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지자체장의 독단적 의지로 없애는 것이 맞나"

박장식 2022. 12. 3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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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빈사 위기 놓인 평창국제평화영화제 김형석 프로그래머

[박장식 기자]

 평창국제평화영화제의 상시 상영관으로 개장한 어울마당은 다시 침묵 속에 빠져들 위기에 처했다.
ⓒ 박장식
 
올해를 끝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영화제가 있다.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안정적으로 커왔던, 하지만 다섯 번째 팡파르를 기약하기 어려워진 영화제인 평창국제평화영화제 이야기다. 평창국제평화영화제는 강원도가 내년 예산 지원 중단을 선언하면서 내년 여름을 기약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유산 사업으로 처음 시작한 이 영화제는 인구 6천여 명의 대관령면에 인구수 두 배가 넘는 1만 3천여 명의 관람객을 끌어올 정도로 성장했다. 특히 상영관도 하나 없었던 대관령면이라는 지역적 불리함, 두 번째 행사부터 코로나19가 창궐했던 상황적 불리함도 이겨내고 거둔 기록이기에 의미가 컸다.

평창을 대표하는 단어가 '올림픽'에서 '영화제'로 바뀌고 싶은 마음으로 영화제를 키워 왔던 내부 구성원에게는 가혹했던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예산 지원 중단 선언. 지난 10월 만났던 김형석 프로그래머는 "영화제가 사라지는 것은 그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이 줄어드는 것"이라며 강원도의 처사를 비판했다.

"영화제 없어진다고 하반기 사업 중단할 수도 있었지만..."

평창국제평화영화제(이하 PIPFF)의 사무국은 김진태 현 강원도지사의 예산 집행 중단 결정에도 올해 사업을 그대로 이어갔다. 그렇게 하반기 사업 중 가장 컸던 작은 영화관에서의 상영회, 그리고 춘천 춘천지속가능발전 협의회와의 협업 행사인 '차근차근 상영전' 역시 9월에 진행되었다.

김형석 프로그래머에게 이유를 물었다. 김 프로그래머는 "영화제가 없어져서 어렵다고 해도 이해했겠지만, 그건 우리의 방법이 아니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어려운 상황에도 예정된 행사를 이어가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그 지역의 평화 아카데미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작은 영화관과도 약속한 것이니 말이다"라고 설명했다.

당장 작은 영화관에서의 행사나 지역과 밀착한 상영전 등이 영화제가 영화제 기간 바깥의 시간에서 드러낼 수 있는 영화제만의 가치라고 김 프로그래머는 설명했다. "영화제를 치르는 사람들의 기획력으로, 아주 적은 예산만으로도 지역의 시민사회와 영화제 주최가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이다.
 
 지난 5월 열린 평창국제평화영화제 개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김형석 프로그래머.
ⓒ 박장식
 
"철원 뚜루 작은영화관에서 안재훈 감독의 <무녀도>를 상영했을 때 지역 관람객들의 리액션이나 반응을 보면서도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당장 관객들의 질문 수준이 꽤나 높았다. 지방에서도 좋은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를 경험함으로서 삶의 문화적 경험을 높일 수 있는데, 그런 기회는 영화제 만한 것이 없다는 점을 실감했어요.

영화제는 한 주만 하고 끝나는 행사가 아닙니다. 상영회도 하고, 교육 사업도 하고, 지역에서 다른 행사나 프로그램을 할 수도 있어요. 어쩌면 영화제 본행사보다 더욱 중요하고, 지속적인 사업입니다. 하지만 그런 행사를 더 치를 수도 없다는 점에서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느꼈어요."

김형석 프로그래머는 영화제 지원 중단이 확정되더라도, 영화제의 핵심 사업이었던 지역 영화 상영, 그리고 교육 사업들이 유지되기를 바란다. 김 프로그래머는 "이런 행사가 돈이 많이 드는 행사가 아니"라면서, "작은영화관에서 상영을 할 때마다 이걸 지역에서 기획해주십사 부탁을 드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라고 털어놨다.

(관련 기사: 영화제 위기라고 해도... 강원도에 '예술영화' 씨 뿌렸다http://omn.kr/20x1u)

"스폰서십 확대도 예정되어 있었는데..."

김형석 프로그래머는 평창국제평화영화제 부집행위원장 직을 병행하고 있어, 영화제 내의 살림 역시 도맡고 있다. 그런 그가 전한 인터뷰 당시의 영화제 사무국 분위기는 '차분한 상태'였다.

김 프로그래머는 "정리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중"이라며, "사무실도 12월까지 계약이라 물리적으로도 정리할 것이 많고, 영화제 이후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도와가며 정산 작업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도에서 지원받는 금액이 연간 18억 정도였는데, 그 중 정산에서 문제가 생긴 금액이 10만 몇 만 원 정도에 불과할 정도였습니다. 담당하는 주무관들 역시 놀라곤 했고요. '평화 영화제'를 내걸어놓고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특히 수당 시스템이나 추가근무 보상까지 신경을 썼어요."

