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사생활 말했다고 구속... 판사는 뭐하는 사람인가 [뒤집힌 판결]

김용국 2022. 12. 3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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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힌 판결] 긴급조치 9호, 국가배상 책임 인정되기까지

[김용국 기자]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세월호', '이태원'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물음이다. 주권자인 국민의 자유와 권리,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겠다던 국가의 약속은 번번이 지켜지지 않았다. 수많은 생명이 참사에 스러져간 광경을 목도하면서 사람들은 묻는다. 헌법도, 수많은 법률도, 제도도, 매뉴얼도 무용지물이라면 국가는 왜 군대, 정보기관, 수사기관 등을 통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왜 세금을 걷고 왜 국민에게 수많은 의무를 지우는가.

세월호·이태원 참사가 국가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서 발생한 비극이라면, 군사독재정권 시대의 국가폭력은 어떤가. 정권을 유지하려고 국가가 직접 권력을 휘둘러 국민의 생명과 자유를 빼앗은 경우다.

또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국가가 자행하는 폭력 앞에서 법원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1970년대 긴급조치 시대의 사법부와 오늘의 사법부는 어떻게 답할까. 긴급조치 국가배상 판결을 통해 답을 찾아보자.
  
 [표] 긴급조치 9호 손해배상 관련 대법원 판례 변천
ⓒ 김용국
 
무소불위 권력의 흉기 '긴급조치'

어느 시인이 신새벽 뒷골목에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라고 썼다는 유신시대. 국민의 기본권이 장식품보다 대접 못 받던 때였다. 많은 이가 영장도 없이 갇히고, 처벌을 받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었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반대파를 제거하고 영구집권을 하려고 1972년 유신헌법을 만든다. 유신헌법은 대통령 직선제와 중임·연임 제한을 폐지하고, 대통령에게 국회의원 3분의 1 임명권, 긴급조치권을 부여한다.

그중 긴급조치는 비상시 나라를 위해 예외적으로 행사해야 하는 국가긴급권이었다. 하지만 유신헌법이 국민의 거센 저항을 불러오자 박정희는 시도 때도 없이 무소불위 권력의 흉기, 긴급조치를 남발한다. 긴급조치는 대통령의 뜻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도, 정부나 법원의 권한을 무력화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 유신헌법은 '긴급조치는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제53조 제4항)는 '안전장치'까지 마련해 두었다.

1974년 1월 개헌 논의 자체를 일절 금하고 위반자를 영장 없이 구속·처벌하도록 한 긴급조치 1호, 비상군법회의 설치를 위한 2호는 서막에 불과했다. 민청학련(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 관련 활동자, 집회·시위 참가 학생들을 영장 없이 체포하고 최고 사형에 처하도록 한 4호, 고려대 휴교 명령과 집회·시위 금지를 명령한 7호까지 속속 이어졌다.
 
▲ 긴급조치 9호 발동  박정희 정권의 '대통령긴급조치'는 유신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동원한 '조폭'이나 다름없었다.
ⓒ 조선일보
 
압권은 9호였다. 유신반대운동이 고조되던 1975년 5월, 1호~7호의 종합판 격으로 등장한다. 유언비어 유포 금지, 유신헌법 반대·비방·개정 주장 금지, 이를 위반한 방송·보도 금지, 긴급조치 비방 금지, 학생의 집회·시위 금지, 영장없는 체포·구속·압수수색 가능.
합법을 가장한 위헌적인 긴급조치로 1천 명이 넘는 구속자가 양산됐다. 특히 9호는 박정희의 사망으로 1979년 12월 9일 해제될 때까지 위력을 떨쳤다. 당시 중앙정보부와 검찰, 경찰 등에 영장 없이 끌려가 가혹행위를 당하고 자백을 강요당한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유신헌법 폐지, 긴급조치 비판을 적은 유인물을 배포한 정도로도 중범죄자가 되었다. 심지어는 사석에서 대통령의 사생활을 얘기했다는 이유로 가정주부가 9호 위반(유언비어 유포)으로 구속된 사례도 있었다.
  
