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년은 왜 버스를 운전하고 싶었을까

최원훈 2022. 12. 30. 17: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소년범죄 현장 보고서 5] 소년분류심사원 증설이 필요한 이유

[최원훈 기자]

 서울소년분류심사원
ⓒ 최원훈
 
수 년 전 이맘때였다. 퇴근길 버스 안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한 중학생이 시내버스를 훔쳐서 질주했다는 뉴스였다. 14세 소년이, 키가 꽂힌 채 공영차고지에 주차된 버스를 운전해서 30km 떨어진 곳까지 갔다가 붙잡혔다.

기자가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소년에게 범행한 이유를 물어보았다. 

"친구들이 저 잘할 수 있을 거라고 해서... 또 자랑하고 싶어서..."

소년은 절도로 이미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수감됐다가 출소했었다는 멘트로 뉴스는 마무리되었다. 소년부 재판에서 보호처분 중 소년원 처분을 받고, 소년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했다는 말이다.

뉴스를 들으면서 몇 달 전, 소년분류심사원에서 만났던 한 소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진'(가명, 남, 14세)이었다. 진은 또래에 비해 얼굴이 무척 앳되고 체구가 왜소했다. 동그랗고 큰 눈, 통통한 볼 살 때문에 초등학생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눌한 말투와 천진난만한 표정 때문에 더 그랬다.

당시 나는 소년분류심사원 신입반 담임이었다.

소년분류심사원은 소년부 판사가 사건을 조사·심리하는 데에 필요한 소년의 신병을 보호하는 '수용기관'인 동시에, 비행원인을 규명하고 재비행을 예측하는 '진단기관'이다. 인성교육, 보호자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교육기관'의 역할도 하고 있다.

소년의 비행성 개선 및 재비행 예방, 건전한 성장 발달 도모를 목적으로 하는 중요한 기관이지만, 대한민국에는 1개 기관 밖에 없다. 지난 기사에서 언급했듯이 2005년, 구조조정으로 6개의 소년분류심사원과 3개의 소년원이 폐지됐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소년범죄 종합대책이 포퓰리즘? 실상은 이렇습니다 http://omn.kr/224p3 ).

소년범, 그들의 삶에도 주목해야

초등학교 때부터 소년분류심사원을 드나들었던 진의 조사서와 분류심사서를 읽어보았다. 진의 어머니는 진이 아기 때 집을 나갔고, 아버지는 진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외할머니가 진을 키웠는데, 함께 살던 진의 사촌형이 전과자였다. 진은 어릴 때부터 사촌형을 따라다니며 물건을 훔쳤다. 그게 나쁜 짓인 줄도 모를 나이였다. 낳아준 어머니는 재혼해서 아기도 낳고 가정을 꾸렸는데, 진의 집에서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진을 만나러 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진은 어린 나이에 지적장애와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

진은 특수절도로 7호 처분(병원이나 의료재활소년원 위탁)을 받고 소년원에서 퇴원한 뒤 버스 사건을 저지른 것이었다. 뉴스의 초점은 겨우 중학생이 대중 교통수단인 버스라는 거대한 차량을 운전한 비범함에 맞춰졌다.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으나 신기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소년에 대한 차별적 낙인을 강화하는 '엄벌' 요구도 뒤따랐다.

뉴스가 나가고 한 달 후, 소년분류심사원 신입반 상담실에서 진은 나와 다시 만났다. 버스를 훔친 날에 대해 물었다. 진은 평소 주변의 비행친구들에게 버스를 운전하겠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도 했다. PC방에서 레이싱 게임을 열심히 했다.

사건 당일 새벽에 친구 2명과 함께 차고지로 갔는데, 막상 친구들은 버스를 훔친다는 사실이 무섭고 두려워서 요금함에 있던 동전만 털어서 집으로 갔다고 했다. 하지만 진은 포기할 수 없었다. 자신의 인생에서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버스를 운전하면 빨리 어른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원래는 버스를 운전해서 친구들을 태우고 롯데월드로 갈 계획이었다. 혼자서라도 가기 위해 운전대를 잡았다. 얼마 못 가서 접촉사고를 냈다. 다시 2번째 버스에 올라탔다. 길을 못 찾아서 롯데월드는 못 가고 30km 정도 갔다. 다행히 사고는 없었고 진은 차를 버리고 도주했다.

7호 소년원에서 퇴원한 뒤 버스 사고를 칠 때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물었다. 

"집으로 돌아갔는데, 사촌형은 교도소에 갔대요. 외할머니는 아파서 집에만 있었어요. 이제 형도 없으니까 나쁜 짓 안 하고 착하게 살려고 생각했어요."

"동네 찜질방에 가서 일을 시켜달라고 졸랐어요. 그래서 세탁한 찜질복하고 수건을 정리하고 날랐어요."

용돈 정도를 받으면서 끼니도 해결할 수 있었다. 자신도 정직하게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어느 가을날 저녁, 찜질방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데, 언덕길에서 찹쌀떡 장수 아저씨가 내려오고 있었다. 