아쉬움을 드러내는 김형석 프로그래머에게 2023년 행사에 대한 구상이 있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그는 "내년에는 환경을 주제로 해 보고 싶었다"며 입을 열었다.

"환경 관련 프로그램을 영화제 안에서 하고, 그를 통해 외연을 확장하려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특히 몇몇 기업에서는 현금 스폰서를 추가로 약속하기도 했고요. 기존 스폰서에게도 지난 4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스폰서십 확대를 요청하려고 했고, 이를 통해 영화제가 자립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어요. 

영화인을 발굴하는 '피칭 프로젝트'도 확장하고 싶었고, 영화 제작을 지원하는 사업도 규모를 늘리고 싶었습니다. 특히 내년에는 해외 게스트도 더 많이 모셔오려고 했고요, 특히 지역에 맞는 공연이나, 대관령의 지역색을 살려서 '요들 콘테스트' 같은 것도 부대행사로 한 번쯤 열어보려고 했습니다."

특히 평화라는 기치를 여는 국제영화제로서는 손에 꼽을 만한 규모였던 만큼 직접 만드는 콘텐츠도 기획했었다. 김 프로그래머는 "강원도가 유일한 분단 도라는 특성을 고려한 프로젝트, 그중에서도 영화제 차원에서 DMZ와 같은 지역에 대한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것도 고민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형석 프로그래머는 "그런 기획들이 지금 시점에서는 안타깝게 되었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자체에서 올림픽 유산 사업으로 인식했는지도 모르겠다"
  
 평창국제평화영화제는 올림픽 이후 횡계에 많은 사람들이 몰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정기 행사이기도 했다.
ⓒ 박장식
 
원래대로라면 도지사의 입으로 없어질 영화제도 아니었다. 평창국제평화영화제의 임무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레거시, 즉 유산 사업으로써의 역할이었다. 올림픽으로 말미암아 휴전을 했던, 평화라는 중요한 정신을 따르는 것은 모든 올림픽 개최국의 임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은 그런 개최국의 임무를 4년 만에 저버린 것이다.

김형석 프로그래머는 "지자체에서 올림픽 레거시 사업으로 인식했는지도 궁금하다"며 의문을 드러냈다. "우리는 올림픽 유산 사업이란 점을 이어가려고 노력하고 고민했다. 하지만 우리의 노력을 지자체에서는 이것을 인정하고 인식한 것이 맞는지, 그런 레거시를 얼마나 지역에서 염두에 뒀는지 싶은 마음이다"라며 말했다.

"굳이 극장도 없는 대관령에서 열었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요.. 다른 영화제에서 찾을 수 없는 평화를 테마로 삼은 것도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요. 올림픽으로 말미암아진 정신적 가치를 계승해서 꾸준히 환기하고 발전해 나가는 것인데, 하다못해 지역 주민 분들도 인식하는 것을 지자체에서는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영화제를 시작할 때 갖춰져있는 것이 너무나도 없었어요. 하물며 대관령에는 극장마저도 없습니다. 그럴 수록 오히려 성과를 잘 내야 한다는 고민도 컸습니다. 영화제라고 해서 영화만 틀고 상만 주기보다는,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합쳐서 지역에 잘 스며들고, 특성을 살리는 메세지를 던지는 것도 너무나도 중요했고요."

그래서 영화제 예산 지원이 중단된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안타까웠던 것이 있었단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 사업에 선정되어서 대관령면 읍내에 만들어진 복합문화공간 '어울마당', 다시 말해 '상시 상영관'이 쓸 길을 잃었다는 점이었다. 

김 프로그래머는 "지역에 가서 '어울마당에 연 3천만 원의 예산만 확보하면 한달에 한 번씩은 알펜시아 시네마가 사라진 대관령면 일대 주민들을 위해 영화상영을 할 수 있다. 만일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영화제를 한다면 제가 혼자서 도와드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했을 정도였다"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물론 공간도 안타깝지만, 사람 한 마디에 여러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지역에서도 소중한 축제 하나를 잃는... 일이 옳지는 않죠. 영화제를 지자체장의 독단적인 의지로 없애는 것이 맞나? 하는 의문만 들어요. 그래놓고 다시 필요할 때 이런 행사가 생기면 어떻게 해요. 영화제만큼 지속적인 개최가 필요한 사업이 없는데 말이에요."

김 프로그래머는 "그래서 사실 영화제를 하면서도 매년 '우리가 내년에 이걸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공존했다"며, "지속성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는 문화 행사는 지자체장이 마음대로 없애지 못하게 하는 법안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씁쓸한 듯 말했다.

