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슴 속에 사직서를 품고 살지
다큐멘터리 <나는 마을방과후 교사입니다> 개봉(2023년 1월 12일)을 앞두고, 필수 노동이자 그림자 노동의 영역에서 고군분투 해 온 마을 방과후 선생님들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심을 다해 일하고 계신 필수 돌봄 노동자들의 수고와 존재를 알리고자 8편의 기획기사를 준비했다. <기자말>
[박상민 기자]
▲ 마을 방과후 선생님 교사대회_ 매년 여름과 겨울 전국에 있는 마을 방과후 선생님들이 모두 모여 교사대회를 연다. |
ⓒ 도토리 마을 방과후 |
▲ 공동육아교사 10년_ 공동 육아와 공동체 교육의 가치를 실현하며 초등 마을 방과후 교사로 계속 일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공동육아 교사로 10년 근무 근속상을 받은 날, 동료 교사들의 축하는 받고 있다. 동료 교사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10년이다. |
ⓒ 도토리 마을 방과후 |
"제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이달 말까지만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들 모두 감사했습니다!"
전체 방과후 교사들이 모여있는 채팅방에서는 한 달 새 벌써 교사 두 명이 방을 나가며 인사했다. 으레 새 학기가 되면 새로운 아이들이 입학하듯이 교사들의 이직도 함께 이루어지는데, 올해는 유독 중간 퇴사자들이 많았다. 학기를 마무리 짓지 못할 만큼 개인적으로 급한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어쩌면 학기까지 지내기 어려울 만큼 마음을 둘 수 없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퇴사하는 교사마다 개인적인 사정을 들어보지 못해서 무슨 연유로 일터였던 방과후를 떠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퇴사에 붙은 '개인적인 사정'은 대개 이러한 것들이 아닐까 유추해본다. 비영리 임의 단체 운영으로 인한 방과후 체제의 불안정성(몇몇 공동육아 방과후는 사회적 협동조합이지만 대부분 임의 단체이며 모두 정부 지원은 없다). 정부 지원이 없다 보니 비슷한 일을 하는 다른 직종 사람들보다 낮은 처우, 조합 형태에서 오는 일의 피로감, 조합에 꼭 한 명씩은 있다는 전지전능한 아마(부모)의 개입, 교사 업무와 역할의 광범위함에서 오는 멘탈 붕괴, 때론 공과 사의 구분이 모호한 업무환경, 함께 일하는 교사들 간 교육관의 차이와 갈등, 잦은 회의와 교육으로 인한 체력소모와 개인 시간의 부족, 매번 새롭게 고민하고 계획해야 하는 활동의 부담감, 열심히 일해도 보상이 느껴지기 어려운 일의 특성, 이렇게 일하다 얻게 되는 건강의 악화, 그리고 에너지 소진 등. 퇴사하는 교사들을 보며 짐작해보는 이런 다양한 퇴사의 이유는 현재 나 역시도 느끼고 있는 현실적 문제들이 많다. 이미 방과후의 성격이나 업무 환경을 이해하고 교사로서 일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 마을 방과후 교사대회_ 구조적인 불안 속에서도 공동 육아 교사들의 열정은 뜨겁다. 마을 방과후 교사 '분홍이'가 교사대회에서 도토리 마을 방과후의 '100일 잔치'를 다른 마을 방과후 교사들에게 사례분석을 하고 있다. |
ⓒ 도토리 마을 방과후 |
정부는 2018년 초등 아이들의 온종일 돌봄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초등 돌봄에 대한 국고 지원을 확대해 국가책임을 강화하기로 하고 학교 안팎의 다양한 자원을 활용한 지역 중심 돌봄 확대를 약속했다. 그래서 지자체별로 온종일 돌봄 대상과 돌봄 기관을 늘리기 위한 다함께 돌봄 센터의 설치를 확대 중이다. 이렇게 국가까지 나서서 초등 돌봄을 강화한다는 마당에 앞서 말했듯이 2021년 기준 전국의 19개였던 방과후와 40여명의 교사들의 수는 오히려 급격히 줄어들었다. 