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치 낙하산’ 눈치보랴… 금융권 수장들 좌불안석

김진욱 2022. 12. 31.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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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바뀔 때마다 요직 꿰차
당국 “전혀 없다” 선 그었지만
연임 포기 공개적으로 압박줘
일부 ‘알아서 기는’ 행태 늘어


금융권에서 관치 인사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NH농협금융지주에 이어 IBK기업은행, 우리금융지주까지 줄줄이 낙하산 인사설이 돌고 있다. 과거 정권 때마다 반복됐던 ‘모피아’(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가 금융권 인사를 장악하는 현상이 윤석열정부에서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 당국이 띄운 관치 논란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낙하산 인사의 신호탄으로 여겨지는 것은 지난 12일에 있었던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의 차기 NH농협금융 회장 내정이다. 농협금융은 이날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를 열어 손병환 현 회장 후임으로 이 전 실장을 단독 추천했다. 이 전 실장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제26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해 금융위원회 상임위원과 기획재정부 제2차관 등을 역임한 정통 금융관료다. 윤석열 대선 후보 캠프에 몸담았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특별고문을 맡았다.

금융권에서는 당초 손 회장의 연임 가능성을 크게 봤다. 손 회장이 1962년생으로 경쟁 금융지주 회장보다 젊은 데다 이전의 여러 농협금융 회장 임기가 2년 재직 후 1년을 더 맡는 ‘2+1년’이었기 때문이다. 농협금융이 올해 3분기까지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점도 손 회장의 연임 관측에 힘을 보탰다.

농협금융 임추위의 예상 밖 인선 소식이 전해지자 금융권에서는 농협중앙회가 정권 줄 대기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왔다. 현재 국회에서는 농업협동조합법을 고쳐 농협중앙회장 연임을 가능케 하자는 논의가 진행 중인데 지원사격을 위해 정부에 끈이 닿는 ‘실세’인 이 전 실장을 차기 농협금융 회장으로 선임했다는 해석이다.

금융 당국 수장은 “관치는 없다”면서 선을 그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 전 실장의 차기 농협금융 회장 내정이 유력하다는 세평이 나돌던 지난 7일 “농협금융 관련 의사 결정은 농협중앙회에서 한다. 저희(금감원)가 어떤 의견을 낸다든지 반시장적인 방법으로 (관치 인사를 시도)한 것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 전 실장의 차기 농협금융 회장 내정 이후인 지난 21일에는 “농협중앙회 결정인데 ‘겉보기에 안 좋으니 그러지 말라’는 것이 오히려 관치”라고도 말했다.

IBK기업은행도 낙하산 인사설로 시끄러운 금융사 중 하나다. 차기 행장으로 거론되는 인물은 정은보 전 금감원장. 정 전 원장도 이 전 실장처럼 행시(제28회) 출신으로 재정경제부(현 기재부) 사무처장과 기재부 차관보, 금융위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정 전 원장과 함께 IBK 행장 후보군으로 꼽히는 이찬우 전 금감원 수석부원장, 도규상 전 금융위 부위원장도 모두 금융관료 출신이다.

손태승 회장이 이끄는 우리금융도 관치 논란의 중심에 있다. 금융 당국 수장들이 연이어 내려오라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20일 “라임자산운용 펀드 환매 중단 사태는 판매한 금융사 최고경영자(CEO)에게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결론을 금융 당국이 내린 문제”라면서 손 회장의 연임 포기를 직접적으로 압박했다. 같은 날 이 원장도 “(손 회장이 연임할 수 없도록 중징계한 것은) 여러 번 심도 있는 논의 끝에 만장일치로 내린 결론”이라며 김 위원장을 거들었다. 이 원장은 최근 자진사퇴해 3연임을 포기한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에 대해서는 “연임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거꾸로 후배에게 기회를 주는 것을 보며 리더로서 개인적으로 존경스럽다”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뿌리 깊은 관치 낙하산

관치 인사의 역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기재부가 재정경제원이던 1990년대에도 이미 금융관료 사이에서는 ‘3·3·3’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다. 국장 등 고위직을 지낸 뒤 산하 공기업이나 금융사 두 곳에서 3년짜리 수장직을 맡고 개인 처세에 따라 연임이나 이직을 해 금융인 생명을 3년간 더 연장하는 관행을 일컬었던 말이다.

이명박정부 때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고려대, 소망교회 등 인맥으로 엮인 인사가 금융권에 뿌리를 내리는 일이 횡행했다. 당시 금융권 ‘4대 천왕’이라고 불린 강만수 전 KDB산업은행 회장과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 회장이 대표적이다. 당시 산은과 KB금융, 하나금융, 우리금융을 묶어 ‘MB금융지주’라고 부르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였다.

박근혜정부에는 ‘서금회’가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모교인 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의 이름이다. 홍기택 전 산은 회장을 필두로 이덕훈 전 수출입은행장,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 홍성국 전 미래에셋대우(현 미래에셋증권) 대표 등이 금융권 요직을 꿰찼다.

문재인정부에서는 문재인 전 대통령 고향인 부산 출신 금융 인사 모임 ‘부금회’가 위세를 떨쳤다. 금융권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다 금융사 수장으로 깜짝 발탁되는 사례가 반복됐다. 부금회 구성원으로는 김지완 전 BNK금융지주 회장과 정지원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 김태영 전 전국은행연합회장, 이동빈 전 Sh수협은행장 등이 있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국 금융권의 역사는 곧 관치의 역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라면서 “최근 금융 당국이나 정치권이 금융권에 노골적인 낙하산을 내려보내는 사례는 다소 줄어든 모양새지만 이번 농협금융 사례처럼 금융사가 ‘알아서 기는’ 형태의 결과론적인 관치 인사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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