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넘은 아내가 순대를 창자라고 말했을 때

이경준 2022. 12. 30. 08:27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그리고 저녁때 돌아온 아내에게 간단하게 보고를 했다.

아내가 입을 삐죽이며 말을 거들었다.

아무 말 없이 아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창자라고 말했던 자신의 말이 겸연 쩍은 듯 나에게 묻는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말이 잘 생각이 나지 않는 나이... 그럼 또 어떤가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경준 기자]

초저녁 밖에서 일을 보고 3층 우리집에서 현관쪽을 보니 하얀 아이스박스가 눈에 들어왔다. 택배가 있는 것을 보아하니 식구들은 아직 아무도 집에 오지 않은 것 같았다.

이게 뭐지? 하면서 아이스박스를 들고 거실로 들어와 살펴보았더니 순대였다. 없으면 찾고, 있으면 안 먹고. 유효기간 지나서 먹지도 못하고 버린 것이 수십가지는 될 것이었다. 진짜로 버려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걸 말하면 나는 죽는다.

그런데도 아내는 할인이라고 사서 잔뜩 쟁여 놓기만 했다. 그래도 할인 한다는 걸 인터넷 검색 해서 찾아 본다고 눈알이 빠개질 정도라 하니 그 정성이 기특해서 참았다. 그리고 저녁때 돌아온 아내에게 간단하게 보고를 했다.

"순대 왔던데?"

아내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어디다 놨어?"

나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에 눈을 고정시킨 채 건성으로 대답했다.

"김치냉장고에."
"냉동실에 넣어야지."

꼭 토를 달아요. 그렇다면 그런가 보다하지. 나이가 60이 넘으면 사람이 저렇게 되나? 나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한 마디 했다.

"냉동실이 만원 사례라. 김치냉장고로 모셨다. 둘 데도 없이 사기만하면 다냐? 제발 누울 자리를 보고 사라."

아내가 입을 삐죽이며 말을 거들었다.

"이제 이 냉장고도 한20년 썼더니 바꿔야 할 것 같아."

괜히 뭐를 산다던지 돈 들일 일이 생기면 나는 작아졌다. 이쯤에서 물러서자. 당신이 돈을 많이 벌어다 줘봤어? 망치를 제대로 박아봤어? 형광등을 한 번 갈아봤어?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으면서. 이런 말 나오기 전에 피하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그후 점심 때 있었던 일. 교회를 다녀온 아내가 거실에 있던 나에게 말을 붙였다.

"오늘 점심 뭐 먹지?"

나는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생각나는 것도 없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대충 있는 것 먹지."

그러자 아내는 머리를 쥐어짜듯 하며 혼잣말처럼 "아이 뭐 먹나?" 하더니 갑자기 무슨 묘안이라도 생각해낸 듯 좀전 말을 이어서 "저거 먹을까?" 한다. 나는 아내가 무엇을 먹자고 하는지 도통 가늠 할 수가 없어서 되물었다,

"뭐?"

아내는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그게 말이 되어 나오지 않자 답답한 듯 다시 한번 "저거"라고 말했다. 이제는 내가 답답해서 화가 났지만 화를 누그려 뜨리며 "글쎄 저거가 뭐냐구?" 했다. 아내도 답답해 미치겠는지 계속, 했던 말을 반복했다.

"저거 있잖아 저거."

화를 내봐야 될 일도 아니라서 차분하게 아내에게 물었다.

"말을 해야 알지 . 귀신도 말을 안 하면 모른다잖아."

내가 차분하게 말하는데도 불구하고 아내는 했던 말을 계속 했다.

"그거 말이야, 그거."

아내의 말에 짜증이 치밀어 오르면서 내가 소리를 질렀다.

"내가 마음속에 들어 간 것도 아니고 그거가 뭐냐구!"

나의 짜증 섞인 말에 아내가 놀라면서 엉겁결에 한 마디 내뱉은 말.

"창자 말이야, 창자."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눈물이 났다, 순대를 창자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가 되었구나.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그 말 좀 생각이 안 나면 어때서 그게 뭐라고 그토록 화를 낸 것도 미안했다.

그러고 보니 아내의 목에도 입가에도 잔주름이 내려 앉아 있었다. 빗방울을 튕겨내던 우리들의 푸른 시절은 지나간 것인가요? 문득 나이를 먹어가는 아내의 얼굴을 보니 서글프고 측은해 보였다. 아무 말 없이 아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창자라고 말했던 자신의 말이 겸연 쩍은 듯 나에게 묻는다.

"뭘 그리 빤히 쳐다봐."

나는 그게 창자라면 어떻고 쓸개라면 또 어떤가. 오래도록 같이 잘살자 속으로 생각 하면서 "오늘따라 예뻐 보이네"라고 말했다.

아내가 좀전의 일은 잊은 듯 환하게 웃으며,

"뭘 오늘 따라야. 항상 예쁘지."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