▲ 긴급조치 9호 첫항은 유언비어 금지 박정희 대통령은 1975년 5월 13일 긴급조치 9호를 선포했다. 헌법을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초헌법적인 대통령명령으로 인신구속을 정당화한 이 조치의 첫 항은 바로 ‘유언비어 금지’였다. 출처는 대한뉴스 제1031호(75년 5월 17일) 영상화면.
ⓒ 대한뉴스
 
법원은 '인권의 보루'였나
 

여기까지가 국가의 잘못이다. 그렇다면 인권과 정의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법부는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불행하게도, 긴급조치 위반으로 기소된 피고인들을 단죄하기에 급급했다. 9호로 기소된 약 900명 중 절대다수는 유죄 판결을 받고 교도소로 향했다. 긴급조치가 부당하다거나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피고인들의 항변은 법정에서 통하지 않았다. 정권의 수족이었던 수사기관은 물론 국가의 불법을 견제해야 할 법원도 긴급조치 앞에선 무력했다. 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고 집행하기에 급급했다.

유신시대가 막을 내렸지만 피해자들의 구제책은 없었다. '통치행위는 사법적 심사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논리는 막강한 힘을 발휘해왔다. 그러다가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 법원이 과거사 판결을 재검토하겠다고 하면서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그 후 법원에서 구제받지 못한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헌법재판소의 문을 두드리자 주도권을 의식한 대법원은 2010년에야 처음으로 "긴급조치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법원은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로 사법심사의 자제가 기본권을 보장하고 법치주의 이념을 구현해야 할 법원의 책무를 태만히 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긴급조치 1호가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최초로 판시했다. 2013년 4월에는 9호마저 위헌으로 판단했다. 헌법재판소도 2013년 긴급조치 1, 2, 9호가 위헌이라고 결정한다. 형사사건 재심에선 무죄판결이 이어졌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 법원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 연합뉴스
 
양승태 대법원 "긴급조치 무효지만, 국가배상 책임 없다"

그러나 법원은 민사재판에선 여전히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인 2014년 10월 대법원은 '긴급조치가 위헌·무효라 하더라도 당시 헌법에 따라 시행 중이던 긴급조치 9호에 의한 수사기관이나 법관의 직무행위는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례를 고수했다.

2015년에도 긴급조치 피해자들이 국가배상을 제기하자 긴급조치권 행사는 '정치적 책임'을 질 뿐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라는 논리로 원고패소 판결한다. 판결의 일부를 보자.
 
긴급조치가 사후적으로 법원에서 위헌·무효로 선언되었다고 하더라도,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로서 대통령은 국가긴급권의 행사에 관하여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하여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므로, 대통령의 이러한 권력 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는 볼 수 없다.
 
양승태 대법원의 판결들을 종합해보면 이런 논리다. '긴급조치는 위헌이고 무효다. 하지만 당시에는 유효한 법규였던 긴급조치에 따라 일했던 수사기관이나 법원의 직무행위가 곧바로 불법행위가 되지는 않는다. 또 긴급조치 발령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이므로 국가가 개인에게까지 책임질 일은 아니다.' 이 때문에 긴급조치 피해자들은 형사 재심에선 이기고, 민사재판에선 지는 모순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이와 달리, 하급심에서는 긴급조치 시대 수사의 불법성과 긴급조치 발령의 위법성을 지적하며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요지부동이었다. 오히려 '법관의 잘못된 판결에 대한 직무감독'이라는 문건을 통해 하급심 판결을 "대법원 판결에 반하는 판결"로 규정하면서 대책 마련에 고심했다.

단적인 예로 2015년 9월 당시 김기영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현 헌법재판관)가 "대통령의 헌법수호 의무 위반"을 지적하며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선고하자 대법원은 문건을 통해 "'매우 부적절한 행동'으로서 '직무윤리' 위반 가능성 존재"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2015년 10월 1일 박근혜 대통령과 양승태 대법원장이 계룡대에서 열린 건군 제67주년 경축연에서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긴급조치 판결을 '국정 협력 사례'로 청와대 설득"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양승태 대법원이 긴급조치 국가배상 부정 판결을 다른 목적으로 활용한 정황이 드러났다. 2015년 당시 상고법원 도입에 혈안이었던 양승태 대법원은 'BH(청와대) 설득방안'으로 삼았다. 즉 '정부 운영에 대한 사법부의 구체적 협력 사례'로 이 판결들을 제시하면서 법원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노력해왔음을 강조하는 방안이 검토되었다.

이 같은 사실은 2018년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불거지면서 드러났다. 긴급조치 민사재판에서 피고가 국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법부는 정부에 협력해야 할 파트너가 아니었다. 원고(국민)와 피고(국가) 사이에서 중립적인 판단을 내려야 할 심판이었다.

이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행정부와 독립해 재판해야 할 사법부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적극 협조하기 위해 판결하고, 법리적 판단이 아닌 정치적 함의를 고려해 판결다면 이러한 판결들은 대통령(정부)과 거래의 대상이 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혹평했다.