지난 5년간 공동육아 방과후 교사회는 회원기관 탈퇴와 더불어 신규회원 가입이 주춤하여 정부가 돌봄을 국가책임으로 전환해 초등 돌봄 기관이 늘어나는 중에도 방과후의 회원수는 낮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말했듯 공동육아 초등 방과후의 대부분은 정부 운영이 아닌 비영리 임의 단체 또는 협동조합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미 각자의 자리에서 많게는 20년 이상 묵묵히 돌봄의 역할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돌봄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이뤄지는 현재까지 공동육아방과후의 전국적인 확대가 이뤄지지 못한다는 사실은 교사들의 이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공동육아 방과후 교사들의 잦은 이직의 원인이 교사들이 겪는 개인적 상실감이라기보다 공동육아방과후가 지닌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국의 공동육아 초등방과후 17개소, 이곳의 아동의 수를 많게 잡으면 500명. 전체 초등학생의 0.018% 정도가 공동육아 초등방과후 참여 비율이니 초등돌봄 중에서도 극소수이다. 현재 공동육아 방과후를 이용하는 돌봄 참여 아동수만 보면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국가가 하지 않았던 초등 돌봄에 쏟아온 시간과 그 시간만큼 누적된 공동육아 방과후 교사들의 교육 경험, 그리고 그에 비례하여 이 공간을 기반으로 성장하여 졸업한 아이들의 수는 비율로 산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초등 돌봄 키움 센터를 확대하고 있지만, 현재 운영중인 마을 방과후를 초등 돌봄 기관으로 인정해 주지 않고 있다. 긴 시간 동안 초등 돌봄의 전문성을 유지해온 각 공동육아 방과후의 경험과 노력은 무시한 채 소수의 의견으로 치부해 돌봄기관으로 인정하지 않는 정부도 문제이고, 회원 단체로서 힘을 내지 못하는 공동육아 방과후 교사회와 사무국의 대처도 아쉽다.
▲ 교사회 회의 아이들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아침과 저녁 교사들의 회의도 일상이 된다. 아이들을 함께 돌보는 동료들은 또 하나의 가족이다. 떠나고 싶지 않아도 떠나야 하고, 보내고 싶지 않아도 보내야 하는 구조적 현실이 개선되길 바란다. |
ⓒ 도토리 마을 방과후 |
공동육아와 공동체 교육 사무국도 키움 센터 위탁 운영을 늘려가며 다양한 방과후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공동육아어린이집이 정부지원 '부모협동시설'이라는 하나의 새로운 운영체제로 자리 잡은 것처럼, 공동육아 방과후 역시 키움 센터와는 다른 하나의 형태로 인정받아야 한다.
키움센터와 공동육아 방과후는 각자의 고유의 색이 있고 강점이 있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수가 적다는 이유로 키움센터로 변경하거나 결합하라는 것은 매우 폭력적이다. 아이들의 다양성만큼 아이들이 머무는 공간의 다양성을 존중해주는 것이 기본적인 돌봄의 가치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교사들이 자기의 색을 내지 못해 그만두거나, 운영체제가 불안정해서 터전을 옮기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글_박상민(별명:오솔길)
마음속에 늘 초록색 지붕 집 빨간 머리 앤을 품고 아이들과 우정을 나누는 일상을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현)도토리 마을방과후 사회적 협동조합/ 교사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덧붙이는 글 | * 기사는 영화 속에 출연한 도토리 마을방과후 선생님들이 쓰고 엮은 책, <아이들 나라의 어른들 세계>에 실린 글 중 일부입니다. 1월 출간 예정. * 다큐멘터리 <나는 마을방과후 교사입니다> 1월 12일 극장 개봉합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재명 "윤 대통령, 5.18 정신이 헌법정신 그 자체라더니..."
- 윤 대통령이 띄운 선거제 개혁, 이걸 아셔야 합니다
- 구한말 15만 개의 양조장은 어디로 사라졌나
- 귀족에겐 노조가 필요 없습니다
- 군대 가려다 '경계선 지능' 판정... 앞길이 막막해졌다
- [단독] 윤석열 정부, 개정 교육과정에서 '5.18민주화운동' 삭제
- 최신 스마트폰 줘도 미등록...더 치열해진 학벌 경쟁
- 윤 대통령 "북한, 영토 재침범시 9.19군사합의 효력정지 검토"
- 준예산 상황인데... 이동환 고양시장 "마이애미 해외출장 간다"
- 특수본 '꼬리자르기'에... 재차 '이상민 책임론' 꺼내든 민주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