"영화를 출품할 플랫폼을 닫아놓고 '문화 지원'이라니..."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영화제 예산 지원 중단을 두고 "타당성 없는 보조금을 없앤다"면서 지원을 중단한 데 이어, 영화계의 비판이 나오자 "영화제를 하지 말라고 한 적 없다. 영화제가 자생하려는 노력을 해야 되지 않았냐"며 말하기도 했다. 그 말에 대한 김형석 프로그래머의 답도 듣고 싶었다.

김형석 프로그래머는 "영화제는 애초에 돈을 버는 행사가 아니다"라며, "3대 영화제로 불리는 유명 영화제들도 지자체 재원이 들어간다. 영화제는 문화적인 파급력을 얻기 위한 행사이기 때문"이라며 반박했다.

"영화제를 객단가로 따지면 안 되죠. 객단가로만 따지면 지역축제마저도 하면 안 됩니다. 지역축제 역시 대다수가 적자인데 반해 문화적 파급력을 얻기 위해 하는 행사잖아요. 영화제는 '플랫폼 사업'입니다. '플랫폼'을 만들어 지역민들을 위한 문화 사업을 열고, 지역을 소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죠.

당장 평창에서 영화제를 하면서 평창에 평생 온 적이 없는 사람들이 우리 영화제를 매개로 지역을 찾고, '보광리조트만, 용평리조트만 갔는데 여기 너무 좋다'고 하는 반응을 얻는 역할도 해왔습니다. 결국 대관령 지역 사람들의 삶의 질이 이 축제를 통해 높아지는 효과를 얻었던 것이에요."
 
 평창국제평화영화제의 아이덴디티였던 '감자창고 상영관', 상영관이 없던 곳에서 영화를 틀어야 했던 이들의 악전고투가 담긴 장소이기도 하다.
ⓒ 박장식
 
그런 김 프로그래머는 "84억이라는 금액만 강조가 된 면이 있는데, 그 돈이 영화만 틀기 위해 쏟은 돈도 아니었다"라면서, "지역에서 여러 문화 행사도 하고, 영화관이 없는 지역에 영화관을 만들고, 결과적으로는 상시 상영관까지 만든 데 쓰인 비용이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강원도가 '영화제 소요 예산으로 청년예술인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영화제는 플랫폼이다. 영화인이 영화를 상영하고, 예술인이 공연을 하는 플랫폼이다. 그런데, 우리와 강릉국제영화제가 사라졌다"면서, "그래놓고서 청년 창작자를 지원한다고 하면, 어디서 그 영화를 틀고 공연을 할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우리 영화제는 그런 영화들을 4년 내내 틀어왔어요. 강원영상위원회와 같이 '시네마틱 강원'이라는 섹션도 열어서 지역 영화인들에게 영화제를 경험하게 해줬습니다. 그래서 영화인 뿐만 아니라 지역 어르신들도, 청소년들도 여기에 직접 만든 영화를 출품해 상영하곤 했습니다. 그 플랫폼이 닫아놓고 '지원을 한다'는 말을 하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영화제가 없어진다? 지역과 문화의 다양성이 사라진다는 것"

올해 많은 풍파를 거치면서 김형석 프로그래머는 "4년 동안의 것이 너무나도 아깝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앞으로는 지자체 지원의 영화제에서 1회 때부터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않으면 향후 생존이 쉽지 않을 것 같다"면서, "강원도의 영화제 두 개가 쓰러져버린 분위기가 기존의 영화제에도 확산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모습도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수많은 지자체에서 영화제를 축소시키거나, 데미지를 주려는 여러가지 상황들이 언제든 생길 수 있다"면서, "영화제를 지켜내는 것은 정말 쉽지 않지만, 지역민들이 그 영화제가 이야기하는 지역과 얼마나 진실되게 밀접되어 있는가, 얼마나 지역민들의 마음을 사는가가 생존에 중요해지지 않을까 싶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김 프로그래머는 "영화제가 없어진다는 것은 다시 말해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이 줄어든다는 이야기"라면서, "결과적으로 보면 영화제들이 지녔던 특성들이 없어진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제의 '종 다양성'이 줄어드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당장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제 지원 축소와 관련된 간담회를 열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경과 보고를 하곤 했는데, 이 경과보고가 너무나도 어려웠어요. 그래도 이를 통해 영화제들이 더욱 탄탄해지길 바란다는 생각을 했고요. 

더 이상 영화제는 영화제로만 보면 안 됩니다. 영화제는 지역을 위한 플랫폼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해요. 프로그래머, 집행위원장과 같은 직책을 떠나서 '우리가 문화기획자'라는 생각을 가져야 지자체도 함부로 터치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형석 프로그래머는 끝으로 "올해 평창, 강릉과 같은 강원도에서 있었던 영화제가 겪었던 일이 다른 영화제들이 튼튼한 시스템을 위한 백신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더욱 다른 영화제들이 탄탄해졌으면 한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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