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트가 제2의 반도체? 반도체만큼 지원하나" K드라마 제작진의 하소연
“과연 지금 정부의 콘텐트 정책이 기존 반도체나 신재생에너지, 바이오 헬스케어와 같은 산업에 비해 충분한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묻고 싶습니다.”(박철수 필름몬스터 대표)
지난 27일 경기도 파주 CJ ENM 스튜디오센터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제6차 방송영상산업 진흥 중장기계획’을 발표한 직후 콘텐트 업계 주역들과 나눈 간담회 자리에서 나온 발언이다. 이날 문체부는 방송영상 산업 관계자 30여명을 불러 모은 가운데 향후 5년 동안 업계 발전을 뒷받침할 정부의 4대 추진 전략 및 12대 핵심 과제를 발표했다.
계획을 발표한 전병극 문체부 제1차관은 “K콘텐트는 수출 업계에서 ‘제2의 반도체’라는 평판을 얻고 있다. 향후 5년 동안 방송영상 콘텐트가 우리 수출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전략을 마련했다”고 했지만, 제작자들은 현장에서 느낀 어려움을 털어놓으며 정책의 세밀한 보완과 실행을 당부했다.
“K콘텐트=제2의 반도체”란 문체부에 “반도체 만큼 지원하나”
가장 많은 언급이 나온 대목은 제작비 세액 공제 등 세제 혜택 관련 부분이었다. 올해 전세계 넷플릭스 비영어 시리즈 가운데 누적 시청 시간 1위(공개 후 28일 동안)를 기록한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을 만든 제작사 필름몬스터의 박철수 대표는 “콘텐트 산업의 파급 효과가 높아지면서 국가 인지도 제고에 크게 기여했지만, 세제 혜택 등의 지원은 다른 산업이나 해외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도 충분치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원을 호소했다.
이같은 지적은 콘텐트를 공급하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측에서도 나왔다. 양지을 티빙 대표는 “티빙이 국내에서는 대기업이라 해도 글로벌 업체들과 비교하면 그 자본이 사실 별 거 아닐 수도 있는 경쟁 환경”이라며 “콘텐트 투자에 세액공제 등의 지원을 (문체부가) 해주고 있지만, 절대적인 수준을 외국 업체 수준으로 늘려서 국내 업체들이 손해 보지 않는, 공정한 환경을 조성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벤처 회사에 투자하는 경우에는 세액 공제 혜택이 있지만, 콘텐트에 투자했을 땐 특별한 혜택이 없는 상태”라며 “이 부분도 들여다보고 지원해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오징어 게임’의 사례로 공론화된 거대 플랫폼의 ‘지적재산권(IP) 독식’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올 하반기 최대 흥행 드라마 JTBC ‘재벌집 막내아들’을 만든 제작사 래몽래인의 김동래 대표는 “10여년 전부터 끊임없이 IP를 가지려고 노력했지만 성공한 드라마가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 크게 성공해서 보람이 있었다”는 말로 입을 뗀 뒤, “드라마는 제작사가 IP를 갖는 게 굉장히 쉽지 않은 구조다. 이런 구조를 정책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 밖에도 콘텐트 제작 기술의 수출 지원 및 종사자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발언도 많았다. 컴퓨터그래픽(CG)·시각특수효과(VFX) 등의 첨단 기술을 보유한 비브스튜디오스 김세규 대표는 “우리가 문체부와 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버추얼 프로덕션, 버추얼 휴먼 기술을 개발했는데, 이런 기술을 해외, 특히 (사우디아라비아가 추진 중인) ‘네옴시티 프로젝트’에 수출하고 싶었지만, 문체부 내에는 통로를 찾을 수가 없었다”고 호소했다.
김태용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장은 “제작 현장에서는 ‘사람이 없어서 콘텐트를 못 만든다’고 할 정도로 인력난이 심하다. 그 이유는 아직도 이 현장에서는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일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이 산업에 진출하는 모든 이들에게 기본적으로 보장되는 하한선이 있어야 업계의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문체부, 5년 뒤 방송영상 매출 22.8조→29.8조로
이같은 현장 목소리를 청취한 전병극 차관은 “방송영상 콘텐트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내년 예산도 대폭 증가시켰다”며 “오늘 나온 세금 및 저작권 문제, 인력 양성과 현장 스태프 문제 등을 모두 체크하고, 내실 있게 반영되도록 정책을 펴겠다”고 답했다.
이날 문체부가 발표한 ‘제6차 방송영상산업 진흥 중장기계획’에는 OTT 특화 콘텐트 제작 지원 사업비를 내년 454억원까지 확대하고, 미디어 환경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도록 하는 ‘OTT 영상물 자체등급분류제도’를 도입하는 등의 규제 혁신 방안이 포함됐다. 영상콘텐트 제작비 세액공제 대상을 OTT 콘텐트까지 확대하고, 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등의 프로덕션 연구개발 비용에 대한 세액공제도 확대하는 등 세제 혜택 관련 방안도 폭넓게 담겼다.
이 밖의 추진 과제들을 통해 문체부는 지난해 22조8000억원이던 방송영상 산업 매출을 2027년 29조8000억원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아울러 수출액은 지난해 6억9000만 달러에서 5년 후 11억4000만 달러까지, 매출액 100억원 이상 제작사의 비중은 9.7%에서 20.5%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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