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송년회

신준섭 2022. 12. 31.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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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준섭 경제부 기자


식당마다 인산인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린 이후 3년 만에 맞는 거리두기 없는 연말 송년회에 소상공인들이 분주하다. 소상공인만큼이나 송년회에 참석하는 이들 역시 분주하기는 매한가지다. 한동안 못 만났던 이들과 마주하며 어떻게 지냈는지 등 시시콜콜한 서로의 인생사를 묻고 답하는 일이 이렇게까지 그리웠던가 싶을 정도다.

대부분의 경우 반가운 얼굴로 정담을 주고받지만 삶에 드리워진 그늘까지 지우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결국은 요즘 경제 얘기로 흘러간다. 얼마 전 송년회 자리에서 만난 친구 A는 “전세 기간이 만료돼 내년에는 이사를 가야 하는데 대출 금리가 너무 올라서 아파트는 못 가게 생겼다”며 한숨을 쉰다. 대출 없이 살기 힘든 대다수 서민 입장인지라 이렇게 금리 얘기를 하면 한숨짓는 상황을 피해가기 힘들다. 전세자금대출 금리는 눈 씻고 찾아봐도 4%대 후반이 그나마 싼 편이다.

가계를 옥죄는 것은 대출 금리만이 아니다. 물가 역시 송년회 자리에서 한숨을 푹푹 쉬게 만드는 단골손님이다. 경유차를 모는 또 다른 친구 B는 “어떻게 휘발유보다 경유가 더 비싸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난 27일 기준 휘발유 평균 판매 가격은 ℓ당 1526.31원인데 경유는 ℓ당 1728.14원으로 200원가량 더 비싸다. 이런 상황을 유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날 기미가 잘 안 보인다. 당분간은 이런 상황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비단 경유 가격만 문제가 아니다. 먹거리 가격도 줄줄이 인상됐다. 유제품 원료인 원유 가격이 인상된 탓에 관련 품목은 도미노 인상을 피하기 힘들어졌다. 빵이나 커피 등 자주 접하는 품목들이 이에 해당된다. 라면도 합류했다. 이마트24는 최근 자사 브랜드(PB) 상품인 민생라면 가격을 올린다고 밝혔다. 국제 곡물 가격 상승분이 반영됐다.

또 다른 친구 C는 “내 월급 빼고는 다 올랐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내년에는 콜라 가격까지 오른다고 한다.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을 비롯한 공공요금도 인상이 불가피하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발표한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을 통해 내년 물가 상승률이 3.5%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가계를 위협하는 폭탄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위기를 헤쳐 나가려면 벌이라도 나아져야 할 텐데 그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기재부는 내년 경제성장률을 1.6%로 전망했다. 1998년 외환위기 직후와 비슷한 수준으로 경제 상황을 암울하게 내다봤다. 월급이 대폭 오르기 힘들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재테크라도 잘해야 할 텐데 화수분처럼 돈이 솟아날 구멍은 보이지 않는다. 코스피는 2200선에 머물러 있다. 주식을 사둔 이들 중에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주식 애플리케이션을 스마트폰에서 지운 이들도 많다고 한다. 가상화폐도 믿을 만한 투자처로 보기는 쉽지 않다. 미국 FTX 사례 등 가상화폐 자체가 사기일 수 있다는 위험 신호가 점점 더 많아지는 추세다.

물론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반성할 부분도 있다. 송년회 자리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와중에 대화에서 ‘절약’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자원 빈국인 한국 입장에서는 뭐든 아끼는 게 맞는다. 특히 수입 의존도가 97%에 달하는 에너지가 그렇다. 하지만 굳이 안 아끼더라도 삶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에너지 수급은 평탄하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전기다. 외국에 살아 본 경험이 있는 이들은 한국만큼 싼 가격에 전기를 쓸 수 있는 나라가 거의 없다는 말을 납득하는 편이다. 폭풍이 몰아쳐도 전기가 끊기지 않는 점 역시 대단하다고 할 만하다. 그런데 이런 제품을 원가에도 못 미치는 저가에 쓸 수 있다 보니 그동안은 절약할 필요가 없었다.

먹거리도 마찬가지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한국의 음식물 폐기량은 연간 548만t에 달한다. 처리 비용만도 1조960억원이 든다고 한다. 이 역시 가계 입장에서는 큰 비용으로 생각하지 않고 지내왔던 게 사실이다.

내년 한국 경제는 ‘상저하고’라는 게 경제정책 당국의 평가다. 상반기에는 보릿고개마냥 어렵고 하반기로 갈수록 조금씩 회복된다는 얘기다.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는 6개월간 한숨만 쉬기보다는 그동안은 잊고 지내던 절약이라는 단어도 한번 곱씹어보면 어떨까. 송년회 넋두리치고는 사소하지만 말이다.

신준섭 경제부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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