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인 서사를 음의 움직임으로 들어봐주길"

이규승 2022. 12. 3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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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14회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 김영상 작곡가

[이규승 기자]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방을 없고 씨앗 한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도종환 '담쟁이'
 
오는 1월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제14회 아르코한국창작음악제(이하 '아창제')에서 선보이는 <국악관현악을 위한 '담쟁이'>를 만든 김영상(29) 작곡가는 도종환 시인의 시 '담쟁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작곡가들 사이에서 '꿈의 무대'로 불리는 '아창제' 공모에 한 번도 당선되기 어려운데, 그는 작년 대회(13회)에 이어 두 번 연속으로 당선됐다.
 
 김영상 작곡가의 만든 <국악관현악을 위한 담쟁이>는 제14회 아창제(1월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된다.
ⓒ 아창제
 
지난해 소감을 알리는 자리에서 "어떤 음악을 선보여야 할지, 얼마만큼 음악적 역량과 어휘를 실험할 수 있을지를 고민"이라고 밝혔는데, 그가 일 년 전에 밝혔던 바람대로 이번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관련기사: 다른 듯 같은 두 작곡가가 국악을 대하는 마음)

"지난 대회에서 첫 당선 이후 해금연구회, 제이 국악오케스트라 등 단체로부터 위촉을 받아서 곡을 만들 뿐 아니라 기업의 홍보영상음악과 무용음악에도 관여했습니다. 또한 뮤지컬로 발전시키려는 음악극 쇼케이스에도 참여해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창제'와 같이 새로운 창작음악을 발굴하는 대회에도 참여하고, 다른 매체와 연결된 국악의 확장에도 관심을 놓지 않았던 그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올해는 정신 없는 시간을 보냈다. 같은 국악을 하고 있지만 "특정 장르에 속한 작곡가가 아니라 그냥 작곡가로 남고 싶다"는 연초의 바람을 되돌아볼 때, 두 음악이 던지는 미묘한 차이는 무엇일까. 지난 27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예술가의집에서 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탐구하는 음악 vs. 기능하는 음악
 
 제14회 아창제에 선정된 <국악관현악을 위한 '담쟁이'>는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에서 영감을 얻은 곡이다.
ⓒ 김영상
 
- 국악에 대한 본질을 토대로 창작하는 국악과 타 장르와 결합된 국악을 만드는 일을 동시에 진행해왔다. 두 음악의 작업과정은 어떻게 다른가?
"개인적으로 아창제에 제출하는 작품은 보다 진지하고, 탐구적이다. 깊은 시간을 공들여 만드는 작품인 반면에, 다양한 매체를 위한 국악은 요청하는 측의 니즈를 파악해서 느낌을 끄집어내는 작업이다. 후자가 조금 편하고 재미있는데, '기능하는 음악'이라 보면 된다. 예를 들어, 무용하는 예술가들이 '이런 작업을 할 건데 이렇게 만들어달라'고 제안하면, 그들의 고민거리를 음악적 요소로 치환해 표현하면 된다. 그런 음악은 레퍼런스(참고자료)가 있기도 하고, 상황에 맞는 옷을 입혀주면 된다. 반면에 전자는 옷의 질감부터 제작과정, 이유, 배경, 소재 등 모든 것을 직접 고민해서 작곡해야 하는 점이 다르다."

- 이번에 선보이는 <국악관현악을 위한 '담쟁이'>을 만들게 된 배경은 무엇인가? 
"코로나19 장기화되면서 우리는 점차 익숙해져 가고 있지만, 신냉전 시대를 마주하며 새롭게 다가온 전쟁의 참상을 믿을 수가 없다. 그저 더이상 큰일 없이 마무리되기만을 바라거나, 간접적으로나마 그 처절한 상황에 동참하는 태도를 갖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시적인 내러티브를 음악적인 흐름으로 바꾸다
 
 코로나19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김영상 작곡가
ⓒ 김영상
 
- 이번 작품은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라는 시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이 시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과 의지를 잃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 시를 마주하면서 자연스럽게 현 세태와 개인적인 상황에 대입하게 되면서 이끌리듯 작업했다. 어쩔 수 없는 벽, 절망의 벽, 넘을 수 없는 벽에 맞닿아 좌절하다가도 한 걸음, 여럿이 오르고 올라 결국 벽을 넘는 시의 전체적인 흐름을 토대로 작품을 구상했다. 넘을 수 없는 벽에 봉착해도, 그 끝을 향해 오르는 담쟁이 잎처럼, 불확실성을 헤쳐 나가며 앞을 향해 나아가는 끈기와 의지를 작품에 투영했다."

