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임은정 인사자료 제출" 명령에도 '없다' 버티는 법무부
[손가영 기자]
▲ 지난 7월30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한 임은정 대구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부장검사. |
ⓒ 권우성 |
임은정 검사가 과거 재심사건 무죄 구형을 계기로 위법한 인사상 불이익을 당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이른바 '검사 블랙리스트' 국가배상소송에서 법무부의 '정보 숨기기'가 도마에 올랐다.
법원도 심리에 필요한 감찰 자료 등 검찰 인사 자료를 법무부가 가지고 있다고 인정할 수 있다며 제출을 명령했으나 법무부는 "갖고 있지 않다"며 끝내 제출을 거부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1부(부장 정봉기, 배석 김성준·이진희)는 지난 22일 이 사건 재판에서 "정부는 임 검사에게 1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법무부·대검찰청 등이 임 검사를 검사 블랙리스트라 불리는 '집중관리 대상검사'로 지정해 조직적으로 감찰했고 이는 위헌적 지침에 근거한 위법행위라며 임 검사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했다.
임 검사는 2012년 12월 윤길중 진보당 간사의 반공법 위반 재심사건에서 '백지 구형'을 하라는 검찰 상부 지침을 어기고 무죄를 구형해 정직 4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백지 구형은 피고인의 무죄가 명백함에도 검찰이 판사에게 '법과 원칙에 따라 선고해달라'고만 의견을 밝히는 것으로, 책임회피성 검찰권 행사란 비판을 받아왔다.
그는 이후 검사 적격심사에 회부돼 사직 위기도 겪었다. 또 전례와 다르게 1년 단위로 갑자기 인사발령을 받는가 하면 부부장 승진 보임도 동기들에 비해 2년 넘게 늦었다. 그러는 동안 임 검사는 자신이 '집중관리 검사'로 지정됐다는 전언을 접했고 법무부·대검 등의 수사관들이 자신의 세평 수집 명목으로 주변 동료들을 탐문하고 다닌 정황도 계속 파악됐다. 그러다 2019년 사실상 블랙리스트로 운영되는 집중관리 검사 제도에 대해 대검찰청에 수사·감찰을 요구했고 국가배상소송도 제기했다.
법원 "사실상 문건 있다"는데... 검찰, 있는 자료 없다고 거짓말?
때문에 이번 소송에서 집중관리 검사 제도는 핵심 쟁점 중 하나였다. 이에 따라 법무부가 집중관리 검사 제도를 어떻게 운용해왔고, 임 검사에게 어떤 기준을 적용해 감찰해왔는지를 법정에서 투명하게 소명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졌다. 하지만 법무부는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판결문을 보면, 법무부는 임 검사가 집중관리 검사 명단에 있는지 여부도 밝히지 않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법무부가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은 채 임 검사가 집중관리 검사로 선정됐는지 입증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임 검사의 사실확인 요청을 받아들여 ▲검찰의 종합적인 인사 기준·원칙이 해설된 검사인사원칙집 ▲법무부 예규 '집중관리 대상 검사 선정 및 관리 지침'(현재 폐지) ▲이 지침에 따라 임 검사를 감찰하고 조사한 기록 일체를 법원에 제출하라고 법무부에 명령했다.
법무부는 제출 명령에 불복해 항고했다. 그러나 2심·3심에서 모두 기각됐다. "문건의 존재가 사실상 추단(추측하여 미루어 판단)되고 법무부가 문서를 소지한 사실도 증명됐으며, 민사소송법상 제출을 거부하지 못하는 제출 의무 문서에 해당한다"는 이유다. 이 항고 소송 진행에만 1년 5개월이 걸렸다.
그런데 법무부는 세 개 문건 중 집중관리 검사 관리 지침만 제출했다. 법무부는 검사인사원칙집과 임 검사 감찰·조사 기록은 "보유·관리하고 있지 않다"며 제출하지 않았다. 검사인사원칙집은 2018년 2월 안태근 전 검찰국장의 직권남용 사건 수사과정에서 확인돼 이후 판결문에도 증거로 명시됐던 법무부 내부 문서다. 당시 압수수색 과정을 지켜 본 권순정 검찰과장은 현재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으로 있다.
재판부는 결국 '제출 명령에 따르지 않았을 땐, 상대방의 주장을 진실하다고 인정한다'는 민사소송법 349조 등을 종합해 법무부가 임 검사에 대한 감찰 문건을 작성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법무부가 문건이 존재함을 전제로 이를 비공개 대상 정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고 문건은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기록물에 해당한다"며 "법상 보존기간을 넘지 않는 이상 폐기될 수 없는데 폐기 여부에 관해 아무 주장을 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임 검사가 집중관리 검사로 지정된 후 입은 인사상 불이익 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없다"며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를 1000만원으로 제한해 인정한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 결과에 대해 임은정 검사는 지난 26일 <TBS> '신장식의 신장개업' 인터뷰에서 "제가 법무부에 두 번 근무해서 어느 자료가 어디 있는지 다 안다. 그런데 없다고 한다"며 "황당해서 항소심에 가서는 (법원에) 증거조사를 신청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임 검사는 "법무부에서 (소송 초반엔) 절대 못 준다라고 했는데, 지금은 (법원이) 주라고 하니 없다고 한다"며 법무부 측 입장 번복도 꼬집었다.
▲ 2019년 폐기된 법무부 비공개 예규 ‘집중 관리 대상 검사 선정 및 관리 지침’ 중 일부 내용 갈무리. |
ⓒ 법무부 예규 |
양측 항소... 법무부 "검사집중관리제도 적법 절차 따른 것"
다만 재판부는 백지 구형 지시 위반에 따른 정직 처분은 불법행위라는 임 검사 측 주장과 5여년에 걸쳐 위법한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는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 수뇌부들이 임 검사에게 이프로스나 SNS에 글을 게시하지 말라고 지시하거나 사직을 강요했던 행위 등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임 검사를 대리하는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30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항소를 할 예정"이라며 "1심 재판부의 고민과 판단을 존중하지만, 저희와 생각이 다르거나 다른 판단을 받아 봤으면 하는 부분에 대해서 항소심에서 계속 다툴 것이다"라고 밝혔다.
법무부는 지난 22일 "'검사집중관리제도'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정된 행정규칙에 기반해 시행된 제도이므로 '집중관리 검사 관리 지침'이 위헌적이라고 판단한 1심 판결에 법리 오해의 위법이 있다"며 "법무부는 항소한 후 상급심에서 제도 취지 및 검찰 감찰기능의 중요성 등을 충실히 설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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