"찹쌀~떡! 메밀~묵!"
"방개~떡!"

찹쌀떡 파는 아저씨의 구슬프면서도 왠지 신나는 목소리가 너무 좋았다. 진은 아저씨를 따라다니면서 찹쌀떡, 메밀묵을 함께 외쳤다. 그날부터 진은 찹쌀떡 아저씨가 오시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늦가을의 어두운 골목을 걷는 진과 아저씨의 머리 위에서 둥근달이 길을 비춰주었다.

"친구들 탓이에요. 우리 애는 참 착한데, 친구들이 버스 운전해보라고 부추겨서 그래요..."

진을 면회하러 온 외할머니는 진이 예전에 위탁됐을 때와 똑같은 말을 했다. 진은 그래도 나가고 싶어 했다. 소년원 처분이 아닌 보호관찰 처분을 받고 싶어 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상점을 받기 위해 생활지도실 앞 복도 청소를 하겠다며 빗자루를 들고 나와서 쓸었다.

호실에서는 항상 유치원생들이 좋아하는 TV 프로를 집중해서 보았다. 잘못한 건 없었지만, 다른 소년들의 괴롭힘을 방지하기 위해 근신실 작은 방에서 혼자 생활했다.

인원 파악을 위한 저녁 점호가 끝나고 진은 자리에 누웠다. 외할머니 생각에 눈물이 났다. 창문의 쇠창살 사이에 보름달이 걸려 있었다. 달무리가 지면서 찹쌀떡 아저씨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눈물이 나는데, 웃음도 나왔다. 진은 구슬프면서 신나는 목소리로 외쳤다.

"찹쌀~떡! 메밀~묵!"

촉법소년 나이보다 중요한 것
 
 소년분류심사원의 생활관
ⓒ 최원훈
 
촉법소년 연령 하향 논란에 대한 언론과 여론, 각계 전문가들의 관심과 논란의 초점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촉법소년 범죄가 얼마나 증가했나, 촉법소년 범죄가 더 흉포해졌나, 소년범죄 관련 통계는 정확한가, 촉법소년 연령 하향이 소년범죄 예방에 효과적인가...

진은 6~7살 정도의 지적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으나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은 적은 없다. 가정과 학교에서 버림받고, 사회에서 소외된 위기청소년이다. 진의 나이가 13살이든, 14살이든, 그 숫자가 중요할까? 진과 같은 아이는 10년 전, 20년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진에 대한 사회의 관심과 책임의식이다.

하지만 언론에 보도된 반성 기미 없는 일부 소년의 강력범죄, 그리고 그에 대한 혐오 때문에 엄벌만을 주장하며 소년들에 대한 낙인을 강화하는 사람들에게는 소년범과 범죄의 이면, 그들의 삶은 사각지대로 남을 수밖에 없다.

소년분류심사원 증설의 필요성

지역발전과 교육 및 주거환경을 해친다는 이유로 소년원·소년분류심사원이 지역사회에 들어오는 것을 결사반대하는 집단 이기주의는 소년에게 1인당 0.78평의 공간만을 허용하고 있다.

진이라는 소년은, 수많은 진들은 100명 중의 1명, 200명 중의 1명이 아닌, 개별적 처우와 맞춤형 교육 및 상담이 필요한 교육의 주체다. 하지만 소년의 비행성을 개선하고 재비행을 예방하며 건전한 성장을 돕는 소년분류심사원이 우리나라에는 1개밖에 없다. 서울과 수도권의 소년들이 한 곳에 모이게 되니, 공범들의 분리조차 쉽지 않다. 다른 지역은 소년원이 그 기능을 수행하고 있어서 본연의 임무를 다 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소년법의 목적은 소년의 건전한 성장을 돕는 것이므로 소년은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거듭나기 위한 '의무'를 다해야 하고, 국가는 이들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

대한민국도 가입한 유엔(UN) 아동권리협약에 따르면, 모든 아동은 사회적 신분과 관계없이 생존과 발달을 위해 다양한 보호와 지원을 받아야 하고, 교육을 받을 권리와 건강하게 자랄 권리가 있다.

시간이 지나고 촉법소년, 소년범의 흉포한 범죄가 언론에 떠들썩하게 보도되면, 또다시 같은 논란이 되풀이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년법과 보호처분, 소년분류심사원과 소년원의 존재 이유는 진과 같은 위기청소년을 치료·교육·보호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관련 법무부 보호직 공무원들은 의무와 책임을 다할 것이다.

소년범의 재사회화와 재범률 감소를 위해 소년분류심사원과 소년원 확충은 반드시 필요하다. 언론과 방송, 법무부 홈페이지 등을 통해 법무부가 마련한 '소년범죄 종합대책'에 관한 정보를 상세하게 접할 수 있다. 국민들의 관심과 냉철한 판단에서 비롯된 공감과 지지를 바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