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잘나가던 DJ, 그에게 다시 마이크 건넨 특별한 방송국 [월간 옥이네]
[월간 옥이네]
▲ 옥천FM <사랑 실은 멜로디> 진행자 김철씨 |
ⓒ 월간 옥이네 |
[사랑 실은 멜로디] 잘하고 싶다는 마음 앞에 나이란 벽은 없습니다
1970~1980년대 대한민국 라디오의 전성기를 이끌던 '디스크자키(DJ)'가 충북 옥천에 돌아왔다. 50대부터 90대까지 취향을 저격하는 올드팝과 중저음의 듣기 좋은 목소리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사랑 실은 멜로디> 진행자 김철씨가 그 주인공이다.
"50년 전, 부산에서 아나운서 활동을 하면서 라디오와의 인연이 시작됐지요. 텔레비전이 별로 없던 그 시절에는 뭐니 뭐니 해도 라디오 인기가 최고였으니 그야말로 라디오 전성시대에 활동했던 셈입니다. 내 성격이 꽤 자유로운 편인데 아나운서는 지켜야 할 규율이 많아 나와 잘 맞지 않았어요. 아나운서를 그만둔 이후에는 건재상을 운영하면서 부산 일대에 디스크자키로 이름을 알렸지요."
음악을 좋아했던 그는 좋은 목소리를 특기 삼아 부산 서면 일대 규모 있는 음악 주점과 음악다방 골든 타임(저녁 7시~9시)에 만석을 이끄는 인기 DJ로 활약했다. 디스크자키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아본 적은 없지만, 자신의 목소리로 다른 사람의 사연을 읽어주고 그에 맞는 노래를 선곡하는 일이 잘 맞는 옷처럼 자연스럽고도 즐거웠다고 회상한다.
우연히 들른 군서면 서화천 경관에 반해 군서면 금산리에 집을 짓고 살아온 지 약 20년. 디스크자키로 이름을 떨친 지 5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2021년까지, 지난 청춘의 반짝임은 어느덧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옥천FM 개국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수없이 많은 인생의 다리들을 건너오며, 오래전 디스크자키로 활동했다는 걸 잊고 살 때가 많았지요. 그런데 어느 날 <옥천신문>에 실린 옥천FM 개국 소식이 눈에 들어온 거예요. '개 눈에는 똥밖에 안 보인다'는 말 있지요? 그 시절을 까맣게 지운 듯 살아온 긴 세월도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의 설렘은 지우지 못했더라고요."
그렇게 옥천FM 개국 당시 옥천 공연예술문화 단체 '예울림'의 김용주 회장과 함께 <골든뮤직>을 공동 진행하다가 올해 2월부터 <사랑 실은 멜로디>를 단독으로 진행하게 됐다.
방송 대본을 직접 손으로 작성해온다는 그가 대본 쓰는 일보다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 바로 선곡이다. 사연과 동떨어지거나, 사연자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지 못하는 선곡은 낭비라는 것이 베테랑 디스크자키 김철씨의 생각.
"주로 젊은이들이 이끌어가는 방송 사이에서 저에게 주어진 역할을 고민합니다. 주로 이 시대의 어버이들을 청취 층으로 생각해요. 자기 몸 바쳐 자식을 기르고 우리 사회를 일으켜온 세대이면서도 여전히 팍팍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깨를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방송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지요. 음악만이 주는 위로, 라디오만이 품은 따뜻함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음악 프로그램이지만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와 삶의 위로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그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지금 사회에 꼭 필요한 위로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한다.
"<옥천신문>을 보다가 라디오에 소개할만한 따뜻한 사연이 있으면 적어둡니다. 어찌 보면 이게 무슨 자랑이냐 싶은 이야기겠지만, 누군가의 노고를 알아주는 이야기들이요. 누구누구 자녀가 대학에 진학했다는 소식이나 봉사 활동, 누가 어디에 기부했다는 이야기, 이태원 참사에서 사람을 구하기 위한 노고. 여기에 더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노래는 세대를 가리지 않지요. 저는 음악이 주는 메시지가 살기 좋은 사회를 이루는 데 보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철 씨는 옥천FM이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지는 매체인 만큼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이 느끼는 이 보람과 깨달음을 더 많은 이들, 특히 자신과 비슷한 연령층과 공유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 이것이 바로 그가 방송을 진행하는 원동력이다.
