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올해의 재판 ④] "향숙이 예뻤다" 이춘재 대신 20년 옥살이…윤성여 18억 배상
"윤성여 판결, 경찰에게만 책임 묻고…사건 지휘한 검찰·유죄 내린 법원 책임은 빠져 아쉬워"
"20년 인생 억울한 옥살이, 18억 배상으로 풀리지 않을 것…재판부, 배상액이라도 늘렸어야"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성여 씨에게 국가가 18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법조계에서는 20년간 억울한 옥살이가 18억원이라는 금액으로는 부족하다며, 국가가 피해자에게 진정 죄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다면 배상액을 지금보다 높게 책정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경찰에게만 책임을 묻고, 사건을 지휘한 검찰과 유죄를 내린 재판부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은 판결에 아쉬운 부분이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5부(부장 김경수)는 지난달 16일 윤씨 등 4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윤 씨에게 18억7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단했다. 윤 씨의 위자료를 40억원으로 산정했고, 윤 씨가 이미 받은 형사보상금(25억1700여만원 등)을 공제하고 남은 금액을 감안해 결정했다. 윤 씨의 형제자매 3명도 이미 별세한 부친의 상속분까지 포함해 인당 1억원을 배상하라고 판단했다.
윤 씨는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자택에서 박모(당시 13세) 양이 잠을 자다가 성폭행을 당한 뒤 숨진 사건의 진범으로 지목돼 20년간 수감생활을 하다 2009년 8월 가석방 출소했다. 그러나 2019년 부산교도소에서 수감 중이던 이춘재가 자신이 진범임을 자백했고, 윤 씨는 재심을 청구해 2020년 12월 무죄가 확정됐다. 이후 윤 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헌법 제 29조에 따르면 '배상'은 남의 권리를 침해한 경우 피해를 입은 상대방에게 그 손해를 물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잘못된 공무수행으로 국민이 손해를 입거나 개인의 잘못으로 누군가가 손해를 입은 경우 이를 갚아주는 행위를 일컫는다.
박경찬 법률사무소 박경찬 변호사는 "배상은 불법 행위에 관한 것으로 봐서 결정하는 절차다"며 "그래서 위법성이나 불법 행위가 발생할 당시의 상황을 확인을 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박 변호사는 "다만 이 사건처럼 재판 절차상의 잘못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면 형사 배상이 아니라 형사 보상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부연했다.
윤 씨의 재심을 심리한 재판부는 "윤씨가 경찰에서 작성한 진술서와 피고인에 대한 경찰 진술조서 및 피의자 신문조서에 기재된 피고인 자백진술은 피고인을 불법·체포·감금한 상태에서 잠을 재우지 않고 쪼그려뛰기를 시키는 등 가혹행위로 얻어진 것"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1970·1980년대에는 이런 식의 수사 방식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법조계에서는 이 같은 일을 겪었던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면, 윤씨 판례가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박 변호사는 "예전 안기부 같은 곳에서 실적을 내야하다 보니까 '간첩을 잡았다'며 무고한 시민을 몰고간 사례가 잦았다. 동시에 이 과정에서 가혹행위도 많이 발생했다"며 "이와 같은 케이스는 모두 손해배상 대상이 되는 경우에 해당한다. 윤성여 씨 판결 등이 앞으로 발생할 유사 사건 재판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원곡법률사무소 최정규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서 검찰의 수사 행위에 대해선 위법하다고 인정받지 못했다. 당시 유죄판결을 내린 재판부도 마찬가지다"며 "반면 경찰 공무원의 위법성은 인정됐다. 경찰에게만 책임을 묻고 사건을 지휘한 검찰과 유죄를 내린 재판부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은 판결에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꼬집었다.
재판부가 결정한 배상액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았다. 박 변호사는 "18억원이라는 금액을 떠나서 20년이라는 인생을 감옥에서 억울하게 보냈기에 한이 쉽사리 풀리지는 않을 것이다. 재판부에서 결정하는 배상액도 크지 않다. 배상액이라도 더 늘려서 판결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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