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닦는 일'의 중요함

김성호 2022. 12. 3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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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독서만세 172] 김완의 <죽은 자의 집 청소>

[김성호 기자]

 
▲ 죽은 자의 집 청소 책 표지
ⓒ 김영사
 
에세이란 사람을 읽는 것이다. 글쓴이를 둘러싼 세계와, 그 세계를 온 몸으로 겪어내는 그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마주하는 것이다. 때로는 익숙한 공감이며 위로가, 때로는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낯선 만남이 기다리고 있다. 익숙한 삶은 익숙한 대로, 낯선 삶에선 낯선 대로의 인상이 있다. 그 인상으로부터 우리의 삶이 영향을 받는다면 에세이는 제 역할을 다 한 것이다. 그게 우리가 에세이를 읽는 이유다.

내게 있어 <죽은 자의 집 청소>는 에세이가 해야 할 역할을 충실히 했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낯선 삶이 있음을 알리고, 이전엔 좀처럼 느끼지 못한 감상을 불러일으켰다.

저자 김완은 특수청소 서비스회사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 직업을 빼놓고는 그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의 일이 김완이라는 한 인간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김완이라는 인간이었기에 기꺼이 그 일을 해낼 수 있었다는 뜻이다. 모두가 일을 삶의 중심으로 삼고 살아가진 않는다. 그래서 김완과 일의 관계는 더욱 특수하고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가 하는 특수청소는 일반 청소업체가 하지 못하거나 꺼리는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개중에선 사람이 죽고 난 뒤 남긴 자리를 수습하는 일이 많다. 그에게 맡겨진 일은 대개 섬뜩하고 서러운 경우가 많다. 특수청소가 필요한 죽음이란, 사람이 죽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핏자국이 군데군데 묻어 있고, 부패하고, 벌레가 꼬이고, 악취가 심한 상황들이 그 앞에 펼쳐진다. 그럴 때마다 그는 방진마스크와 방독면을 쓰고서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핏자국을 닦고 매트리스를 분해하고 소독과 탈취작업을 한다. 사람이 죽어나간 자리가 다시 사람을 들일 수 있게 되기까지, 그의 공이 결코 작지 않다.

특수청소를 하며 만난 서글픈 마지막

저자는 책 가운데 그가 겪은 죽음들을 하나씩 풀어놓는다. 그에게 맡겨진 청소 하나하나가 독자 앞에 실감나게 펼쳐진다. 대개는 가난하고 서러우며 타인의 관념으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삶의 종결이다.

저자는 그들이 떠난 집 안에서 남겨진 것들을 치우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뻗어나간다. 생전의 모습과 그들을 죽음으로 이끌었을 요소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런 생각 모두가 죽음 앞에서 완전히 무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가 청소한 집 가운데선 전기와 가스가 끊겼음을 뜻하는 노란딱지가 많았다고 한다. 집 안에는 압류대상임을 뜻하는 붉은딱지들도 여기저기 나붙어 있곤 했다. 그는 그런 딱지들이 마치 죽음을 선고하는 것처럼 느꼈다고 적는다. 사회가 돌보지 않기를 선택한 가난한 자들이 스스로 삶을 포기할 정도의 극한상황에 쉽게 내몰린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7년 빈곤가구에 대한 단전과 단수를 인권침해로 규정한 일이 있다. 삶을 이어가기 위해선 최소한의 전기와 수도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후 전기나 수도가 끊긴 집에서 사람이 죽는 사례가 대폭 줄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결코 완전하진 않았다.

가난하여 애통한 죽음들을 떠올리다

2012년 전남 고흥의 촛불화재사건을 기억한다. 조손가정의 할머니와 손자가 촛불을 켜고 잠들었다가 화재로 사망한 참사였다. 6개월 분 전기 15만7000원이 밀려 전류제한기가 설치됐다고 했다.