"<사랑 실은 멜로디>를 진행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내가 이런 멋진 동네에 와서 다시 라디오 진행자로 인생 황혼에 의미 있는 추억을 쌓는구나. 젊은 사람들과 경쟁도 해보고 합도 맞춰보고 이런 경험을 다 해보는구나. 앞으로도 욕심을 가지고 완성도 있는 방송을 만들 겁니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 앞에는 나이라는 벽은 소용없습니다."
▲ 옥천FM <가오리와 순자> 진행자 이윤지·송가온씨 |
ⓒ 월간 옥이네 |
가오리 : "아쿠아리움에 갇혀 사는 건 너무 힘들어. 누가 나를 좀 바다에 데려다줬으면 좋겠어.
답답한 아쿠아리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가오리는 힘들고 지루한 생활이 계속됐어요. 그런 가오리는 다시 바다로 돌아가고 싶어 했어요.
윤자 : 이 가오리가 어디가 아픈겨? 왜이렇게 기력이 없어. 괜찮아, 가오리야?
가오리 : 나 좀 여기서 꺼내줄 수 있어? 난 우리 바닷속 가족들이 너무 그리워. 얼마 전 여기에 아쿠아리움 직원 채용 공고가 떴어. 나 좀 도와줘. 아쿠아리움 직원 채용 조건을 보면 가오리와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은 가산점이 붙어. 근데 그런 사람은 몹시 드물어. 네가 이 아쿠아리움의 직원이 되어서 나를 좀 꺼내 줘.
<가오리와 윤자>는 특별하다. 라디오 역사상 동물권을 다룬 최초의 청소년 라디오 드라마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방송 초반 약 10분간 두 진행자는 직접 쓴 드라마 형식의 대본을 낭독한다. 이 이야기는 모두 우리 지역 청소년이자 프로그램 진행자 이윤지, 송가온씨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내용이다.
"<가오리와 윤자>는 동물권을 주제로 한 라디오 프로그램이에요. 물고기를 보고 싶어서 찾아간 인간 윤자는 가오리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발견하게 돼요. 그런 윤자를 알아본 가오리는 자신을 가족이 있는 바다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부탁하죠." (이윤지씨)
약 10여 분 이어지는 드라마가 지루하지 않도록 인간 윤자는 우리에게 친숙한 옥천말을 구사한다. 인간이 가오리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낯선 세계관에 쉽게 접근하고, 청취자들이 친숙함을 느낄 수 있도록 설정한 내용이다.
"저희가 영화 <니모를 찾아서>를 좋아하다 보니 물고기에 관심이 생겼고, 물고기들이 아쿠아리움 안에서 답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가온이는 이름 때문에 별명이 가오리인데 이걸 접목해서 가오리를 아쿠아리움에서 꺼내서 바다로 보내주는 이야기를 만들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지요. 과연 가오리는 인간 윤자의 도움을 받아 바다로 돌아가게 될까요? 방송을 통해서 들어주세요." (이윤지씨)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은 비교적 이른 나이부터 기후위기에 대한 압박을 느끼고 동물권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윤지씨의 말. 방송을 듣는 청취자들과 흥미로운 방식으로 해결법을 논의하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프로그램이 탄생했다.
10화를 마지막으로 방송을 마친 <가오리와 윤자> 이야기에 이어 이윤지, 송가온씨는 곧 방송될 두 번째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 1월 방송될 두 번째 이야기는 환경오염과 기후위기를 주제로 한 <온지구와 윤행성>이라는 프로그램이다.
"환경오염과 기후위기가 심각해지자 지구인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요. '지구를 떠나 깨끗한 환경인 윤행성으로 가자'는 사람들과 '지구를 다시 되살리자'는 사람들이에요. 하지만 지구인들이 윤행성으로 가려고 하자 윤행성 사람들은 '우리 행성도 곧 지구처럼 위험해질 수 있겠다'는 위기의식을 느끼죠.
그래서 지구를 살리려는 사람들과 윤행성 사람들이 위기를 맞이한 지구를 살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이야기하는 이야기를 준비했어요. 청소년이 말하는 지구를 살리는 이야기가 기대된다면 꼭 들어주세요." (이윤지씨)
월간옥이네 통권 66호(2022년 12월호)
글·사진 서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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