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인간의 고백 “내 삶이 탄소배출이었어”

박상은 2022. 12. 31.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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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청년들 기후위기 고민 ‘웹툰’으로


‘에어컨이나 난방 없이 못 살게 되면 어떡하지?’ ‘마스크를 평생 써야 한다면?’ 웹툰 ‘기후위기인간’은 평범한 시민의 평범하지 않은 걱정에서 시작된다. 주인공 ‘구희’는 미래의 자신을 걱정하다 밤잠까지 설친다. 점점 더워지는 날씨, 기후위기가 불안의 근원이다.

구희는 과학자도, 환경 운동가도 아니지만 지구를 위해 달라지기로 결심한다. 불편하다고 외면하는 대신 문제의 원인을 들여다보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그러나 기후위기에 맞서기는 상상 이상으로 어려웠다. 개별적으로 무분별한 소비문화와 육류 위주의 식습관을 바꿔야 했고, 나아가 에너지 산업의 대전환이 필요했다.

“알고 보니 내 삶 자체가 탄소배출”이었음을 깨달은 구희는 동시에 기후위기라는 담론 앞에 무력한 자신을 발견한다. “인류의 존망이니, 에너지 전환이니 하는 것은 나에게 너무 버거운 이야기다. 나는 너무나도 작아.”

구희의 고백은 소셜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진 ‘기후위기 세대’가 공감을 쏟아냈다. 무기력증에 빠진 구희가 어두운 터널을 지나 다시 ‘나를 위한 작은 실천’을 하기로 마음을 정하는 장면에는 “위로받았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구희는 “기후위기 앞에서 늘 좌절하지만, 그것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자신과 독자들을 다독였다.

‘기후위기인간’은 지난해 6월부터 한 포털사이트의 아마추어 작가 플랫폼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연재됐다. 입소문을 타면서 내년에 단행본 출간을 앞두고 있다. 최근 국민일보와 만난 구지민(30) 작가는 구희가 곧 자신이라고 했다. 권력이 없는 시민, 그러나 기후위기가 걱정되는 청년을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레 자신을 투영한 캐릭터를 만들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 정도로 큰 관심을 받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며 “반응을 바라고 시작한 일이 아니라 마음속에 갇혀 있던 답답함을 밖으로 내보내야겠다는 욕망이 더 컸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완결된 ‘기후위기인간’ 1·2부는 플라스틱 오염 문제에서 시작해 다량의 탄소를 배출하는 공장식 축산업, 화력발전 등 에너지 산업의 문제까지 광범위한 환경 이슈를 다룬다. 그러나 이야기의 큰 축은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갈등과 고민이라고 한다. 구희는 문제를 알면서도 쉽게 생활습관을 바꾸지 못하는 모순된 자신을 돌아보고, 나의 실천이 과연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던지며 나름의 답을 찾아간다.

일상에 밀접한 플라스틱에서 에너지 산업까지, 탄소배출 영향이 큰 분야로 뻗어가는 구성 역시 구 작가가 환경 문제를 공부하면서 시야가 확장되는 과정을 반영했다. 구 작가는 “기후위기 문제를 파고들면서 머리를 친 순간들이 몇 번 있다”며 “특히 기후위기의 가장 큰 원인인 에너지 이슈를 공부하면서 우리는 더 풍족하게 살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쓰고 있고, 종국에는 이 문제가 인간의 욕망과 연결돼 있다는 걸 알았다. 이 주제를 꼭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작품을 그리게 된 계기는.

웹툰 ‘기후위기인간’의 구지민 작가가 지난 22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결정적 계기는 코로나19 사태였던 것 같다. 일상이 무너졌고, 이상기후 현상도 극심했다. 저의 장래도 불안하고 불투명한데 지구의 미래마저 보이지 않으니까 실제로 몸이 아프고 우울했다. ‘원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했고, 표면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깊은 주제라는 걸 알게 됐다. 저 자신이 깨닫고 배운 것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기후위기인간이라는 제목은 ‘기후위기에 처한 인간’이기도 하고 ‘기후위기를 만든 인간’이라는 의미도 있다.”

-작업하며 가장 염두에 둔 부분은.

“사람들을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하면서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가 병들었다고 얘기하고, 그것을 인정하게 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많이 고민했다. 결국 아주 개인적인 부분에서 공감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과도하게 가르치는 어조가 되지 않으려고도 노력했다. 넘쳐나는 쓰레기를 보고 마음이 불편했던 경험은 거의 다 느끼지 않았을까.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선 환경 문제를 자신의 삶에 연결하고,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끌어와야 한다. 저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통계나 자료를 제시할 때에도 최대한 검증되고 대표성이 있는 자료를 선정한다.”

-기억에 남는 댓글이나 피드백이 있나.

“이런 작품을 그려줘서 고맙다는 댓글이 많았다. 저 역시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서 만화를 시작한 것인데 그렇게 말해주셔서 오히려 감사함을 느낀다. 특히 우울하고 무기력한 모습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공감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무기력증 극복을 위해 중요한 점은.

“사실 무기력증은 한 번이 아니라 때때로 찾아온다. 완벽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중요한 건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고, ‘꾸준함’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원동력은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자신과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설사 모순이 있더라도 자신을 너무 괴롭히지 않았으면 한다. 다시 다짐하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기후위기인간 3부는 어떤 내용인가.

“시민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다뤄보고 싶다. 정보가 아니라 인간의 모순이나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깊게 다루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저도 공부가 많이 필요해서 잠시 휴식기를 갖고 있다.”

-궁극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우리는 지금 정말 행복한가?’를 묻고 싶었다. 만화를 그리는 내내 붙잡고 있던 메시지다. 이런 만화를 읽는 것도 결국에는 더 잘 살기 위함이니 ‘좀 더 새로운 방식으로 잘 살기 위해서 우리 삶을 한번 되돌아보자’, 그런 제안을 하고 싶었다. 기후위기가 우리와 뗄 수 없는 문제라는 걸 계속해서 인식하고 일상에서도 그 감각을 잊지 않길 바란다. 이 문제에 대해 같이 이야기하고 질문하고 고민하며 바꿔 갔으면 좋겠다.”

세종=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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