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 언론 “마라도나와 ‘라이벌’ 펠레는 애증의 관계”

한명오 2022. 12. 3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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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매체가 '축구 황제' 펠레와 자국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와의 애증 관계를 집중 조명했다.

아르헨티나 현지 매체 클라린은 "리오넬 메시 이전 자국 최고 축구선수로 꼽히는 마라도나가 펠레와 양대 산맥을 이뤘다"며 다만 "두 사람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로 으르렁거렸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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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란히 하늘의 별이 된 펠레와 마라도나. 브라질 '축구황제' 펠레가 29일(현지시간) 상파울루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병원에서 신장질환과 대장암 투병 도중 향년 82세로 사망했다. 브라질 축구의 '아름다운 게임'을 진두지휘했던 펠레는 브라질의 세 차례 월드컵 우승을 이끌며 역사상 세계 최고의 선수이자 브라질 축구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사진은 유로 2016 개막 전날인 2016년 6월 9일 아르헨티나 축구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왼쪽·1960~2020)와 펠레가 프랑스 파리의 팔레 루아얄 정원에서 스위스 고급시계 메이커인 위블로 주최로 열린 축구 경기에 참가한 모습. AFP연합뉴스

아르헨티나 매체가 ‘축구 황제’ 펠레와 자국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와의 애증 관계를 집중 조명했다.

아르헨티나 현지 매체 클라린은 “리오넬 메시 이전 자국 최고 축구선수로 꼽히는 마라도나가 펠레와 양대 산맥을 이뤘다”며 다만 “두 사람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서로 으르렁거렸다”고 회상했다.

이들의 첫 만남은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100년의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손꼽혀온 '축구 황제' 펠레(브라질)가 29일(현지시간) 상파울루에서 82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펠레는 1958년, 1962년, 1970년 세 차례 월드컵 대회 우승을 달성한 유일한 선수다. 사진은 브라질 산투스에서 펠레(오른쪽)와 네이마르가 펠레의 전 소속팀 브라질 클럽 산투스의 100주년 기념행사 도중 활짝 웃고 있는 모습. AP연합뉴스


‘대선배’ 펠레와 ‘샛별’ 마라도나는 1979년 4월 9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펠레 자택에서 아르헨티나 스포츠 전문지 ‘엘그라피코(El Grafico)’ 기획 인터뷰의 하나로 두 사람은 처음 대면했다고 클라린은 전했다.

1978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대표팀 발탁에 떨어진 마라도나는 당시 아르헨티나가 우승하자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해 상심해 있었다. 이런 마라도나에게 펠레는 노래를 불러주고 브라질 대표팀 유니폼에 사인을 해주며 덕담을 건넸다. 이후 마라도나는 펠레에게 심적 위안을 얻고 이후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우승 주역으로 떠올랐다.

'축구황제' 펠레가 29일(현지시간) 브라질 상파울루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병원에서 대장암 투병 도중 향년 82세로 사망했다. 펠레는 현역 생활 동안 1천363경기에 출전해 1천281골을 터트리며 '축구황제'로 칭송받았다. 그는 1958년, 1962년, 1970년 세 차례 월드컵 대회 우승을 달성한 유일한 선수다. 사진은 2012년 1월 9일 스위스 취리히 콩그레스하우스에서 열린 2011 국제축구연맹(FIFA)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왼쪽)가 발롱도르 트로피를 들고 펠레와 서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클라린은 두 사람의 관계가 마라도나 도핑 사건으로 크게 틀어지기 시작했다고 봤다.

1994 미국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금지 약물 양성 반응을 보인 마라도나에 펠레는 “(도핑은) 새로운 세대의 축구선수들에게 나쁜 사례”라고 비난했다. 이에 마라도나는 대선배 펠레를 ‘권력에 고개 숙인 기성세대’라는 말로 헐뜯었다. 밀레니엄에 접어들어서도 펠레는 “브라질엔 마라도나보다 더 좋은 선수들이 넘쳐난다”며 마라도나를 깎아내렸다고 클라린은 전했다.

펠레와 마라도나와의 기 싸움은 2002년 한일월드컵 공동개최에도 영향을 끼쳤ㄷ. 당시 일본은 우리보다 먼저 월드컵 개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브라질 출신 주앙 아발랑제 축구연맹(FIFA) 회장과 펠레는 일본을 개최국으로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그러나 마라도나는 한국에 대해 지지를 표명해 두 축구 스타의 애증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여전히 회자된다.

브라질 '축구황제' 펠레가 29일(현지시간) 상파울루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병원에서 신장질환과 대장암 투병 도중 향년 82세로 사망했다. 사진은 2009년 1월 12일 펠레가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2008 국제축구연맹(FIFA)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발롱도르를 수상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오른쪽·포르투갈)를 축하하는 모습. APF연합뉴스


다만 두 사람 모두 나이가 들어 서로 존중하고 위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등 화해한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둘은 2016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광고 캠페인에서 대면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클라린은 이를 보고 그간의 앙금이 풀린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한명오 기자 myung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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