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떠난 펠레, 왜 축구 역사상 최고 선수인가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펠레는 떠나는 순간까지 '축구 황제'였다. 그리고 이 입지는 축구라는 종목이 지금 모습을 유지하는 한 영원할 가능성이 높다.
펠레가 30일(한국시간) 향년 82세로 별세했다.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 병원에서 대장암 투병 끝에 가족들 곁에서 눈을 감았다. 펠레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임종을 알리는 글이 올라왔다.
펠레는 늘 아르헨티나의 디에고 마라도나(2020년 작고)와 더불어 가장 위대한 두 선수로 꼽혀 왔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승한 리오넬 메시까지 축구사의 세 별이라는 것이 중론으로 굳어지는 중이었다. 혹자에 따라서는 메시가 마라도나뿐 아니라 펠레까지 넘었다는 주장도 한다. 프로 무대에서 거둔 성과와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력으로는 메시가 더 뛰어나 보이는 면도 있다. 특히 펠레는 브라질의 산투스에서 경력 대부분인 19년을 보냈는데 브라질 1부 우승이 6회, '남미의 챔피언스리그'인 코파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이 2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펠레가 영원히 남을 상징성을 갖게 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월드컵 역사상 최고 선수라는 점이다. 펠레는 유일하게 월드컵에서 3회 우승한 선수다. 선수 전성기가 많이 길어진 요즘에는 5회 월드컵에 참가하는 선수가 여럿 등장할 수 있게 됐지만 과거에는 12년에 걸친 4회가 한계였다. 그 중 3회 우승을 달성한 선수는 펠레 한 명뿐이다. 2회 우승 선수조차 22명에 불과하고, 2002년 카푸와 호나우두가 이 리스트에 마지막으로 추가된 뒤 20년 동안 그대로다.
조연으로서 세 번 우승한 게 아니라, 그 중 두 번은 이론의 여지없는 주연이자 월드컵 역사에 남을 특별한 활약을 했다는 점도 특별하다. 1958년 스웨덴 대회 당시 만 17세 펠레는 세계무대에 역대 가장 충격적으로 등장한 유망주였다. 부상을 안고 참가했기 때문에 조별리그는 3차전 출장에 그쳤지만, 진정한 무대는 8강부터 시작되는 토너먼트였다. 펠레는 8강에서 선제결승골, 4강에서 5-2 대승을 이끄는 해트트릭, 결승전에서도 5-2 대승을 이끄는 2골을 모두 기록했다. 골 숫자만 봐도 펠레가 토너먼트를 압도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대회에서 역사상 최연소 득점, 최연소 해트트릭, 최연소 결승전 득점을 모두 기록했다.
1962년 칠레 대회는 두 번째 경기 도중 부상으로 쓰러져 우승 과정에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 1966년 잉글랜드 대회는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이변의 희생양이 됐지만 역시 상대 수비수들의 거친 태클에 당해 2차전에 뛰지 못하는 등, 지금 축구와 차원이 다른 위협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다. 한때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을 정도로, 남미가 낳은 역대 최고 선수를 향한 유럽 수비수들의 부상 유발성 플레이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이를 감안한다면 1962년과 1966년은 각각 '동료 덕에 우승'과 '부진'이 아니라, 지금과 달랐던 부상 위협 속에서 겪은 고난으로도 볼 수 있다.
노장이 돼 돌아온 1970년 멕시코 대회는 펠레가 역대 최고의 팀을 이끄는 상징적 존재로 이미지를 굳힌 사건이었다. 이 대회에서 브라질은 현재까지도 활용하고 있는 그들식 공격 축구를 거의 완성하게 된다. 동시에 전세계적인 컬러 TV 보급과 월드컵 중계가 이뤄진 첫해였다. 그래서 전세계인이 더 생생하게, 더 빠르게 월드컵 활약을 볼 수 있었던 최초의 팀이 당시 브라질이었다. 이 대회에서 펠레는 팀내 최다골을 넣진 않았지만 공격 축구의 중심에서 득점과 찬스메이킹을 오가며 맹활약했다. 특히 결승전에서 수비축구의 대명사 이탈리아를 4-1로 대파한 건 역사상 최강팀으로 올라서는 마지막 한 계단이었고, 펠레는 이날 선제골을 넣었다.
펠레가 역대 최고인 두 번째 이유는 시대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 지금은 다양한 축구기술이 보편화됐지만, 펠레가 활약하던 시기만 해도 난생 처음 보는 기술을 월드컵에서만 접하던 시기였다.
당시 펠레는 발리슛, 양발 드리블, 발 뒤꿈치를 쓰는 페이팅, 공을 건드리는 척하다 흘리면서 돌파하는 기술, 오른쪽으로 공을 치고 왼쪽으로 돌아 뛰는 기술 등 등 그 어느 선수보다도 다양한 방식으로 수비수를 요리했다. 전세계 사람들에게 새로운 축구의 재미를 알려준 존재였다. 모든 기술을 펠레가 개발한 건 아니지만, 빠르게 흡수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개량해 세계 최고 무대에서 활용할 수 있는 선수는 펠레뿐이었다.
이런 기술이 단순한 쇼맨십이나 비효율적인 플레이에 그치지도 않았다. 1958년 월드컵 결승전에서는 공을 톡 띄워 수비를 속인 뒤 '셀프 발리슛'으로 마무리하는 멋진 동작으로 골을 넣기도 했다. 요즘도 브라질 선수들은 유독 공을 띄우면서 수비를 속이는 걸 좋아하는데, 그 모든 동작이 펠레에 대한 오마주나 다름없다. 페널티킥을 차기 전 멈칫하면서 골키퍼의 타이밍을 빼앗는 것 역시 펠레가 원조고, 네이마르를 비롯한 브라질 후배들은 원래 누구 기술이었는지 잘 알고 있다. 브라질 축구를 상징하는 말 '아름다운 축구(조가 보니토)'는 원래 펠레의 플레이를 지칭할 때 쓰던 표현이다.
이처럼 당시 존재하던 모든 기술을 다 구사할 수 있었다는 건 그만큼 펠레가 완성도 높은 선수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력 면에서도 펠레가 역사상 최고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중요한 근거는 오른발과 왼발과 머리, 드리블과 패스와 슛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든 플레이를 다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술사적으로도 펠레는 의미가 있다. 펠레는 동료 스트라이커와 함께 투톱으로 뛰면서 2선 플레이에도 폭넓게 관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공격의 모든 위치를 소화할 수 있는 선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위치는 공격수도 미드필더도 아닌 곳이라는 걸 보여줬고, 그의 번호 10번은 이 플레이를 상징하는 번호가 됐다.
사진= 브라질 축구협회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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