- 11분에 이르는 곡 중에서 가장 드러내고 싶은 포인트는 어디이며, 청자는 어떻게 음악을 감상해야 하는가?
"음의 어느 특정한 부분을 꼽기보다는 음의 방향성과 움직임이 포인트다. 시에서 등장하는 '벽'과 같은 장애물에 봉착할 때는 소리가 응집했다가 이내 어디론가 떨어지게 만드는 느낌을 소리로 표현했다. 어디를 계속 오르고 떨어지는 것을 반복하는데, 그것을 결국엔 넘어가려는 여정을 음의 움직임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 그런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특별하게 사용한 악기나 연주기법이 있는가?
"특수악기나 특별한 연주기법을 사용하기보다는 국악관현악의 가장 일반적인 편성으로 작곡했다. 대부분의 관현악단이 가지고 있는 기본 편성에 중점을 둔 것이다." 

- 지난 13회 아창제에서 당선된 작품은 '곶자왈(숲+덤불)'이다. 생태숲의 생동감, 덤불에서 불어오는 바람, 새소리,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서 받은 인상이 작품의 모티브가 됐다고 말했다. 이번에 '담쟁이'라는 곡도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전작은 시각적 감상을 통해 영감을 얻었지만 '담쟁이'는 조금 더 시적인 서사가 우선인 작품이다. 담쟁이를 직접 보고 곡을 썼다기보다는, 도종환의 시 '담쟁이'가 던져주는 현 시대에 대한 극복 의지를 담아내고 싶었다."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하려는 2023년의 계획 

- 지난 대회에 이어서 두 번 연속 당선됐다. 앞으로 만들고 싶은 자신만의 음악 세계는 무엇인가?
"앞으로 계속 찾아나갈 것이다. 하나로 정해진 무언가를 최대한 같은 방식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최대한 매 작품마다 새로운 기술이나 생각들을 표현하고 싶다." 

- 김영상 작곡가만의 주제를 찾았나?
"상황에 따라 새로운 자극과 영감이 있을 것이다. 그에 따라 앞으로도 계속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 2023년에는 어떤 작업을 이어가고 싶은가?
"학교 조교로 근무하고 있어서 약간의 제약이 있지만, 지금까지 포착한 주제를 한데 모아서 정리하는 발표회를 열 계획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만든 곡들과 새로운 곡을 포함하여 발표하려고 한다." 

- 대여섯곡의 작품을 꿰뚫고 있는 하나의 주제는 무엇인가?
"아직 고민 중이다. 지금까지 만든 주제들이 다양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 한데 묶을 수 있는 단어를 찾아보려고 한다." 

1월 1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다시 서다 
 
 제13회 아창제 공연에서 무대에 올라 인사를 나누고 있는 김영상 작곡가
ⓒ 아창제
 
- 다시 아창제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래도 큰 축제의 장이다보니 나 자신을 세상에 노출할 수 있는 기회이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9월부터 조교를 하게 됐다. 아창제의 작품 마감이 8월 말이었는데,  9월1일부터 조교로 출근을 하게 됐다. 아마도 작품에 집중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최후의 발악이었나 싶다.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였다. 이제부터는 출퇴근을 해야 해서 향후 작곡활동에 영향이 있겠지만, 나름대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서 작곡활동을 이어갈 것이다." 

- 아창제라는 대회가 다른 것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제가 생각하는 아창제는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는 축제의 장이다. 콩쿠르 본연의 목적보다는 '널리 연주될 수 있는 레퍼토리를 만드는 것'이 목표인 것 같다. 콩쿠르가 주는 압박감보다는 편안한 연주회의 느낌이랄까. 매년 다양한 작곡가들이 포착하는 생각과 음악을 접할 수 있어 기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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