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처]아내가 혼자 여행을 가겠다고 했다

2022. 12. 3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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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내가 말했다.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1박2일로 통영에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아내가 여행을 갈 시간은 강릉의 집에서 토요일 아침이고 나는 토요일 점심에 대전에서 강의가 있다.

아내는 친구들과의 여행을 일요일로 조정해서 하루의 여행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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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내가 말했다.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1박2일로 통영에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아니, 정확히는 다녀와도 될지를 물었다. 결혼한 지 10년이 되었으나 그 혼자 집 바깥에서 시간을 보낸 일은 거의 없었다. 그는 어디에서든 아홉 살 여섯 살인 두 아이를 돌보아야 했다. 그의 하루는 밥, 옷, 잠, 한글, 숫자,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어디에 무엇을 먹으러 가자고 하면 아이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을, 어디에 무엇을 보러 가자고 하면 아이들이 볼 수 있는 것을 선택했다. 나는 그에게 아니, 당신이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당신이 보고 싶은 게 뭐냐고 했으나 그는 거기에 답하는 대신 짜증을 냈다. 그런 건 있으면 안 되는 일이라는 듯했다.

그런 그가 동창들과 외박을 하겠다고 하니 나는 기뻤다. 아이들을 내가 볼 테니 어디에라도 좀 다녀오라고 여러 번 말했던 것이다. 나는 그에게 여행이라니 너무 반가운 말이라고, 아이들은 내가 볼 테니 잘 다녀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장 2주 뒤의 일이었고 나는 그때 집에서 300km쯤 떨어진 지역의 도서관에서 강의가 있었다. 아내가 주양육자가 된 것은 나의 직업 때문이기도 하다. 낮에는 쓰는 사람으로 밤에는 말하는 사람으로 주로 살아간다. 글을 쓰고 강의하는 것이 일이 되어서 내가 어디에서 누구와 만나고 있을지 잘 알 수가 없다.

잘 다녀오라고 말은 해 두었으나 난감했다. 아내가 여행을 갈 시간은 강릉의 집에서 토요일 아침이고 나는 토요일 점심에 대전에서 강의가 있다. 적어도 10시간 가까이 두 아이가 혼자 집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사 간 지 얼마 안 된 강릉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 아이들을 부탁할 만한 사람도 없었다. 유일한 방법이란 내가 토요일 아침에 아이들을 데리고 대전으로 함께 가서, 도서관 근처에 숙소를 잡고, 그 두어 시간 동안 게임이라도 하게 해 주고, 강의를 하고, 다시 그들을 보러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9살 첫째는 잠시만 집을 비워도 외롭다고 문을 따고 나와 엄마 아빠를 찾아다니는 사람이었다.

나는 도서관 담당자에게 묻고 싶었다. 혹시 내가 일하는 2시간 동안 아이를 맡길 만한 데가 있겠느냐고. 유난한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아 그러지는 않았으나 내가 만약 혼자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하는 것을 상상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 30분, 혹은 아이가 유치원에서 태권도장에 갔다가 돌아올 오후 6시까지, 나는 집 근처가 아닌 그 어디에도 일하러 갈 수 없을 것이다. 언젠가 홀로 아이를 키우는 작가에게 강의를 의뢰했던 일이 있다. 조건이 괜찮은 자리였기에 그가 흔쾌히 응할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그는 아이 때문에 갈 수 없다고 말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대학에서 시간강의를 하고 다시 아이를 데리러 가는 삶을 살고 있어서, 누군가가 그 저녁 시간 동안 아이를 돌보아 주지 않으면 어렵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 강의는 다른 사람이 하게 되었다.

한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어린 아이들이 있는 집의 경우에는 한 사람의 이동에 한 가정이 동원되어야 한다. 도서관이나 주민센터나 그 어느 공공기관에서든 시간제 아이 돌봄 서비스 같은 것을 운영해 주면 어떨까. 누군가는 분명히 도움을 받을 것이고 아이들과 함께 온 그 당사자는 그 지역에서 적어도 밥이라도 먹고 조금 더 많은 돈을 쓰고 갈 것이다.

아내는 친구들과의 여행을 일요일로 조정해서 하루의 여행을 다녀왔다. 그가 조금 더 자주 여행 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랄 뿐이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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