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록이 ‘재벌집 막내아들’로 들여다본 욕망 [쿠키인터뷰]

김예슬 2022. 12. 30.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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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신록. 저스트엔터테인먼트, 포토그래퍼 이승희

“쇼는 볼만했니? 주제넘게 굴지 마. 네 분수 지켜. 순양의 상속자가 될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마. 너희는 우리랑 달라.” JTBC 금토일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화영(김신록)이 이렇게 말하자, 진도준(송중기)의 눈이 고요한 분노로 일렁였다. 다들 조용히 뒤에서 진도준을 시기하고 견제할 때 진화영은 직설적으로 그를 배척했다. 아버지 진양철(이성민)이 오빠들만 챙기고 자신에겐 ‘고명딸’이라며 선 그을 때도 그랬다. 진화영은 분노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판을 흔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골몰하고 욕망한다. 배우 김신록은 그래서 진화영에게 마음이 갔다. 최근 서울 논현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신록은 “결핍을 채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진화영이라 좋았다”고 회상했다.

진화영은 고명(음식의 부재료)이길 거부하고 철저히 능력으로 인정받길 원한다. 변덕스럽고 오만한 태도는 그에게 자연스럽다. 순양가의 ‘순혈’인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해서다. 진화영의 기저엔 자긍심과 더불어 욕망, 결핍이 어지러이 엉켜있다. 아버지와 두 오빠, 남편 사이에서 그는 존재감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부유한 재벌가에서 가만히 있으면 그 무엇도 주지 않는다는 걸 어쩔 수 없이 체득한 사람. 자신의 아픔과 결핍은 크게 느끼고, 타인의 결핍엔 무감하고 잔인한 사람. 김신록은 진화영의 출발점을 욕망과 욕구의 차이에서 찾았다.

“진화영의 핵심은 욕망이에요. 사전을 찾아보니 욕구는 하고 싶은 마음, 욕망은 부족하다고 느껴서 더 바라는 마음이래요. 진화영은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인물이에요. 재벌가에서 태어났으니 큰 걸 원하지만 자신의 몫이 아니잖아요. 그 괴리에서 오는 낙차가 다른 사람보다 커요. 성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공감 갔어요. 부족하니까 원하고, 안 되니까 못 되게 굴고….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본 정서 아닐까요? 저는 진화영이 갖가지 전략을 구사하는 서바이벌 캐릭터 같았거든요.”

‘재벌집 막내아들’ 스틸컷. SLL, 래몽래인, 재벌집막내아들문화산업전문회사

그의 말처럼 시청자들은 진화영에게 호응했다. ‘밉지만은 않은 캐릭터’라는 수식어로 진화영에게 공감을 표했다. 진화영은 아버지에게 애교를 부리면서도 오빠들에겐 새침하고, 남편 최창제(김도현)에겐 철부지 공주님 같은 면을 보여준다. 진화영의 입체감은 김신록의 고민으로 완성됐다. 배우 김도현과 부부로 나오는 대다수 장면엔 두 사람의 아이디어가 많이 들어갔다.

“진화영과 최창제가 함께하는 장면은 테이블에서 대화하며 정보를 노출하는 게 대부분이었어요. 어떻게 해야 정보전달을 넘어 이들 부부의 관계성을 보여줄지 고민했죠. 그래서 최창제가 진화영을 업거나 다리를 주물러주는 아이디어를 내서 장면을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들고자 했어요. 2회 대본에 ‘진화영이 거울 앞에서 화장을 고치는 너머로 최창제가 핸드백을 들고 따라온다’는 지문이 있었어요. 거기서 착안해 최창제가 항상 진화영의 핸드백을 들어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눴어요. 존재감이 역전된 이후로는 진화영이 들고요. 그렇게 두 사람 관계를 그려갔어요. 반응이 좋아 만족스러웠어요.”

진화영과 최창제는 ‘재벌집 막내아들’의 재미 요소였다. 김신록은 이들 부부의 서사를 상상했다. 아이가 없는 이유와 이혼하지 않고 함께 늙어간 것들을 떠올리며 관계성을 잡아갔다. “재벌이어도 부부는 부부니까, 지지고 볶는 장면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죠. 본가에서는 늘 기민하게 눈치 보며 노력해서 싸우고 이겨야 하잖아요. 하지만 최창제는 진화영을 공주처럼 대하고 잘한다고 칭찬하죠. 안정감과 자신감을 얻을 구석인 거예요. 진양철은 집안에 검사 하나쯤은 있어야 하니 결혼을 허락했을 거고, 진화영은 이 남자가 나를 떠받드니까 결혼한 거죠. 그게 진화영에겐 일종의 사랑이라 생각했어요.”

‘재벌집 막내아들’ 스틸컷. SLL, 래몽래인, 재벌집막내아들문화산업전문회사

인물의 여러 면을 구축하자 드라마 속 캐릭터에 불과했던 진화영은 하나의 인격체로 생동했다. 진도준에게 백화점 지분을 넘기는 장면 역시 김신록의 고민을 거쳐 재탄생했다. “도장을 찍을 때 앙탈 같은 소리를 내려했어요. 하기 싫은 걸 해야 하는 어린아이 같지 않을까 했거든요. 진화영의 마음에 집중하니 ‘이이잉~’하는 소리가 나오더라고요. 현장에서 만들어진 재미난 장면이에요.” 김신록은 소리, 움직임, 감정 폭을 넓게 설계해 역동성을 더했다. 진화영이 인기를 얻으며 그가 지난해 넷플릭스 ‘지옥’에서 박정자를 연기한 사실이 회자되기도 했다. 연극 무대에서 매체로 넘어온 지 1년. 활동 무대가 바뀌어도 연기에 임하는 그의 마음은 늘 같다.

“본래 형태로 돌아가 사유하는 걸 좋아해요. 구체적인 서사와 별개로 이야기가 근본적으로 하려는 이야기와 인물이 가진 마음속 중심이 무엇인지 찾으려 해요. 진화영도 그랬어요. 과거 서사를 파고들기보다는 진화영의 중심에 욕망이 있다는 걸 이해하고 집중했어요. 이전 이야기들은 다른 인물들과 마주하며 구체화됐죠. 저도 진화영처럼 역동적이거든요. 부족해서 이루려는 마음보다 순수하게 뭔가를 원해서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임해요. 이루고 싶은 게 뚜렷하게 있진 않아요. ‘지옥’으로 배우 인생 2막을 열고, ‘재벌집 막내아들’로 계속 변신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거든요. 앞으로도 좋은 작품에서 마음 가는 역할을 만나 재밌고 어렵게 연기하고 싶어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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