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속 ‘빚 탕감’ 복음이 일어난 주문도엔 오늘도 영혼의 우물이 솟는다

주문도(인천,우성규 2022. 12. 3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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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저무는 강화 주문도에서
새해 새 삶을 열어갈 새 힘을 얻다
인천 강화군 주문도의 서도중앙교회 한옥예배당 전경. 뒤쪽에서 한옥예배당을 바라보면 주문도의 넓은 뜰과 바다로 나아가는 방주처럼 보인다. 서도중앙교회 제공


인천 강화도의 서쪽 끝, 선수항에서 하루 세 번 주문도행 배가 다닌다. 오전 10시30분 선수항을 출발한 배가 석모도 남단을 지나 계속해서 서쪽으로 30분쯤 물살을 헤치고 난 후, 주문도 살꾸지 선착장에 도착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 송년의 낙조를 보기에 더없이 좋은 섬이 주문도다. 눈 덮인 해변 모래사장을 지나 섬의 중앙 언덕으로 올라가면 멋스러운 한옥예배당이 나타난다. 섬마을 100년을 지켜온 인천시 강화군 주문도 서도중앙교회(박형복 목사) 한옥예배당이다.


이달 초 이덕주 감리교신학대 은퇴교수와 함께 배를 타고 주문도 서도중앙교회를 방문했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장을 역임한 이 교수는 ‘눈물의 섬 강화 이야기’(대한기독교서회)를 비롯해 전국의 기독교 문화유산을 답사하고 이를 11권의 책으로 저술한 바 있다. 1993년 ‘강화 기독교 100년사’ 집필 때부터 시작해 오늘날까지 수백 번 강화도를 찾은 이 교수는 “강화는 수줍은 섬 처녀처럼 모든 걸 한꺼번에 보여주지 않았다”면서 “올 때마다 새로운 것을 꺼내 보여준다”고 회고했다. “한국교회사(史)는 발로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늘 현장에 충실할 것을 이야기하는 이 교수가 주문도행 배 안에서 사과를 깎아 나누며 섬의 신앙 내력을 들려줬다.

“나귀 턱뼈 모양의 이 작고 아름다운 섬에 복음이 들어온 것은 1893년입니다. 만선의 기쁨 속에 흥청망청하던 파시(波市) 한복판에서 윤정일 전도사가 ‘회개하시오, 천국이 가까웠습니다’라고 외쳤고, 뱃일하던 김근영을 전도했습니다. 옛날 섬에는 해상 방어진이 있어 진촌(鎭村)이라고 불렀습니다. 서도중앙교회의 옛 이름도 진촌교회입니다. 진촌의 유력 양반 집안인 박씨 문중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했는데, 박두병 박순병 형제의 빚 탕감 이야기가 전도의 촉매제가 됩니다. 용서에 관한 마태복음 18장 속 예수님의 비유, 1만 달란트 빚진 종과 100데나리온 빚진 사람의 이야기가 거꾸로 재현된 것입니다.”

한옥예배당 정문으로 2층 종탑 형태로 지었다. 서도중앙교회 제공


주문도의 박두병 박순병 형제는 1917년 음력 정월 초에 강화도 홍의교회 출신 종순일 목사와 함께 부친의 엄청난 빚을 물려받은 이를 만난다. 당시 돈으로 2000여원, 오늘날 가치로 1억원에 해당하는 빚을 진 이 아들은 ‘부친의 빚을 갚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 8년간 16원밖에 모으지 못했다’며 ‘이대로는 평생 갚아도 어려우니 어쩌면 좋으냐’고 눈물을 흘렸다. 20년 전 강화도 본도에서 자기에게 돈을 빌려 간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모아 ‘빚 문서’를 불태우고 복음을 전한 종 목사는 그 자리에서 박씨 형제에게 마태복음 18장 21절 이하 말씀을 들려준다. 당시 상황을 전한 ‘기독신보’ 1917년 5월 12일자 ‘박씨의 신앙과 애휼심’ 기사는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박(두병)씨가 마암으로 쾌히 허락하야 이천여원을 밧지 아니하겠다 하매 이 아오 순병씨도 밧을 것 잇는 육십여원을 탕감하며 내 형님은 수천원도 탕감하엿거던 하물며 몃 푼 아니되는 내 것을 받겟느냐 하고 밧지 아니하기를 성언하매 채무자의 깃버함은 물론이어니와 좌중의 여러 교우들의 깃버하며 찬성함은 과연 한 입으로 다 말하기 어려웠더라.”

주문도에서 복음의 핵심에 관한 ‘용서’ 이야기가 말씀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재현되자 주민 대부분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역사가 일어난다. 1910년대 자료를 보면 주문도 전체 가구 181호 가운데 136호가 교회에 등록했다. 주민 75%가 교인인 이 비율은 100여년이 지난 오늘날도 그대로다. 섬의 중심에 교회가 있고 복음이 있다. 술집과 다방과 노래방은 없고 100년을 지켜온 한옥예배당이 있다.

