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관이 명관'의 좋은 예, 전현무와 이경규가 전한 메시지

이준목 2022. 12. 30.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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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목 기자]

▲ 전현무, 진선미의 진 전현무 방송인이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MBC에서 열린 <2022 MBC 방송연예대상> 포토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2022년 지상파 방송 3사의 연예대상은 '구관이 명관'임을 다시 한번 증명하며 막을 내렸다. 12월 2일 방송된 '2022 MBC 방송연예대상'에서는 전현무가 <나 혼자 산다>와 <전지적 참견시점>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앞서 열린 SBS 연예대상에서는 유재석이 <런닝맨>, KBS에서는 신동엽이 <불후의 명곡>으로 각각 대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신동엽은 KBS에서만 10년 주기로 역대 최다인 3번째 수상의 기쁨을 누렸다. 심지어 유재석은 방송 3사를 통틀어 무려 19번째 수상을 차지하며 역대 방송인 중 최다 대상 수상자의 타이틀을 굳건하게 지켰다. 전현무 역시 MBC에서 2017년에 이어 5년 만의 수상이다.

유재석, 신동엽, 전현무 세 사람 모두 현재 국내 방송가 최고의 탑 MC로 꼽히는 베테랑들이다. 또한 이들에게 올해 수상의 영광을 안긴 프로그램 역시 모두 방영 10여년을 훌쩍 넘기며 시청자들에게 너무나 친숙한 장수 프로그램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의 장기집권은 소수의 정상급 MC들과 장수예능을 대체할 대항마가 없는 지상파 방송사의 현실을 보여주는 결과이기도 하다.

이변과 감동을 느낄 만한 요소가 부족하다보니 자연히 시상식의 긴장감은 반감될 수밖에 없었다. 올해 방송 3사 모두 대상만이 아니라 각종 시상들이 대부분 '고인물 잔치'였다. SBS는 <미운 우리새끼> <런닝맨> <동상이몽> <골때리는 그녀들>, KBS는 <불후의 명곡> <사장님 귀는 당나귀귀> <슈퍼맨이 돌아왔다> <1박 2일>, MBC는 <나 혼자 산다> <전참시> <놀면뭐하니> 등 올해도 익숙한 몇몇 프로그램들이 상을 휩쓸었다. 대부분이 짧으면 2~3년, 길면 10년을 훌쩍 넘긴 고만고만한 프로그램들이 대다수이다보니. 라인업과 수상후보들도 지난해와 크게 달라진 게 없는 모양새가 반복됐다.

이러다보니 수상을 둘러싸고 웃지 못 할 해프닝이나 잡음이 속출하기도 했다. SBS는 유력한 대상 후보로 거론되던 지석진이 무관에 그치며 홀대 논란에 휩싸였다. 유재석은 대상 수상을 차지하고도 지석진의 눈치를 보며 민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웃지 못 할 장면이 연출됐다. 또한 신동엽은 KBS에서 대상을 수상하고 "올해 두드러진 활약을 못 한 나머지 대상 후보자들에게 감사하다. 모두 여러분 덕분"이라고 뼈있는 농담을 던지며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유재석과 신동엽의 안정된 진행능력은 변함이 없었지만, 올해 이들이 딱히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이들의 대상 수상은 마땅한 경쟁프로그램이나 후보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이미 수상 경력이 많은 데다 본인들 스스로도 올해는 수상을 기대할 만큼의 활약이 아니었다고 생각한 때문인지 수상 이후의 반응도 비교적 덤덤했다. 또한 SBS와 KBS는 올해도 자사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들을 위하여 이름도 낯선 각종 상을 신설하거나, 겹치기-퍼주기식 시상을 남발하며 비판을 받았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잡음이 적었던 것은 MBC였다. 2022년 '제8의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평가를 받는 <나 혼자 산다>의 부활을 견인한 '무지개 회장' 전현무의 대상이 일찌감치 유력하게 거론됐다. 경쟁 후보인 유재석을 비롯한 출연자들도 전현무의 수상을 암시하는 멘트를 초반부터 반복하며 결과를 짐작케했다. 이날 연예대상 MC를 겸했던 전현무는 수상을 의식한 듯,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향할 때마다 평소와 달리 진행에 집중하지 못 하고 긴장한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예상대로 전현무의 수상이 확정되자 객석과 시청자들의 반응 모두 '그럴 만했다'고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실제로 전현무는 2022년 한 해 동안 그야말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한 듯 독보적인 활약을 펼쳐나갔다. <나 혼자 산다> <전참시> <당나귀귀> <뜨거운 싱어즈> <히든싱어> 등 MBC 외에도 여러 채널을 넘나들며 맹활약을 펼쳤고 진행만이 아닌 다양한 장르와 분야에서 도전과 변신을 꾀하며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역시 현재 전현무의 대표작이라면 <나 혼자 산다>를 단연 첫 손에 꼽을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방송가에 관찰예능 열풍을 불러일으킨 원조로 꼽혔던 <나 혼자 산다>는 몇 년 전부터 극심한 슬럼프에 휩싸이며 고전했다. 개인 사정으로 한동안 잠정하차했다가 지난해 중반부터 프로그램의 구원투수로 복귀한 전현무는, 팜유라인(전현무, 박나래, 이장우)의 먹방, 코드 쿤스트와의 트민남(트렌드에 민감한 남자) 프로젝트 등 수많은 '부캐'와 '케미'를 탄생시키며 인기 중흥의 선봉장 역할을 담당했다.

