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미술계 결산]1兆 미술시장, 지금은 ‘조정기’

김희윤 2022. 12. 30.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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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 낙찰 총액, 전년대비 62%감소
해외 시장, 금융위기 속 대규모 컬렉션 경매로 최고 매출
뛰어난 기획과 작품 나와야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어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에 루이스 부르주아의 '그레이 파운틴'(아래), 조지 콘도의 '레드 포트레이트 컴포지션'(위)이 전시돼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김희윤 기자] "안전장치 없이 급브레이크를 밟은 상황" 코로나19 기간 가파르게 상승한 미술시장이 올해 중반부터 침체를 보인다. 지난 7월을 기점으로 호황이 종결됐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실제로 지표가 되는 경매시장의 올 3분기 낙찰 총액은 약 366억7000만원에 불과하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2% 감소했다. 최근 3년간 분기별 기록 가운데 가장 낮다. 업계는 조정기에 진입했다고 진단한다.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의 ‘2022년 3분기 미술시장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올 3분기에 국내 경매시장은 여덟 번 열렸다. 평균 낙찰률은 65.87%에 그쳤다. 올 상반기 평균 낙찰률 81%보다 15% 이상 떨어졌다.

하락세는 지난 5월 경매부터 감지됐다. 박서보, 이우환 등 이른바 ‘블루칩’작가들의 억대 작품이 줄줄이 유찰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세계 각국의 긴축정책, 미국 연방 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면서 금융시장이 큰 충격을 받았고, 그 여파가 고스란히 미술시장으로 이어졌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국내 미술시장 호황 끝…낙관적 접근에 대한 위험 신호

냉기는 지난달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도 가시지 않았다. 나오기만 하면 낙찰되던 하종현, 윤형근 등 대형 작가의 대작들이 줄줄이 유찰됐다. 2년 만에 재개된 행사에도 낙찰률은 65%에 머물렀고, 출품작 여든네 점 가운데 쉰 점만 새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같은 기간 유례없는 활황을 맞은 해외 경매시장과 대조적이다. 지난 10월 13일 열린 크리스티 런던 경매는 금융시장 불안의 악조건 속에서도 총매출 7000만 달러(약 950억 원)를 기록했다. 출품된 마흔네 점이 모두 낙찰됐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9% 많다. 580만 달러(약 80억 원) 이상 금액에 낙찰된 작품만 세 점으로, 총 매출의 절반 이상(55.3%)을 차지했다.

세계적인 아트페어 아트바젤과 글로벌 금융 그룹 UBS가 지난 3월 발표한 ‘아트마켓 2022’ 보고서에 따르면 미술품을 포함한 세계 예술 시장은 2020년 503억 달러(약 64조2300억 원)로, 2019년 같은 기간보다 21.9% 축소됐다. 지난해에는 651억 달러(약 83조1300억 원)로 29.4% 반등했다. 소더비, 크리스티와 같은 글로벌 경매기업들의 선전 덕이다. 불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비결은 다양하고 안정적인 포트폴리오 네트워크 확보. 고가의 희귀한 작품을 출품하고 여기에 몰리는 수요로 높은 매출을 기록해 금융시장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다.

공식은 지난 11월 크리스티가 개최한 폴 앨런 컬렉션 자선경매에서도 유효했다.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 창업한 폴 앨런(1953-2018)은 메가 컬렉터로 널리 알려졌다. 유명세에 힘입어 경매는 시작 전부터 총액이 10억 달러(약 1조 2700억 원)로 점쳐졌다. 5월에 나온 미국 부동산 재벌 해리 매클로 부부의 컬렉션이 9억2200만 달러(약 1조1700억 원)로 최고 거래액을 기록해 기대감까지 고조됐다.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지난 11월 크리스티가 개최한 폴 앨런 컬렉션 자선경매 현장. 사진 = 크리스티 홈페이지

‘폴 앨런 컬렉션’ 1조4000억원…경매 사상 최고가 기록

총 예순 점이 출품된 폴 앨런 컬렉션은 총액 15억 달러(약 1조 9100억 원)에 낙찰됐다. 단일 경매 사상 최고 기록으로, 한국 미술시장 거래량의 두 배 가까운 규모다. 최고가로 낙찰된 작품은 프랑스 점묘파 화가 조르주 쇠라의 ‘모델들, 군상.’ 무려 1억4940만 달러(약 1900억 원)에 팔렸다. 폴 세잔의 ‘생트빅투아르산(1억3800만 달러)’, 반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 옆 과수원(1억1720만 달러)’, 구스타프 클림트의 ‘자작나무 숲(1억500만 달러)’ 등 1억 달러를 호가하는 작품만 다섯 점 나왔다. 그 덕에 작가 스물일곱 명이 자신의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미술사에 이름을 남긴 명작들의 출품은 역사적으로도 경제 불황이나 금융시장 침체와는 무관하게 미술시장의 역량을 방증했다. 국내 미술시장도 전기를 마련하며 시장 확대에 나섰다. 지난 7월 예술경영센터는 상반기 미술시장 규모가 5329억원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화랑미술제를 필두로 한 6개 아트페어 상반기 매출만 1429억원으로, 지난해 아트페어 전체 매출(1543억원)에 육박하며 성장을 이끌었다. 센터는 올해 미술시장 규모가 사상 최초로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분석했다.

지난 9월 국내를 대표하는 아트페어인 ‘키아프(Kiaf)’와 세계 3대 아트페어 가운데 하나인 영국 ‘프리즈(Frieze)’의 공동 개최도 전기마련에 힘을 보탰다. 전자는 주목도에서 후자에 밀렸다. 하지만 한국을 찾은 글로벌 컬렉터들 앞에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며 낙수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미술 시장의 체급을 더 키워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김동현 한국화랑협회 전시사업팀장은 "키아프와 프리즈의 공동 개최를 통해 해외 마켓에서도 서울을 관심 있게 보기 시작했다"라며 "새로운 기회를 장기적 관점에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키아프는 앞으로 4년간 프리즈와 함께 열린다. 우리 작가들의 작품이 세계적인 작품들과 함께 전시되는 것이다. 관람객과 컬렉터들의 안목은 함께 성장할 수 있다. 각 갤러리가 ‘선택과 집중’이란 기치 하에 기획력과 작가 경쟁력을 키우고 더 좋은 콘텐츠를 선보여야 할 때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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