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중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드리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특별한 기회’에 많은 책임감
느끼지만 최대한 즐기고도 싶다”
상주음악가 제도는 원래 해외의 유서 깊은 공연장이나 오케스트라, 페스티벌 등이 특정 연주자나 작곡가에게 독자적인 레퍼토리를 선보일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대개 1년 단위로 운영된다. 국내에서는 2005년 통영국제음악제와 2006년 서울시향이 진은숙을 상주작곡가로 영입하면서 시작됐다. 공연장으로는 2013년 피아니스트 김다솔을 상주음악가로 임명한 금호아트홀이 처음이다.
금호아트홀을 운영하는 금호문화재단은 국내에서 젊은 클래식 음악가의 발굴과 육성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음악가의 성장 과정에 걸맞은 지원을 고민하던 끝에 2013년 도입된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제도는 30세 이하의 장래가 촉망되는 연주자, 특히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하는 시작점에 있는 연주자를 1명 초청해 연간 4~5회의 무대를 제공한다. 금호아트홀은 상주음악가에게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다른 음악가들과 협연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역대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는 김다솔(피아노·2013), 박혜윤(바이올린·2014), 조진주(바이올린·2015), 선우예권(피아노·2016), 문태국(첼로·2017), 양인모(바이올린·2018), 박종해(피아노·2019), 이지윤(바이올린·2020), 김한(클라리넷·2021), 김동현(바이올린·2022) 등이 있다. 국내 클래식계에서 ‘미래 주인공’을 미리 알아보는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제도는 2023년 대상자를 피아니스트 김수연(28)으로 선정했다.
11번째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가 된 김수연은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며 예원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쳐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에서 학사·석사 및 최고 연주자 과정을 마쳤다. 지난해 권위 있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잇따라 세미파이널(준결선 진출)에 오른 데 이어 몬트리올 국제 콩쿠르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한 바 있다. 김수연은 앞서 2014년 J.N. 훔멜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스페인 작곡가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 및 현대곡 특별상, 2020년 모차르트 국제 콩쿠르 준우승도 차지했다.
김수연은 27일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젊은 연주자에게 상주음악가는 ‘특별한 기회’라고 생각한다. 같은 공연장에서 한 해에 여러 번 무대에 서는 것은 쉽게 가질 수 없는 경험이기 때문”이라면서 “많은 책임감을 느끼지만, 최대한 즐기고도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수연은 내달 5일 금호아트홀 신년음악회를 시작으로 ‘화음(畵音): 그림과 음악’을 주제로 한 다섯 차례의 공연을 연다. 시각적이고 직관적인 그림의 요소들을 음악에 접목해 ‘스케치’(1월 5일), ‘블렌딩’(4월 27일), ‘명암’(8월 31일), ‘필리아(Philia): 모차르트’(9월 7일), ‘콜라주 파티’(12월 7일) 등의 무대를 선보인다. 바흐, 모차르트, 쇼팽 등 다양한 작곡가들의 곡으로 구성된 세 번의 솔로 리사이틀과 테너 김세일과 함께하는 가곡 이중주, 다넬 콰르텟과의 피아노 오중주까지 다채로운 편성의 무대를 기획했다.
“음악은 소리로 만들어지기에 다른 예술처럼 보거나 읽을 수 없죠. 하지만 음악을 들으면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누군가는 석양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가족과의 행복한 시간을 떠올리죠. 이런 것들을 ‘눈에 선하다’는 말로 표현하는 데서 이번 공연의 콘셉트를 떠올렸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연주하면서 청중과 교감하고 싶었어요.”
5번의 공연 가운데 ‘필리아: 모차르트’는 미술과 관련된 콘셉트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데, 모차르트에 대한 김수연의 애정을 담았다. 내년 스타인웨이 앤드 선즈 레이블을 통해 발표하는 데뷔 앨범에 실리는 곡들이 이번에 연주될 예정이다.
“‘필리아’는 다른 사람을 나와 동등하게 대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뜻입니다. 모차르트와 그의 음악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모차르트는 제겐 애증의 작곡가입니다. 잘츠부르크에서 공부하다 보니 어느 작곡가보다 모차르트를 많이 접할 수밖에 없었는데, 결과적으로 모차르트의 음악이 자연스럽게 제게 스며든 것 같아요.”
열아홉 살 때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나 해외에서 주로 연주 활동을 해온 만큼 김수연에게 국내에서 상주음악가 공연은 의미가 크다. 그는 “그동안 국내 무대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서 한국 관객과 자주 만나게 돼 기쁘다. 5번의 공연을 통해 한국 관객과 더 많이 교감하고 싶다”면서 “상주음악가로 결정된 이후 단순히 연주곡목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음악적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하는 과정을 가졌다. 레퍼토리 확대 외에 연주자로서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수연은 몬트리올 콩쿠르 우승을 계기로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본격적인 도약에 나선 상황이다. 그런 그의 몬트리올 콩쿠르 우승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몬트리올 콩쿠르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일정이 겹쳤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온라인으로 열린 덕분에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빈에서 몬트리올 콩쿠르의 첫 라운드 녹음을 마치고 벨기에로 건너간 그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참여하면서 몬트리올 콩쿠르 파이널 라운드 곡을 브뤼셀에서 녹음하는 등 강행군을 해야만 했다.
“원래 두 콩쿠르 가운데 하나만 나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스승이신 파벨 길리로프 모차르테움 국립음대 교수님께서 ‘둘 다 할 수 있다’며 격려해 주셨어요. 앞으로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살려면 더 심한 스케줄도 소화해야 하는 만큼 미리 경험하는 게 좋다고 말이죠. 당시 저 외에도 두 콩쿠르에 참가한 사람들이 꽤 있었고, 몬트리올 콩쿠르도 그런 참가자들을 배려해 주셨어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준결선 연주를 마치고 발표만 남은 상황에서 몬트리올 콩쿠르 우승 소식을 들었는데, 정말 기쁘고 홀가분한 마음이었습니다.”
젊은 연주자들의 콩쿠르 출전은 수상을 통한 활동 기회 획득이 목적이다. 몬트리올 콩쿠르는 우승자에게 다양한 연주 기회 외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하는 편이다. 김수연 역시 2022-2023 시즌 독일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 하노버 NDR, 뒤셀도르프에서 데뷔 리사이틀과 더불어 스타인웨이 앤드 선즈 레이블을 통해 첫 앨범을 발표할 기회를 얻었다. 그래서 김수연은 더 이상 콩쿠르에 참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는 “(그동안) 콩쿠르를 통해 많이 성장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 콩쿠르에 나가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후 자유로움과 음악적 풍요로움을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앞으로 김수연의 꿈은 연주자로 활발하게 활동하며 관객들의 사랑을 돌려주는 것이다. “음악가인 것이 너무 감사하다”는 그는 “음악을 하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했을 소중한 인연들이 많다. 특히 내 음악을 사랑해 주시는 청중에 감사하다. 청중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드릴 수 있는 ‘좋은 사람’이고 싶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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