전현무 개인으로서도 <나 혼자 산다> 복귀가 신의 한수였다. 지난해를 기점으로 관찰예능과 팀 버라이어티 장르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며 유재석 이후 가장 '올라운더'에 가까운 예능인으로 진화하는 데 <나혼자산다>에서의 활약상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전현무는 그간 MC로서 상대를 놀리는 공격적인 토크나 오버액션에 가까운 진행으로 누적된 비호감 이미지가 강했다면, <나 혼자 산다>를 통하여 스스로를 '샌드백'으로 낮추면서도 동료들을 살리면서 자연스러운 케미를 맞추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게 가장 큰 변화다.

전현무의 수상 소감 역시 올해의 대상 수상자 중 가장 감동적이었다. 전현무는 이날 모처럼 웃음기를 빼고 눈시울까지 글썽이며 진지한 수상소감으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놨다. "제게 <나 혼자 산다>는 단순한 예능 프로그램 이상의 의미가 있다. 저는 외아들로 자라 외롭게 컸고, 많은 추억이 없었다. 유일하게 추억과 웃음을 안겨준 게 티비 예능이었다. 거기서 이경규, 유재석, 김국진 형님들을 보며 꿈을 키웠다. 그들을 보며 나도 언젠가 TV 안에 들어가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아나운서가 됐고 프리랜서가 된 후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 전전했다"라고 과거를 회상했다.

이어 전현무는 "웃기고 싶은 욕심은 있었지만 욕심만 가득해 욕만 먹던 때가 있었다. 요새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하더라. 많은 예능인들이 공감하겠지만 악플에 시달려도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사람을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 선한 에너지, 긍정의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버텨왔다. 이런 부족한 날 받아준 곳이 MBC다. 올해는 프리랜서 선언을 한 지 10년이 됐는데, 능력이 출중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초심은 잃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도 늘 여전히 아저씨 같은 모습으로 여러분 옆에 머물고 싶다"라고 고백하며 소감을 마무리했다. 5년 전 첫 수상 때보다도 더 성숙하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전현무의 수상소감은, 지켜보는 이들을 숙연하게 했다.

한편으로 공로상을 수상한 이경규의 수상소감 역시 인상적이었다. MBC 공채 개그맨 1기 출신으로 현역 최장수 예능인인 이경규는 "이거 진짜 받기 힘든 상이다. 나는 정동 MBC 출신이다. 정동에서 여의도로, 여의도에서 일산으로, 그리고 상암까지 왔다. 내가 이 시간까지 있다는 것만으로도 공로상을 받아야 한다"라고 너스레를 떨며 방송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의 커리어를 돌아봤다.

여기서 이경규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덧붙였다. "많은 분들이 '박수 칠 때 떠나라'고 얘기하는데 정신 나간 소리다. 박수 칠 때 왜 떠나냐. 한 사람도 박수를 안 칠 때까지 활동하겠다"고 앞으로도 변함없는 활동 의지를 밝혔다.

사실 이경규야말로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의 대명사와도 같은 인물이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주류 예능에서 활약중인 인물은 이경규 외에는 찾기 힘들다. 그럼에도 여전히 방송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는 이경규의 고백은 다른 사람이었다면 노장의 욕심이나 집착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경규였기에' 오히려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자아냈다.

전현무의 수상 소감이 '꿈을 위하여 달려온 사람'이 주는 감동이었다면, 이경규의 어록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의 입장에서 들려주는 '살아남은 자의 교훈'이었다. 스스로 공로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이경규의 솔직함은 엄연한 팩트에 기반한 자부심이었다. 또한 그것은 거만한 자기자랑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롤모델로 지켜보며 따르는 후배들에게 전하는 '그래서 너희도 할 수 있다'란 무언의 격려 메시지이기도 했다.

베테랑들의 활약 덕분에 MBC는 시청률 면에서도 방송 3사 연예대상을 통틀어 판정승을 거뒀다. MBC 방송연예대상은 수도권 가구 시청률 1부 5.7%, 2부 5.8%를 기록했다. 채널 경쟁력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인 2049 시청률은 1부 2.4%, 2부 2.7%를 나타내며 지상파 연예대상 1위(2부 기준)를 차지했으며, 순간 최고 시청률은 전현무가 대상 수상자로 호명되는 순간으로 8.6%까지 치솟았다. 올해 3사 시상식 중 전체 1위다.

훌륭한 구관은 오히려 박수칠 때일수록 남아야 한다. 자칫 올해도 지루하고 맥빠진 시상식으로 마감할 수 있었던 연예대상을 그나마 살린 것은, 전현무와 이경규의 수상이었다. 어쩌면 지금도 현장을 누비고 있는 수많은 예능인들의 목표와 심경을 대변한 두 명 MC가 남긴 어록은, 감동과 볼거리가 부족했던 올해 3사 시상식을 통틀어 최고의 명장면으로 남을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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