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넘은 아내가 순대를 창자라고 말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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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그리고 저녁때 돌아온 아내에게 간단하게 보고를 했다.
아내가 입을 삐죽이며 말을 거들었다.
아무 말 없이 아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창자라고 말했던 자신의 말이 겸연 쩍은 듯 나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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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준 기자]
초저녁 밖에서 일을 보고 3층 우리집에서 현관쪽을 보니 하얀 아이스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택배가 있는 것을 보아하니 식구들은 아직 아무도 집에 오지 않은 것 같았다.
이게 뭐지? 하면서 아이스박스를 들고 거실로 들어와 살펴보았더니 순대였다. 없으면 찾고, 있으면 안 먹고. 유효기간 지나서 먹지도 못하고 버린 것이 수십가지는 될 것이었다. 진짜로 버려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걸 말하면 나는 죽는다.
그런데도 아내는 할인이라고 사서 잔뜩 쟁여 놓기만 했다. 그래도 할인 한다는 걸 인터넷 검색 해서 찾아 본다고 눈알이 빠개질 정도라 하니 그 정성이 기특해서 참았다. 그리고 저녁때 돌아온 아내에게 간단하게 보고를 했다.
"순대 왔던데?"
아내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디다 놨어?"
나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에 눈을 고정시킨 채 건성으로 대답했다.
"김치냉장고에."
"냉동실에 넣어야지."
꼭 토를 달아요. 그렇다면 그런가 보다하지. 나이가 60이 넘으면 사람이 저렇게 되나?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한 마디 했다.
"냉동실이 만원 사례라. 김치냉장고로 모셨다. 둘 데도 없이 사기만하면 다냐? 제발 누울 자리를 보고 사라."
아내가 입을 삐죽이며 말을 거들었다.
"이제 이 냉장고도 한20년 썼더니 바꿔야 할 것 같아."
괜히 뭐를 산다던지 돈 들일 일이 생기면 나는 작아졌다. 이쯤에서 물러서자. 당신이 돈을 많이 벌어다 줘봤어? 망치를 제대로 박아봤어? 형광등을 한 번 갈아봤어?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으면서. 이런 말 나오기 전에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그후 점심 때 있었던 일. 교회를 다녀온 아내가 거실에 있던 나에게 말을 붙였다.
"오늘 점심 뭐 먹지?"
나는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생각나는 것도 없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대충 있는 것 먹지."
그러자 아내는 머리를 쥐어짜듯 하며 혼잣말처럼 "아이 뭐 먹나?" 하더니 갑자기 무슨 묘안이라도 생각해낸 듯 좀전 말을 이어서 "저거 먹을까?" 한다. 나는 아내가 무엇을 먹자고 하는지 도통 가늠 할 수가 없어서 되물었다,
"뭐?"
아내는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그게 말이 되어 나오지 않자 답답한 듯 다시 한번 "저거"라고 말했다. 이제는 내가 답답해서 화가 났지만 화를 누그려 뜨리며 "글쎄 저거가 뭐냐구?" 했다. 아내도 답답해 미치겠는지 계속, 했던 말을 반복했다.
"저거 있잖아 저거."
화를 내봐야 될 일도 아니라서 차분하게 아내에게 물었다.
"말을 해야 알지 . 귀신도 말을 안 하면 모른다잖아."
내가 차분하게 말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내는 했던 말을 계속 했다.
"그거 말이야, 그거."
아내의 말에 짜증이 치밀어 오르면서 내가 소리를 질렀다.
"내가 마음속에 들어 간 것도 아니고 그거가 뭐냐구!"
나의 짜증 섞인 말에 아내가 놀라면서 엉겁결에 한 마디 내뱉은 말.
"창자 말이야, 창자."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눈물이 났다, 순대를 창자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구나.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그 말 좀 생각이 안 나면 어때서 그게 뭐라고 그토록 화를 낸 것도 미안했다.
그러고 보니 아내의 목에도 입가에도 잔주름이 내려 앉아 있었다. 빗방울을 튕겨내던 우리들의 푸른 시절은 지나간 것인가요? 문득 나이를 먹어가는 아내의 얼굴을 보니 서글프고 측은해 보였다. 아무 말 없이 아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창자라고 말했던 자신의 말이 겸연 쩍은 듯 나에게 묻는다.
"뭘 그리 빤히 쳐다봐."
나는 그게 창자라면 어떻고 쓸개라면 또 어떤가. 오래도록 같이 잘살자 속으로 생각 하면서 "오늘따라 예뻐 보이네"라고 말했다.
아내가 좀전의 일은 잊은 듯 환하게 웃으며,
"뭘 오늘 따라야. 항상 예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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