지난 1일 한옥예배당 100주년 기념사업위 발족예배를 드리던 성도들. 주문도=우성규 기자


지난 1일 한옥예배당에선 ‘1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발족 예배’가 열렸다. 찬송가 208장 ‘내 주의 나라와/ 주 계신 성전과/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와 찬송가 210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 그의 영광 한없다/ 허락하신 말씀대로/ 주가 친히 세웠다/ 반석 위에 세운 교회/ 흔들 자가 누구랴/ 모든 원수 에워싸도/ 아무 근심 없도다’ 찬양이 울려 퍼졌다. 박형복 서도중앙교회 목사의 집례로 김윤희 장로가 대표로 기도했다. “130년 전 이 섬에 복음을 전하게 하신 주님, 믿음의 선조들이 건축한 100년 예배당을 우리 후손들이 아름답게 기억하고 지켜나가게 하소서.”

한옥예배당은 1923년 정면 5칸, 측면 7칸, 도합 35칸이 되는 전통 한옥 양식의 외관으로 건축됐다. 예배당 정면에 대문 대신 멋스러운 2층 누각 형태의 종탑을 보유하고 있다. 내부는 서양의 바실리카 형식으로 초대교회를 상징하는 12개의 목제 기둥이 펼쳐져 있다. 강대상은 궁궐에서 보던 임금의 용상을 본떠 높이가 높은 형태다. 강화도의 성공회 강화성당, 온수리성당과 견줘 손색없고 무엇보다 오늘날에도 새벽기도회가 열리는 ‘현역’ 건물이다. 지금도 새벽기도회 30분 전 예배당 옆 철제 종탑에서 새벽종을 친다. 주일엔 예배 1시간 전 초종, 30분 전엔 재종이 울린다. 서도중앙교회를 담임하는 박 목사의 말이다.

12개의 목조 기둥으로 구성된 바실리카 양식의 내부 모습. 서도중앙교회 제공


“시계가 없던 시절, 들에서 일하던 성도들은 초종 소리를 듣고 일손을 멈춥니다. 집으로 돌아가 손을 씻고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재종이 울리면 교회로 향합니다. 그렇게 모여서 100년 넘게 예배를 드렸던 겁니다. 30년 전 처음 부임했을 때 초종 소리를 듣고 섬의 각지에서 교회로 한꺼번에 경운기를 타고 몰려오시던 성도님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예배당에서 만난 용영자(69·여) 권사는 1975년 경기도 파주 친정에서 이 섬으로 시집을 왔다고 했다. 결혼식 장소는 지금의 한옥예배당, 웨딩드레스 대신 하얀 한복에 면사포를 쓰고 결혼 예배를 드렸다. 용 권사는 “그때는 우리가 살던 집들이 작아서 35칸 한옥예배당이 아주 크고 웅장해 보였다”고 웃었다. 떡을 나누던 주변 권사들 역시 이 한옥예배당에서 결혼했다며 추억을 떠올렸다.

박 목사는 성도들과 함께 주문도를 기도의 섬으로 가꾸려 한다. 청정지역, 오염되지 않은 자연환경 속에서 지치고 피폐한 사람들이 다시 영혼의 우물물을 만날 수 있도록 도우려 한다. 5월이면 해변에 해당화가 지천으로 피어 12㎞가 넘는 섬 둘레 해안 길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쉼을 얻고 믿음을 회복하기 위해 방문하는 섬마을 100년 예배당, 이를 더 자세히 알리기 위해 예배당 100년 역사를 소개하는 책을 준비하기 위한 위원회를 발족한 것이다. 서도중앙교회를 첫 부임지로 거쳐 간 정희수 미국 연합감리교회(UMC) 감독을 비롯해 육지에 나가 있는 수십 명의 목사 사모 장로들이 대거 위원회에 포함될 예정이다.

오후 4시15분 주문도 선착장에서 동쪽 강화도 선수항으로 나가는 배에 오른다. 이 배를 놓치면 다음 날 아침까지 어김없이 하루를 섬에 머물러야 한다. 과거 지금보다 해상교통이 열악하던 시절, 강화도 인근 주문도 아차도 볼음도를 배로 다니며 사경회를 이끌던 목회자들은 “주문도에서 ‘아차’ 하면 ‘보름’ 걸린다”고 농담했다. 폭풍우를 만나 풍랑이 거세거나 바다에 안개가 짙게 끼면 지금도 배가 결항된다. 서해의 장엄한 일몰을 보며 2023년 새로운 100년 예배당의 역사를 써 내려갈 ‘보물섬’ 주문도에 손을 흔들어 본다.

주문도(인천 강화)=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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