양승태 대법원은 "대통령 긴급조치가 내려진 당시 상황과 정치적 함의를 충분히 고려"한 판결이었다고 역설했지만, 법조계와 시민단체는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부당한 판결로서, 주권자인 국민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면서 재판을 거래한 것"이라고 사법부를 향해 날을 세웠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8월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긴급조치 9호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 관련 전원합의체 선고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 있다. 2022.8.30
ⓒ 연합뉴스
2022년 전원합의체 "긴급조치 배상책임 인정"

그 후 2022년 8월 김명수 대법원은 기존의 판례를 뒤집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위헌·무효임이 명백한 긴급조치 9호의 기본권침해는 강제수사, 유죄 판결로 현실화"되었다며 "긴급조치 발령부터 적용·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작용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평가"하여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① 긴급조치 9호의 발령과 ② 이에 따라 영장 없이 이루어진 체포·구금, 수사, 공소제기 등 수사기관의 직무행위 ③ 유죄판결을 한 법관의 직무행위를 '일련의 국가작용'으로 보아 위법하다고 평가했다. 즉 ①, ②, ③을 통해 긴급조치의 발령·적용·집행에 관여한 다수 공무원들의 행위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으므로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이나 법관 등 개별 공무원의 구체적·개별적인 고의, 과실의 입증을 요구하면 "오히려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되기 어려워져서 불합리하다"고 밝혔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보아 국가의 인권침해로 발생한 손해, 즉 "영장주의를 배제하는 위헌적 법령에 따라 강제수사를 받거나 유죄판결을 선고받고 복역함으로써 개별 국민이 입은 손해"에 대해 배상책임을 지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는 것이다.    
 
 [표] 긴급조치 관련 판례 연보
ⓒ 김용국
 
긴급조치가 위세를 떨치던 때로부터 반백 년이 지난 후에야 사법부의 '단죄'가 이루어졌다. 그 사이 피해자들은 육체적, 정신적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이 판결 전에 법원으로부터 이미 패소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은 법적으로 구제받을 길이 막막하다.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이 있다. 이 판결은 위헌적인 긴급조치에 따라 판결한 법관의 불법행위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법관의 재판에 대해 국가배상 책임이 인정되려면 "해당 법관이 위법 또는 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재판을 하는 등 명백히 어긋나게 권한을 행사했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는 기존 판례는 유지되었다. 쉽게 말해, 당시 법에 따라 재판한 판사를 현재의 잣대로 고의·과실을 평가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소수의견 "긴급조치 시대, 법관 책무 다하지 못했다"

김선수, 오경미 대법관은 소수의견을 통해 이 점을 지적하며 판사의 통렬한 자기반성을 요구했다. 소수의견은 "긴급조치 9호의 위헌성 심사 없이 이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한 법관의 재판상 직무행위는 독립적인 불법행위로서 국가배상책임을 구성"한다고 판시했다.

소수의견은 "긴급조치에 대한 법원의 사법심사는 당시 긴급조치로 발생한 인권침해를 합법적으로 시정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었다"며 그런데도 "개별 법관이 중대·명백하게 위헌인 긴급조치 9호의 위헌성 심사를 하지 않는다면 '기본권 보장의 최후 보루인 법원'의 헌법상 책무는 누가, 어떻게 수행해 달성할 수 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동원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박정화 대법관, 김재형 대법관, 조희대 대법관, 김명수 대법원장, 이기택 대법관, 조재연 법원행정장, 안철상 법원행정장, 김선수 대법관, 노정희 대법관. 2018.12.7
ⓒ 연합뉴스
 
"긴급조치 9호가 발령·집행된 시기는 권력분립과 법치주의에 따른 정상적인 사법 시스템이 작동을 멈춘 시기였다"면서 당시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한 것은 "재판의 주재자이자 사법권의 수호자로서 권력분립과 법치주의에 따라 사법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할 헌법적 책무를 부여받고 있는 법관이 그러한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인권이 외면받는 시절, 판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소수의견은 이렇게 말한다. 
법관이 헌법수호의 요청을 묵살하고 위헌적 법령의 테두리 안에 안주할 때 인권침해의 양상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법관의 독립은 얼마나 위태로워지는지 우리는 긴급조치 사건의 재판을 통해 목도하였다. 법관은 통치권자나 지배권력이 위헌·위법한 국가권력 행사를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도구로 전락되어서는 결코 아니 되고, 헌법에 의하여 부여받은 권한과 책임을 다하여 위헌·위법한 국가권력 행사를 견제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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