한국전력은 인권위 조치 이후 완전 단전조치를 취하지 않아 순간사용량 220와트 이상 사용만 금지했다고 했다. 냉장고와 전등 한두 개 정도는 돌릴 수 있는 전력이었다. 하지만 할머니와 아이는 완전 단전이라고 생각했다. 220와트 이상을 쓰다 모든 전자기기가 꺼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누구도 단전 상황에서 최소한의 전력을 쓰는 방법을 말해주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촛불을 켜고 생활하다 변을 당했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을 기억한다. 생활고로 고생하던 어머니와 두 딸이 2014년 2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다. 질병을 앓고 수입도 없었지만 생전 누구도 이들을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 70만 원,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겼다. 죽음을 앞두고 집세와 공과금을 내는 이들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을까.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저자가 겪은 청소일감 중에서 많은 경우가 이들의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죽음을 앞두고서 분리수거를 했던 20대 여성이 있었다. 청소업을 하는 이가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정리된'이라고 표현할 만큼 공들여 청소한 방에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있었다. 책장을 넘기며 감히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려 노력한다.

남겨질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

죽음을 선택하며 남겨진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한 글이다. 수화기 너머 들려온 목소리는 저자에게 죽은 이의 방을 청소하는 비용을 물었더랬다. 사체가 죽은 뒤 얼마나 지나 발견되었는지, 죽은 이가 나간 방의 상태는 어떠한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통화를 마친 뒤 한 주가 지나서 죽은 채로 발견됐다고 했다. 제가 죽은 뒤 있을 처리 비용까지 걱정하여 직접 전화를 걸어 단가를 알아봤던 이는 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

<죽은 자의 집 청소>는 제 삶에 바빠 미처 생각해본 적 없는 여러가지 다른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끔 한다. 스스로를 죽이기로 결심한 이들의 마음과 그들이 떠난 집을 청소하는 사람의 마음을 살펴보게 한다. 청소를 독촉하며 모진 말을 내뱉는 죽은 자의 이웃들은 나와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나의 무신경한 태도가 외딴 방에서 스러져간 생들에 미친 영향은 없는지를 돌아보도록 한다.

책을 읽으며 얼마 전 참석한 한 모임을 떠올렸다. 은둔형외톨이 자녀를 둔 부모들의 모임이었다. 아는 이의 부탁으로 참석한 그 모임에서 나는 오가는 대화를 기록하는 일을 맡았다.

서울 신촌에서 열린 그 모임에선 내가 이전까지 생각해본 적 없었던 고민들이 비명처럼 터져 나왔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시작된 어느 문제와 봉착한 연약한 젊음들이 방문을 잠그고 세상과 단절되길 선택했다. 아니, 선택이란 말은 부적절하다. 세상으로부터 거절당한 이들의 도피였다.

아직 살아있는 그 젊음들이 몇 평 되지 않는 작은 공간에 틀어박혀 바깥 세상으로 새어나오지 않는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단체는 그들의 가족이 내민 손을 잡아주었다. 한 마디 한 마디 경청하고 필요로 하는 만큼의 도움을 주었다. 그 관심과 노력이 얼마나 소중했던지 참가한 이들이 단체 관계자의 손을 잡고 고맙다 유익했다 한참 동안 인사했다.

해야할 건 산 사람의 마음을 닦는 일

<죽은 자의 집 청소>를 읽고서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 것도 같은 기분이 들었다. 죽은 이들의 집을 청소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산 사람들의 마음을 닦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했다. 그 마음을 닦는 이들을 떠올렸고, 그들이 얼마나 귀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알게 됐다.

나는 두 단체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두 단체를 지원하고 그 활동을 지켜보는 게 의미 있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외된 약자를 돌보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단체였다. 제 삶에 바쁘다는 핑계로 관심 갖지 않았던 이웃을 챙기고, 그 소식을 후원자에게 공유하는 이들을 보면서 나 스스로 반성하게 되는 날이 많았다.

그러고 보면 그런 관심과 반성이 출발점일지도 모른다. 관심을 갖다 보면 애정이 생기고, 반성한 후에야 나아질 수 있으니까. 산 사람들의 마음을 닦다보면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할 일도 조금은 줄어들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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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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