문구(몇 월 며칠 어디서 출생한 누구님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연락을 기다립니다 같은)로 세 번의 등기우편물을 보내는 것이다. 첫 번째 우편물을 받고 1주일 이내 아무런 연락이 없으면 2차로 우편물을 보내고, 그 후에도 연락이 없으면 3차 등기까지 보낸 후 청구건을 완료한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등기우편물을 보내기 전 입양인지원센터에서 연락이 왔었다. 첫 번째 등기는 본인수령으로 나오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고, 계속 우편물을 보내는 것에 동의하냐고 물었다.

등기우편이 본인수령으로 전달되었다는 말을 듣는데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았다. 같은 하늘 아래 살아있었구나. 늘 그림차럼 희미한 이미지로만 그려지던 존재가 갑자기 이 땅에 두발을 딛고 매일을 살아내는,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숨소리가 들릴 것 같은 이웃의 존재로 다가왔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우편물을 보고 얼마나 놀랐을까. 지금쯤 가정을 꾸리며 살고 있을 나이인데 갑자기 들이닥친 소식이 그녀에겐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다가왔겠다 싶은 마음에 걱정이 되었지만 우리에겐 이 방법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문구를 좀 신경써서 3차까지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의 삶이 너무 아프지 않길

아이를 입양보낼 때 이런 날이 올 수 있다고 한 번이라도 전해들었다면, 잘 성장한 입양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생부모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이해했다면, 입양 이후의 삶의 방향이 조금 다르지 않았을까.

이 연락이 자신의 삶을 위협하는 두려움과 수치의 칼날이 아닌, 아이가 건강하게 잘 성장하고 있음을 증거하는 희망의 편지로 전해지면 좋으련만 현재 우리의 입양 문화에서 그런 마음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부디 그녀의 불안과 수치를 건드리는 것만으로 이 청구가 끝나지 않았길, 그녀의 가슴에 생긴 작은 균열 사이로 새로운 용기가 불어넣어지길, 그녀의 삶이 너무 아프지 않게 우리와 닿길 기도하게 된다.

결과 통보 페이지에 첨부된 파일을 보며 "그래도 성씨도 알게 되고, 어디 사는지도(시와 구) 알게 되었으니 나름 성과가 있네. 항상 생모가 살아있는지 궁금해 했었잖아. 첫 번째 우편물을 본인이 수령했다고 하니 살아계시나보다. 그치?"라고 큰딸에게 건넸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소파에 누워 듣던 큰딸이 "그렇네요. 이제 그 성씨(특이한 성씨다) 가진 사람을 만날 때마다 다시 한번 얼굴을 살펴볼 거 같아요. 아... 서울시 **구에 살고 있는 *씨성을 가진 여성분을 찾습니다~~"라며 허공을 향해 장난스런 멘트를 내뱉는다. 다섯 살 꼬맹이가 어느새 많이 컸구나 싶은, 아무렇지 않지 않은 아침.

큰딸과 생모 두 사람이 17년 만에 서로의 생사를 확인했다. 건강하게 잘 살아내길 기도하며 쌓아왔을 그 시간이 종이비행기처럼 날아 서로에게 처음 닿은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올해의 시도는 의미있다고 느낀다. 서로를 직접 만나러 나서기까지 큰딸과 생모 모두에게 많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그 만남이 원망과 상처의 자리가 아닌 비었던 퍼즐을 채우고 회복하는 자리란걸 생모도 알게 되기까지 우린 기도하며 기다리기로 했다. 딸아이도 나도 기도제목이 하나 더 늘었으니 내년은 더 씩씩하게 살아야 할 것 같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